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여행을 가기로 했다. 한 달 수입만 10억이다. 가진 전재산이 1천만원이다. 10억 버는 쪽에서 이렇게 투덜거린다.
"나는 너랑 여행을 가려고 1억이나 냈는데 너는 어째서 1천만원도 내지 않는가? 이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그러면 전재산이 1천만원인데 무어라 하겠는가?
오랜만에 만나서 밥이나 한 끼 같이 먹으려 한다. 괜찮은 맛집이라고 데려가서 요리를 주문한다. 메뉴판을 보니 기본이 10만단위부터 시작한다. 한 달 월급이 100만원 겨우 넘는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사이이니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까? 아직 남은 할부금도 많다.
"내 마음이 우습냐? 내 진심이 우스워?"
"나는 너를 위해 용기를 냈는데 너는 나를 위해 그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는 거야!"
잔인하다. 차은상(박신혜 분)과 사귀어서 김탄(이민호 분)이 감당해야 할 것들이란 과연 무엇일까?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고,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각오해야 하는가? 그러나 차은상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당장 자기가 먹고 입고 자는 모든 것이 김탄의 집에서 어머니가 가정부로 일해서 버는 수입에서 나오고 있다. 빚까지 갚아야 한다. 제국그룹 회장에게 밉보여서 쫓겨났는데 어디에서 이런 좋은 조건의 일자리를 다시 구할 수 있을까?
제국고등학교에도 남아있을 수 없다. 대학은 이미 포기했다. 그래도 고등학교라도 국내 최고의 명문을 다녔다는 타이틀을 가지자. 그런데 그 제국고등학교로 전학할 수 있게끔 조치해 준 사람이 김탄의 아버지 제국그룹 회장 김남윤(정동환 분)이다. 제국고등학교 이사장이 김남윤의 법적인 아내이며 김탄의 법적인 어머니이고 한 정지숙(박준금 분)이다.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하려 해도 김남윤이 마음만 먹으면 그마저도 얼마든지 휘방놓을 수 있다. 제국그룹이라고 하는 이름 앞에 차은상과 같은 하잘 것 없는 계집아이따위 아무것도 아니다.
그에 비하면 김탄이야 비록 서자라고는 하지만 법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제국그룹 회장의 아들로 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어느 정도 시련도 있을 것이다. 용기를 낸 만큼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결국은 김탄이 마음먹기에 달려있을 것이다. 정확히 김탄이 마음을 돌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 할 때 한때의 실수로 여기고 아버지 김남윤이나 형 김원이 받아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런 믿음이 있다.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다. 유라헬(김지원 분)과의 파혼을 언급하며 아버지 앞에서 떼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도 과연 김탄의 진심이라는 것이 차은상이 모든 것을 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겠는가. 김탄이 마음을 바꾸면 그나마 믿었던 김탄의 진심마저 잃게 되는데.
길고양이가 있다. 집주위를 서성이는 예쁜 고양이다. 문득 동정심에 밥을 준다. 밥도 주고 물도 주다 정이 들었다. 쓰다듬으려 손을 내민다. 고양이가 도망간다. 화를 낸다.
"내가 저를 위해 해 준 게 얼마인데..."
그러나 밥을 챙겨준다고 사람에 대한 경계를 늦추었다가 어디서 어떻게 사람들에게 해꼬지를 당할지 모르는 것이다. 단지 주인없는 고양이라는 이유만으로 때리고 괴롭히고 심지어 죽이고. 자칫 그냥 내버려두었으면 아무일없었을 고양이가 주위에서 밥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어 같은 동네사람들에게 괜한 미움을 사서 더 이상 그 동네에서 살 수 없게 되어버리기도 한다. 구청에서 잡아가 안락사시키거나, 혹은 자기가 직접 약을 놓거나 해서 죽이거나. 그런데도 길고양이는 밥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따라야 할까?
그런 점에서 최영도(김우빈 분)는 참 솔직하다. 어째서 차은상이 자기를 경계하는가 알지 못한다. 무엇때문에 그토록 자기를 거부하는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아예 않는다. 자신이 차은상과 같은 사회배려자전형에게 그동안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그것이 차은상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는지. 그것은 공포였다. 나중에는 공포마저 초월해버렸다. 될대로 돼라. 자기가 좋아한다는데. 자기가 이렇게 차은상을 좋아하고 있다는데. 어린아이들이다. 학교가 배경인 것이 맞다. 김탄이나 최영도나. 지금 자기가 누리는 것들이 너무나 당연하다.
비서실장인 윤재호가 김원(최진혁 분)에게 아버지가 전현주(임주은 분)와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전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김원을 위해서였을까? 김원이 혹시라도 불이익을 당할까봐? 김원과 전현주의 관계가 지금처럼 계속된다면 회장의 분노는 결국 아들 김원이 아닌 남인 전현주를 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들인 김원은 마지막 순간에야 버릴 수 있지만 전현주는 아무때라도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 전현주가 상처받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쩌면 자신의 아픈 기억을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차은상도 유독 신경쓴다.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철모르는 도련님과 어느새 세상을 너무 알아버린 가난한 집 딸의 관계란. 동화와는 다르다. 왕자님을 만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신데렐라는 행복했을까? 백설공주는 과연 행복했을까? 라푼젤은 어떨까? 넘어서는 안되는 선이 있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과 김탄의 방, 그녀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공간이다.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감당해야 할까? 그것을 김탄은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을 어떻게 풀어가려는가?
차은상의 처지에 공감하게 된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에게 차은상이란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 학교를 사회 전체로 넓힌다. 차은상처럼 대기업의 후계자가 갑자기 나타나 사랑을 고백해온다면 올타꾸나 응해버리고 말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면서도 해피엔드를 기억한다. 꾸이 이루어진다. 열정이 이루어진다. 어떻게 그들은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 두 사람 사이에 놓은 현실의 벽이 너무나 버겁고 무겁다. 우울하지만 보게 된다.
차은상은 더 이상 최영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이 생겼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 생겼다. 김탄만도 그녀는 충분히 버겁다. 아무 감정도 없으면 좋으련만 이미 김탄을 좋아하게 되어 버렸다. 김탄을 영영 외면하는 것도, 그렇다고 김탄의 마음을 받아주는 것도 그녀에게는 세상의 종말과 거의 동급이다. 최영도가 어떻게 하든. 아니 계기가 되어 줄 수 있다. 최영도로 인해 모든 사실이 밝혀졌을 때 핑계김에 홀가분해질 수 있다. 약간은 자포자기다. 남아 있는 이성이 그래도 최영도의 입을 막으라 강요한다.
전현주도 이미 오래전부터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버려질 것을 알고 있었다. 김원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도. 전현주는 차은상의 미래다. 그렇게 믿는다. 김탄은 김원과 다를 것이다. 이것은 끝일까? 반전이 있을지 모른다. 사랑이 전부가 아니다. 차가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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