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상속자들 - 차은상의 현실, 보기엔 가까워도 가보면 멀겠지?

까칠부 2013. 10. 17. 07:47

"보기엔 가까워도 가보면 멀겠지?"

 

김탄(이민호 분)이 극장에서 고백한 것을 말하려 하자 차은상(박신혜 분)은 짐짓 이렇게 말을 돌린다.

 

"보기에도 멀구만!"

 

핀잔을 주려던 김탄이 순간 멈칫하고 있었다.

 

"나 안 갈 건데!"

 

HOLLYWOOD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손가락은 HOLLYWOOD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정작 차은상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영화에서나 보던 꿈의 공장이 아니었을까. 아니 실제 차은상 자신이 김탄에게 직접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도 했다.

 

"어차피 깨면 그만인 꿈이거든. 한여름밤의 꿈."

 

차은상은 현실을 안다. 알아도 너무 잘 안다. 어머니가 제국그룹 회장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고 있다. 어렸을 적 친구인 윤찬영(강민혁 분)은 부유층만 다닌다는 제국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꿈을 꾸기에는 현실이 너무 가까이에 있다.

 

당장 옆에 있으니 가깝게 느껴진다. 손에 닿는 곳에 있으니 잡을 수 있을 것처럼 여겨진다. 격의없이 말도 놓고, 함께 손잡고 거리를 뛰어보기도 했다. 극장에서는 설레는 고백도 받아봤다. 그러나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김탄과 자신은 사는 세계부터가 너무 다르다. 둘은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크고 화려한 저택과 아름다운 약혼녀, 그리고 그저 꿈속에서나 그려보았던 풍요롭고 여유로운 일상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다. 절대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는, 그럴 리 없는 것들이 그의 주위에는 너무 많다. 그 또한 같다. 당장은 어떨지 몰라도 어느 순간 꿈에서 깨고 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고 말 것들이다.

 

체념에 익숙하다. 포기가 빠르다. 어차피 어차피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면 일찌감치 포기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한다. 어차피 가질 수 없다면 욕심내봐야 상처만 받는다. 어차피 가지지 못할 것이라면 미련을 가져봐야 자신만 아플 뿐이다. 언니가 모든 돈을 가지고 도망쳤음에도 악착같이 찾으려 하지 않는다. 미국에 더 이상 머물 돈도 없다. 깨어날 것을 대비한다. 놓아 버릴 것을 예비한다. 어차피 꿈에서 깨고 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단 한 번도 김탄의 고백에 대해 차은상은 가타부타 자신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김탄은 차은상의 꿈속에서 살고 있었다. 차은상이 꿈꾸던 것들이었다. 차은상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왔던 것들이었다. 차은상이 현실로 돌아간 뒤에도 김탄은 지금까지처럼 계속해서 꿈속에 남아 머물게 될 터였다. 현실로 돌아가는 것은 차은상이다. 김탄은 그래서 거칠 것도 주저할 것도 없다. 상처받는 것은 차은상이다. 상처입고 아파하는 것은 차은상 자신일 터다. 현실인 채가 좋다. 꿈에 홀리기보다 각자의 현실에 충실하며 사는 것이 현명하다. 김탄도 안다. 그래서 말을 머뭇거린 것이었고, 그녀를 붙잡으려 한 것이었다. 다시 돌아갈 것을 알기에. 차은상에게 김탄의 현실이 꿈이라면 김탄에게는 차은상이 꿈이었다.

 

왕궁의 무도회는 신데렐라의 꿈이었다. 그래서 마법의 힘을 빌었다. 요정의 힘을 빌었다. 마법이 끝나면 신데렐라는 다시 재투성이의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언니를 핑계로 멀리 기회의 땅 미국까지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꿈을 보았다. 자신이 꿈꾸던 일상을 현실에서 보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끝나게 될 꿈이었다. 자정이 넘으면 신데렐라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신데렐라를 찾는 것은 왕자의 몫이다. 신데렐라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런 신데렐라를 다시 꿈으로 이끄는 것은 꿈에서 본 왕자 밖에 없다.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래서 꿈이다.

 

유리구두는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유리구두 같은 것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왕자가 쫓던 것도 유리구두의 주인이 아닌 기억의 주인이었다. 설레이던 순간의 감정들의 주인이었다. 마지막 순간 차은상은 김탄을 끌어안고 있는 유라헬을 본다. 김탄은 자신을 외면한 채 멀어지는 차은상을 외쳐부른다. 상처가 남겠지만 상처란 사랑보다 더 깊은 흔적을 남긴다. 만남을 기약한다. 예고편까지 굳이 언급해야 할까? 무도회는 끝났다. 꿈은 끝났다.

 

놀라울 정도로 디테일하다. 왕자가 신데렐라와 사랑에 빠진다. 신데렐라가 자신을 사랑한 왕자에게 선택을 받는다. 신데렐라가 먼저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신데렐라는 오히려 도망을 친다. 왕자를 향한 자신의 감정마저 돌아보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 서두르던 신데렐라의 감정이 읽히는 듯하다. 이대로 헤어지면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라. 재미있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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