드라마

수상한 가정부 - 너무 서툴고 솔직한, 당연한 아버지의 고민

까칠부 2013. 10. 16. 07:50

아이를 낳았다고 모두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부모라는 자각조차 없이 단지 부모가 되었기에 부모로서 살아가는 이들도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 결혼을 했다고 모두가 부부가 되는가.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되는가. 단지 선언에 불과하다. 이제부터 우리는 부부다. 남편이고 아내다. 그에 맞춰 살아가게 된다. 그것을 달리 '페르소나'라 부른다.


사랑하지 않더라도 사랑하다 말한다. 전혀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해 줄 수 있다 스스로 믿는다. 때로 그것이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아이를 위해서. 혹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서. 자신을 사랑해주는 누군가를 위해서.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진심은 어디에 있는가. 자기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관계라고 하는 태초로부터 이어진 거대한 네트워크 위에서 문득 깨어나 묻기 시작한다. 무엇이 진실인가.

은상철(이성재 분)은 드물게 순수한 사람이다. 윤송화(왕지혜 분)는 은상철에 대해 묻는 최부장(조연우 분)에게 이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제가 그 사람의 첫사랑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은부장님한테서."

마치 처음 사랑에 눈을 뜬 소년처럼 순수하고 저돌적이다. 자신의 감정을 재려 하지도 않고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마침내는 윤송화를 위해 회사까지 찾아가 어울리지도 않게 최부장을 상대로 주먹질까지 한다. 만일 은상철에게 죄가 있다면 바로 그같은 순수함과 솔직함에 죄를 물어야 할 것이다. 한 여자의 남편이고 네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실마저 잊고 만다.

아이들을 사랑하는가. 아버지로써 자신의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기는 한 것인가. 아마 많은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대답할 것이다. 사랑한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진심인가. 진심에서 우러나 하는 말인가. 아니면 단지 의무감에, 혹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당위에 의해 떠밀리듯 하는 말은 아닌가. 평생을 노력해도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남녀간의 사랑만이 아니다. 부모자식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너무 솔직하다. 차라리 잔인할 정도다.

다시 태초로 돌아간 듯하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일까? 모든 혼란과 갈등 속에 은상철과 그의 아이들이 던져진다. 아빠의 불륜으로 인해 엄마가 자살했다. 용서할 수 없다. 아빠에 대한 분노가 아이들을 혼돈속으로 밀어넣는다. 엄마를 죽게 만든 아빠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아이들이 용서하지 않으니 은상철은 더욱 아이들에 대한 자신을 잃어간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을 잃어버리면서 아이들도 방황하기 시작한다. 장녀로서, 혹은 장남으로서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심지어 한결(김소현 분)은 자신의 부모가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게 된 원인을 자기에게로 돌리기 시작한다. 상처투성이가 되어 가족은 갈갈이 찢기고 만다. 그러려 했었다.

그런데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벽이었다. 모든 것을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이었다.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한다. 죽으라면 죽고, 죽이라면 죽이고, 시험문제도 훔쳐오고, 회사에서 전단지를 돌리라면 돌린다. 자신들의 모든 충동적인 말과 생각이 그녀를 통해 현실화된다. 어쩌면 사소한 불평이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끝났을 일들이 현실로 이루어진다. 경험을 통해 깨닫는다. 어째서 인간은 스스로 역할을 부여하고 그에 맞춰 살아가는가. 자신들은 단지 아직 어린 아이들에 불과하다. 자기는 그래도 아버지로서 아이들의 보호자다. 독기를 드러내던 한결이 어느새 평범한 여느 소녀의 얼굴을 하고, 눈을 부라리는 것밖에 모르던 두결(채강우 분)은 풋내나는 어린아이가 되어 한 발 물러서 있다. 아버지의 고민은 계속된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이질적일 것이다. 아버지 은상철의 문제는 그가 너무 솔직하다는 데 있다. 솔직한 대신 서툴다. 인간의 관계에 거의 무지하다시피 하다. 갓 세상에 나온 소년과 같다. 아내의 장례식에서조차 자신이 마음을 주고 있는 이성의 방문을 기뻐한다. 아내의 상을 치르고서도 오로지 자신이 마음에 두고 있는 그녀 생각 뿐이다. 그것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은상철과 가장 닮은 것은 오히려 막내 혜결(강지우 분)이다. 윤송화가 은상철에 대해 자기가 첫사랑인 것 같은 느낌이라 말한 이유일 것이다. 어떻게 지금껏 사회생활을 해왔는지 신기할 정도다.

