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일제강점기 한반도는 근대로 들어서고 있었다.
둘째 그러나 과연 그것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 때문이었는가?
즉 반드시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지배를 거쳤어야지만 한반도는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는가?
오히려 많은 근대적인 제도와 문물들이 구한말 조선과 대한제국 조정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어차피 당시 현실에서 서구의 문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생존을 위한 필연이었다.
당시 구한말의 많은 지식인들도 이에 동의하고 있었다. 과정이 문제일 뿐 결과는 필연이었다.
셋째 그렇다면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지배는 한반도에 전혀 아무른 긍정적 영향도 끼치지 못했는가?
문명의 발전은 외부의 자극을 필요로 한다.
어차피 구한말에도 많은 지식인들은 일본을 조선이 쫓아야 할 롤모델로 여기고 있었다.
일본을 닮자. 일본을 배우자. 일본의 제도와 문물을 통해 근대를 배운다.
굳이 정의하자면 식민지근대화가 아닌 식민지 근대성일 것이다.
그리고 이조차도 필요조건이라기보다는 충분조건에 가깝다.
말했듯 구한말에도 지식인들은 일본으로부터 자극을 받으며 근대화에 대한 이상을 키우고 있었다.
넷째 그래서 결론적으로 한반도는 식민지지배를 거치며 근대화되었는가?
보다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보자. 어째서 한국은 지금도 음력설을 중요한 명절로 쇠고 있는가?
양력이 일반화되었다. 중국도 일본도 양력설을 한 해의 시작으로 여긴다. 우리는 둘 다 쇤다.
일본에 의해 부정당한 전근대적 요소들이 일본에 대한 반감과 함께 생명력을 이어간다.
일본에 대한 반감이 일본에 의해 폐찌된 조선의 전통들을 다시 되살리도록 만든다.
심지어 근대화의 과정에서 도태되었어야 할 대형육식포유로조차 살렸어야 한다고 말한다.
비슷한 예로 이슬람의 원리주의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서구열가의 침략이 이슬람으로 하여금 종교적 원리주의를 강화하여 대항하도록 만들었다.
아니 실제로도 일제강점기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지배를 도운 것은 양반들이었다.
양반의 향촌에 대한 지배력은 오히려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강화되었었다.
소작인의 지위는 격하되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더 열악한 위치에 놓였다.
해방 이후로도 그같은 경향은 한국의 농촌사회 곳곳에 나타나고 있었다.
형평사 운동에서 보듯 천민에 대한 차별도 사라지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모든 것을 초기화시켜놓고 있었다.
일본제국주의의 지배에 도움이 된다면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요소들조차 다시 살리고 있었다.
다섯째 한 마디로 지금 대한민국이 누리는 성장과 번영은 우리들 자신의 실력이라는 것이다.
일본제국주의가 물러나고 오히려 한반도의 문맹률은 급격히 낮아진다.
식민지지배 이전 조선에는 2만 곳 이사의 서당이 있었다.
그러나 식민지지배를 받으며 미취학 및 문맹자의 비율이 몇 배나 늘어나고 있었다.
한국인의 높은 교육열과 지나칠 정도의 상승욕구가 선진문물의 수입에 적극적이도록 만들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미국의 영향력강화는 미국을 발전의 롤모델로 여기도록 만들었다.
적극적으로 배우고 익히며 하나씩 자기화해간다.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지배로 인해 단절되었던 역사가 이어지게 된다.
역설적으로 바로 그런 부분에서 박정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전근대를 단절하고 근대로 이행해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박정희였으니.
농촌의 향촌사회를 해체하고, 봉건적 질서를 무너뜨렸다.
전통적 가치를 국가와 민족이라는 - 그보다 자본주의의 물질적 가치와 바꿔 버렸다.
철도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런 건 근대화되기 전에도 놓을 수 있다.
도로를 닦고, 다리를 놓고, 공장을 짓고, 조선시대에는 없었을까?
근대화란 시대의 이전이다. 전근대와 단절되는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근대화는 언제 이루어졌는가?
해방 이후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 위에서 한국인들은 새로운 역사를 일구어냈다.
자학이 심하다. 그런데 그것이 일본의 덕이라? 식민지지배를 받은 덕분이라?
그것이 우익이 된다. 보수가 된다. 우습다. 식민지지배도 긍정적이었다.
한국의 뒤틀린 역사인식을 보게 된다. 뒤틀린 역사의 잘못된 흔적이다.
참고로 좌파라고 다른가면 그것은 또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조선총독부에서 찾는다.
심지어 해방되지 않았다면 일본인으로서 보다 풍요롭고 성적으로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어디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느냐면 인간을 배제한 기계적 계량화에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개인은 없다. 역사 앞에서 모든 개인은 피동적 객체에 불과하다.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탁월한 역량으로 베풀어준다.
한국 좌파들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의 선민의식은 여기까지 와 있다.
대중이란 그저 먹을 것인 쥐어주면 만족하는 돼지에 불과할 뿐.
본질을 깨닫는다. 식민지근대화론의 이유다. 어차피 식민지의 백성이란 인간이 아니다.
역사가 정치가 된다.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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