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분배다. 그리고 정의다. 곧 관계다.
일정한 자원이 있다. 그것을 구성원이 나눈다. 어떻게 나눌 것인가?
그래서 그것이 모두의 동의를 얻었을 때 정의가 된다.
정치는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모든 구성원들이 동참한다.
이를테면 파라오는 신의 아들이다. 그에 동의했을 때 이집트는 큰 문제가 없었다.
황제는 하늘의 아들이다. 그에 동의하고 납득했을 때 중국은 천자의 아래에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부당하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동요가 일어난다. 그리고 재편된다.
그래서 정치는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역사상 정치에 피가 흐르지 않은 적이 없었다.
누구를 우선할 것인가? 누구를 배제할 것인가? 누구의 규칙을 따를 것인가?
민주주의는 그 첨단에 있는 정치제도다. 피를 흘리는 대신 표로써 대결한다.
그동안 소외되어 있던 다수의 구성원들이 주체로써 참여한다.
싸운다. 다툰다. 논쟁하고 경쟁한다. 그러면서 답을 찾아간다.
그런데 그것을 그저 쌈박질이나 한다고 말한다. 정치인들이 싸움질이나 한다고.
그래서 정치란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가장 필요없는 기관이 국회라 말한다.
지난 대선과 이번 대선 국민이 선택한 바다.
국회나 정치따위 상관없이 일관되게 힘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정부를 원한다.
민주주의의 장점은 비단 자기 입맛에 맞는 대통령을 선출해 정부를 구성케 하는 것에만 있지 않다.
국회의원도 그렇다. 지자체장이나 기초의회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이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그것을 전혀 생각지 않고 투표를 하니까.
거물이거나. 아니면 특정한 정당에 몸을 담고 있거나.
아니 정당은 중요하다. 정치인 개인의 신념보다 정당의 지향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리고 자신을 대신해 국회에서 싸우도록 요구한다.
그런데 싸우지 말라 한다. 싸워야 하는데 싸우지 말라고 뜯어말린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정치혐오와 민주주의는 절대 함께 갈 수 없다.
정치혐오의 끝은 결국 독재로 수렴할 수밖에 없다.
정치 없는 정치란 무엇인가?
조선시대 그래서 탕평의 끝에 세도정치가 나왔다.
세도정치의 씨앗을 뿌린 것은 바로 정조.
처음으로 세도정치를 시작한 김조순의 안동김씨가 정조가 안배한 순조의 친위세력이다.
하기는 영조 때부터 정치는 영조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세도정치 시기 조선에서는 당쟁이 사라져 있었다.
당쟁이 남아있을 때와 당쟁이 사라졌을 때 어떤 사회가 더 건전했는가?
그래도 당파싸움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 말한다.
역시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의 역사교육의 폐해다.
그래서 더 정치를 혐오한다. 증오한다.
그저 답답할 뿐이다. 정치가 무언지... 자기랑 상관없겠지.
민주주의는 과분하다. 아직은 이르다. 한참.
'문화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택의 이유 - 행복을 빌리다! (0) | 2013.11.27 |
---|---|
정치란 기만이다... (0) | 2013.11.24 |
비례의 원칙... (0) | 2013.11.13 |
포퓰리즘이란... (0) | 2013.11.12 |
에일리와 누드 - 자기의 자기소유에 대해... (0) | 2013.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