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대한민국의 정통성 - 임시정부 vs 조선총독부

까칠부 2014. 10. 24. 03:59

역사를 민족의 관점에서만 이해하려 해서는 안된다. 아니 아예 민족이란 자체를 실재하지 않는 관념에 의한 허구라 단정짓기도 한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역사 - 특히 일제강점기를 포함한 근현대사에서 민족의 개념을 배제한다면 어떻게 될까?


최근 부쩍 힘을 얻고 있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단독정부 수립이야 말로 대한민국 역사와 정통성의 시작이라는 주장의 논리적 근거일 것이다. 실제 당시 한반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한 것은 구일본제국의 조선총독부였다. 대한제국의 뒤를 이어 현실의 권력으로써 한반도의 다수 구성원에게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에 비하면 과연 한반도에서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해 자신의 정부로서 인지하고 있던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어차피 고려와 조선은 다른 나라다. 고려 역시 신라로부터 항복을 받아내고 한반도에 통일왕조를 세우고 있었다. 중국의 청나라는 만주족이 한족의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세운 정복왕조였다. 그래서 중국의 역사에서 정통성은 어떻게 계승되어지고 있는가. 구일본제국이 대한제국을 무너뜨리고 한반도의 지배자가 되어 조선총독부를 세웠다면 과연 한반도의 역사에서 정통성은 누구에게로 계승되는가. 하기는 정통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도 있다. 어찌되었든간에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으니 대한민국의 역사는 비로소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전의 역사는 단지 과거의 사실로써만 존재할 뿐이다.


민족이 부정되니 반민족 역시 부정된다. 단지 당시 한반도를 실제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조선총독부에 협력한 개인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조선총독부를 대신해서 미군정이 들어서고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었을 때 그들은 역시 새로운 권력을 위해 충성하고 헌신해 왔을 뿐이었다. 당시 한반도의 독립을 위해 애쓰던 독립운동가들이란 그러한 역사의 거대한 흐름 주위에 존재하던 단지 주변부에 불과하다. 명이 멸망하고 만주족의 청을 몰아내고 한족의 명을 다시 일으키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역사의 주류로 여기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한반도의 독립을 위해 애쓰기는 했지만 대한민국의 역사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부터 시작되므로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바는 없는 것이다.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실재하는 역사관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굳이 이념의 잣대로 판단할 필요 엾이 좌파든 우파든 민족을 부정하는 탈민족주의 역사관을 갖는다면 이같은 역사적 판단에 동의하고 있을 것이다. 여러해전 이슈가 되었던 일본군성노예 문제에 있어 한국인 자신의 성찰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바로 그같은 역사관을 전제하고 있었다. 결국 일본군성노예를 모집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당시 식민지의 한반도인 역시 다수가 참여하고 있었으니 그 책임을 한국인 자신도 역시 나눠져야만 한다. 한국인과 일본인이라는 민족을 배제하면 결국 당시 참여한 당사자 개인만이 남게 된다. 이미 오래전부터 특히 지식인 사회에서 널리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현실일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 서로 입장이 갈릴 수 있는 것이 민족 다음에 무엇을 놓느냐는 것일 게다. 개인으로 민족을 대신한다. 어차피 대한제국이든 일본제국주의든 한반도의 다수 피지배층을 억압하고 착취한 것은 같다. 오히려 대한제국 쪽이 구일본제국보다 더 야만적이고 폭력적이었다. 그런데도 민족의 이름으로 대한제국이 더 낫다며 개인들에게 강요한다. 개인은 더 나은 정부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개인의 입장에서 시대를 이해하고 판단한다. 그 시대가 다수의 개인들에게는 어떤 의미이고 어떤 역할을 했는가. 반면 민족을 배제한 국가란 단지 권력이며 폭력에 불과할 뿐이다. 그나마 민족주의 아래에서 개인이란 동등한 민족의 구성원일 테지만, 그러나 국가라는 이름 앞에서 개인이란 오로지 국가의 지배를 받아들이느냐의 여부로 판단된다. 극단적으로 국가의 지배를 거부할 경우 비국민이고 국가는 그들에 대한 어떤 의무도 가지지 않는다. 국가의 지배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면 그들은 오히려 애국자로 칭송받는다. 일제강점기 한반도의 유일한 국가는 구일본제국이었으며 그들에 충성하는 것은 현실이었다.


수십만의 사람들이 무참히 학살당했음에도 그들은 국민이 아니었다. 억울하게 체포되어 고문당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었음에도 국가의 지배를 부정하거나 혹은 도전하려 했기에 그들은 국민일 수 없었고 따라서 국가에게는 어떤 책임도 물어서는 안되었다. 유독 보수진영의 탈민족주의 역사관이 비난받는 이유일 것이다. 개인이 일상화된 현대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을 부정하고 무시한다. 민족도, 역사의 연속성도 부정하면서 정작 국가의 정통성이라는 케케묵은 논리를 역사의 전면에 내세운다. 사실상 자기부정이다. 그같은 모순이야 말로 그들이 가진 역사관의 어떤 의도를 상징하여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무엇을 위한 역사관인가.


개인을 위해서는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지배도 긍정할 수 있는 것과 국가를 위해서는 수십만의 목숨도 당연하게 희생시킬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섞일 수 없는 정반대의 가치일 것이다. 비슷한 역사관을 가진 듯 보여도 두 역사관에 대한 일반의 반응이 서로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물론 전자도 그다지 한국사회에서 크게 환영받지는 못한다. 하지만 한국의 대중이 비난하는 이들을 전자 역시 다른 이유로 같이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한국의 일반 대중이 비난하는 이유 역시 어쩔 수 없는 과정이며 희생이었다 말한다. 그래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었기에 자신들도 있을 수 있었다. 보다 원초적인 일차원적 이유도 물론 있겠지만 말이다.


탈민족이라기보다는 국가주의 역사관일 것이다. 탈근대의 탈민족이 군사독재의 권위주의와 만나 변이를 일으킨다. 일제강점기와 현대를 관통한다. 굳이 구일본제국이어도 상관없다. 한민족의 국가가 아니어도 전혀 문제될 것은 없다. 국민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그 목숨까지 빼앗아도 국가는 항상 정의롭다. 충성스런 신민이야 말로 훌륭한 인간이다. 현실에 훌륭히 적응한다. 정의다.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쓰다가 졸려서 망한 글. 시간 들여서 차근히 썼으면 좋았을 것을, 일때문에 피곤한데다 너무 여유없이 쫓기며 쓰다 보니 중간에 제풀에 무너지고 맘. 어차피 전업글쟁이도 아닌 주제에 너무 무거운 주제이기도 했고. 좀 있으면 또 나가봐야 함. 다시 쓸 시간도 없음. 한심함. 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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