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중국인과 계약 - 엑소 루한의 소송과 관련해서...

까칠부 2014. 10. 12. 00:36

근대 청왕조가 서구열강과 관계를 맺으며 많은 손해를 보게 된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조약이었다. 원래 중국인에게는 외교적 약속으로서의 조약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다. 당장의 형세가 불리하면 적당히 미끼를 던지고, 그리고 다시 형세가 유리하게 돌아오면 아무렇지 않게 어겨버리면 되었다. 계약이란 힘으로 강제할 수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되는 타협에 불과했다.

 

하기는 서구열강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약속을 지키는 것도 상대가 자신과 대등하다는 판단이 섰을 때 뿐이었다. 아니라면 어김없이 약속을 어겨버린다. 제국주의 침략 역시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미개한 야만인이나 이교도와는 계약이란 성립할 수 없다. 한국의 기업문화에서 갑과 을의 관계가 명확할 때 계약이라는 것이 의미없어지는 것과 같다. 고용계약서가 있어도 일방적인 고용문화에서는 고용자는 오로지 사용자가 의도한 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다.

 

엑소 루한의 일방적인 계약파기에 대한 중국팬들, 혹은 대중의 반응을 보며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다. 분명 자기가 동의해서 맺은 계약이다. 그리고 예전과는 달리 표준계약서가 적용되면서 일방적으로 불리하다거나 한 내용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SM은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를 하는 연예기획사로 손꼽히고 있기도 하다. 설사 어느 정도 불만이 있더라도 일단 계약을 지키며 SM에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순서다. 그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이다. 하지만 한국 기획사와의 계약이니까.

 

아마 비교할 수 없이 거대한 중국시장에 대한 자신감일 것이다. 자신들이 한국의 연예인들을 먹여살린다. 그동안 경제적으로도 많은 성장을 이루었다. 그렇지 않아도 열강 가운데 하나인데 이제는 한국을 눈아래로 보아도 상관없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크리스와 루한에 이어 엑소의 다른 중국인 멤버들에게서도 심상치 안은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아주 관계가 없지는 않지 않을까.

 

계약이란 보편의 세계를 전제한다. 언제 어디서 맺은 계약이든 다른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언제 어디서나 똑같이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어디서는 되고 어디서는 안된다면 그것은 계약으로서 의미가 없다. 북한이 외국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는데 곤란을 겪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미 한국과의 관계에서 몇 번 그런 경우를 보였다. 언제 어떻게 계약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지 모른다. 그나마 중국은 특수한 관계로 인해 북한이 함부로 계약을 무효화할 수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 맺은 계약이 중국에서 이렇게 무시당한다면.

 

앞으로 한국의 연예기획사에서 중국인 멤버를 데뷔시키기가 상당히 어려워졌다. 연습생 시절 혹독하게 단련하는 과정까지도 나중에 문제삼으려 한다. 데뷔하고 겪게 되는 여러 어려움들조차 기획사의 책임으로 돌리려 한다. 멤버나 기획사와 돈을 나누는 것도 거부한다. 무엇보다 아무리 계약을 맺었어도 그조차 국경을 넘어가면 휴지조각이 되어 버린다. 아예 중국인 멤버는 없는 것이 낫다. 벌써 세 명 째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