그에 비하면 은상철의 다른 아이들은 마찬가지로 서툴지만 솔직하지는 못하다. 과연 한결은 어머니를 위해 진심으로 은상철의 불륜에 분노하고 있었는가. 딸로써 어머니를 위해 아버지를 원망하고, 다시 딸로써 아버지를 위해 아버지를 용서하려 한다. 아버지의 사랑을 구하는 딸이 되려 한다. 장남으로서 무언가 해보려던 두결의 의도는 비틀어지고 일그러져 엉뚱한 결과로 이어질 뿐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윤송화도, 한결의 주위를 맴도는 최수혁(서강준 분)이나 신우재(박지빈 분) 역시 그저 서툴 뿐 솔직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단지 배워간다. 어떻게 하면 더 능수능란하게 자신을 감추어가는가.

기괴하기까지 한 박복녀(최지우 분)의 캐릭터 또한 관계에 실패한 자의 잔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관계를 거부한다. 선의에 의한 것이든 악의에 의한 것이든. 그것이 우연에 의한 것이든 필연에 의한 것이든. 철저히 피동적으로 주어진 명령에만 복종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래서다. 개인적인 어떤 의견도 드러내거나 전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드라마에서의 박복녀는 너무나 많은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저 감추고 있는 것이다. 가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과 타협한다. 자신과 타협한다. 웃지 않는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것으로 자신을 납득할 수 있다.

은상철만이 유독 힘들게 살아가는 듯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실제 가장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윤송하는 자신을 속일 줄 안다. 그런 자신과 타협할 줄 안다. 은상철의 아내를 만났다. 은상철과의 관계를 전했다. 그것이 상처가 되어 은상철의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렴풋 알고 있었다. 확인까지 했었다. 그런데 과연 자신의 잘못이 뻔히 보이는데 은상철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것이야 말로 자신의 죄의 증거일 텐데? 오히려 은상철을 포기함으로써 자신을 벌주고자 하다. 최부장과의 관계로 도망침으로써 스스로를 합리화하려 한다. 그렇게들 살아간다. 최부자의 궤변 역시 그같은 수많은 살아가기 위한 기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은상철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은상철은 주위에 상처를 준다. 딸 한결과 다른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심지어 처제인 우나영(심이영 분)의 앞에서조차 윤송화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도록 만든다. 하기는 그만큼 은상철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은 적당히 타협하고 살아가는 것을 은상철은 우직하게 정면으로 부딪히며 나아간다. 아이들에게 미움을 받는 것도, 처제로부터 원망을 듣는 것도, 윤송화와의 관계로 인해 좌천당하고 심지어 해고당하는 것까지도. 그래서 궁금해진다. 은상철이 스스로 고민하고 내리게 될 자신만의 답에 대해서. 아이들과 그리고 윤송화에 대해서.

가면을 까발린다. 그러나 그렇게 정체를 드러낸 가면 역시 새로운 역할에 맞게 씌워진 새로운 가면일 뿐이다. 혼란 속에 빠르게 질서가 잡혀간다. 백신은 병을 미리 가볍게 앓는 것이다. 미리 상처입고 그 상처를 스스로 치유해간다. 한결이 다시 첫째때로 돌아온다. 두결은 조금씩 어린 장남이 되어가고 있다. 세결은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사이 부쩍 어른이 되었다. 어쩌면 세결이야 말로 가장 아버지 은상철과 닮았을 것이다.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고, 좌절을 후회하지 않는다. 혜결은 무모할 정도로 솔직하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관계란 어떤 것인가.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관념을 현실로 끄집어낸다.

일본원작에 대한 기억이 흐릿하다. 보기는 했는데 아주 단편적인 기억 밖에는 없다. 가정부를 소재로 한 컨텐츠의 종류와 양이 상당하다. 상당히 독특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뚜렷이 구분되어 기억될 정도는 아니다. 한국드라마 특유의 끈끈함이 제대로 살아있는 느낌이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느낌 없이 질척거릴 정도로 끈적하게 모두가 얽히고 섥힌다. 넘치고 흐르는 감저의 찌꺼기들이 서로 얽혀 단단하게 뭉친다. 인간의 감정의 저 바닥까지 훑고 퍼올린다.

최지우의 연기가 조금은 아쉽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다. 무미건조한 목소리인데 작위적인 느낌이 강하다. 표정까지 너무 풍부하다. 하기는 그래서 한국드라마만의 끈적거림이 제대로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름 뒤에 '님'은 아니다. 차라리 이름 뒤에 '씨'를 붙이거나, 아주머니나 언니, 혹은 누나로 부르는 쪽이 더 낫다. 내내 거슬렸다.

"왜 이러세요, 모양 빠지게?"

찌질해 보인다. 한심해 보인다. 남자다. 어른이다. 한 가정의 가장이며 회사에서는 부장으로 중간관리자의 자리에 있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이 있다. 그러나 그는 아이들마저 실망시키며 아버지이기를 고민하고 있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사랑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가족을 생각한다. 진실과 진심에 대해서.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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