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없다. 무협지를 뒤지는데 문득 가상역사소설 하나가 눈에 띈다.
원래 국내에서 쓰여진 가상역사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때로 토할 것 같다.
정말 역겨운 부제가 붙어 있었다.
"성웅 이순신, 왕에게 반기를 들다"
그런 주장들을 흔히 보게 된다.
이순신이 군사를 일으켜 조선왕조를 뒤집었으면 어땠을까?
그런데 그런 예는 아주 흔하다.
대부분의 건국왕들은 전쟁영웅이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만 하더라도 고려말 숱한 외적의 침략을 막아낸 구국의 영웅이었다.
그래서 이성계에 대한 평가가 어떠한가? 그는 구국의 영웅인가? 단지 조선의 건국왕인가?
군인으로서 명령을 받들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장으로 나간다.
목숨을 걸고 싸워 마침나 나라와 백성을 지킨다.
군인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미덕이다.
사사로이 자신이 가진 힘과 전공을 믿고 권력을 잡으라는 말따위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지난 수십년 간 한국에서 그것은 상식이 되어 있었다.
정작 가장 부끄러워해야 할 군에서 그런 군인들을 존경하는 선배로 여긴다.
힘이 있고 기회만 된다면 마땅히 나라를 뒤집어 권력을 잡는다.
혁명을 일으켜 자기가 원하는 나라를 만들어간다.
누군들 안 그럴까? 크메르 루주도 자기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국가의 모델이 있었다.
그리고 그같은 역사는 어린 세대들에게까지 강하게 영향을 미쳤다.
어째서 이순신은 그만한 실력과 힘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조선을 바꾸려 하지 않았는가.
아쉬운 정도가 아니라 억울한 것이다. 때로 이순신을 폄하하는 이유로 작용하기도 한다.
실력이 있고 기회만 주어진다면 마땅히 권력을 쥐고 이상을 추구한다.
그같은 가치관이 현실에서까지 이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특별한 것이 아니다. 원칙도 도리도 무시한 채 결과만을 추구하는 이 사회 분위기가 그렇다.
군인으로서 설사 억울한 일을 당하여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본분을 지키는 것이 당연한데,
그마저 이런 식으로 능욕하려 든다.
끝까지 군인으로서 본분을 다하려 한 이순신을 소설로 모욕하려 든다.
그야말로 군사독재의 승리라 아니 할 수 없다.
군사독재도 정당하다. 왜? 그들에게는 그만한 실력과 능력과 기회가 주어졌으니.
쿠데타도 따라서 혁명이라 불려야 한다. 일베는 다시 말하지만 절대 특별하지 않다.
기분이 나빠졌다. 아예 근처도 가지 않는 것인데.
국내에서 쓰여진 가상역사소설들이 대개 그렇다.
이렇게까지 한국인의 열등감이 뿌리깊은가. 열등감에 찌든 군상들만큼 보아주기 힘든 것도 없다.
이순신이 위대한 것은 그가 끝까지 군인이고자 했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되려고도, 권력을 쥐려고도 하지 않았다. 단지 군인으로서 본분에만 충실했다.
그같은 가치가 외면당한다. 부정당한다. 훼손되고 만다.
기황후는 그래서 이제 화도 나지 않는다. 그러려니. 한국사회가 그렇다.
때로 깊이 한국사회에 절망하곤 한다. 사소한 것들로도.
기분나쁘다. 무척. 화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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