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전시작전권은 평시작전권과 함께 한국정부가 미국에 위임한 것이 아닌 미국이 한국정부로부터 박탈한 것이었다. 이유인 즉, 한국군은 아직 자신의 군대를 지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현리전투라는 게 있다. 북한에서 수십년동안 강제노역을 하다가 겨우 탈출해 돌아온 조창호씨가 바로 여기에서 포로가 되었었다. 포로송환을 위한 노력조차 그동안 전혀 없었다. 그게 바로 대한민국이다. 아무튼 바로 이 현리전투에서 3군단 3개 사단이 고작 중국군 1개 중대에 퇴로가 막혀 속수무책으로 와해되고 있었는데, 이때 혁혁한 공훈을 세운 것이 3군단장 유재흥과 9사단장 최석이었다. 다른 사단장도 별다를 건 없었고.
고작 1개 중대였다. 오후쯤에나 1개 대대가 집결해 있었다. 현리에 집결한 국군 제 3군은 3개사단, 그런데 유일한 퇴로이던 오마치고개를 잃은 것을 알면서도 7사단은 아무말 없이 혼자서 퇴각해 버렸고, 9사단 역시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 나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퇴로가 막혀 장병들이 불안해하는데 유재흥은 돌파하란 지시만 내리고 군단사령부로 돌아감으로써 군단장이 도망쳤다는 오해만 퍼뜨리고 만다. 1개 연대씩 차출해 돌파하자는 계획은 세워졌지만 명령도 제대로 연대 이하 제대까지 전파되지 않았다. 자기 임무가 뭔지도 모르고 허우적거리다 전투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적전도주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3사단장 김종오가 수습을 위해 애써보기는 했지만 이미 상황은 그의 역량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있었다. 장비도 무기도 모두 버리고 뿔뿔이 흩어져 그야말로 도주하는데 군단장인 유재흥은 자신의 군단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겨우 미 8군이 예비대를 투입해서 전선을 유지하고 있던 상황에 그나마 병력을 수습하여 하진부리의 방어를 지시받은 3군단이 다시 무력하게 퇴각하면서 미 8군 사령관 밴플리트는 분노하게 된다. 인구에 회자될 대화일 것이다.
"유장군, 당신의 3군단은 지금 어디 있소?"
"모르겠습니다."
"모르면 군생활 끝나나?"
결국 이 일을 계기로 밴 플리트에 의해 국군 제 3군단은 해체당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이 미군 지휘부에 한국군 지휘관에 대한 강한 불신을 심어주면서 궁극적으로 한국군에게서 모든 지휘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결론에까지 이르게 된다.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겠지만 그동안 보여준 한국군 지휘관들의 무능함이 한국군이 전시는 물론 평시작전권까지 스스로 가지지 못하게 되는 원인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이승만의 의도는 한국전쟁 당시에만 지휘권을 미군에 이양하여 지휘체계를 일원화하겠다는 것이었지만, 이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이것은 조약이 개정되기까지 항구적으로 유지되게 된다.
다시 말해 굳이 미국이 한국군에 대한 지휘권을 가져가려한 이유는 한국군에게 병력이 부족하거나 장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한국군을 지휘할 지휘관들의 역량에 대한 강한 불신이 그 원인이 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평시작전권을 환수한 지금도 미군으로부터 미군의 필요에 의해 다수의 정보와 장비지원 및 합동훈련이 이루어지고 있다. 필요하다면 유사시 한국전쟁 당시 처럼 미군에 전시지휘를 맡기는 것도 얼마든지 정치적 판단에 의해 가능하다. 전시연합사령부를 구성하면서 그 사령관에 미군이 앉는다면 미군을 중심으로 단일한 지휘체계를 갖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실제 여러 나라가 함께 참여하는 다른 전쟁에서도 그런 식으로 지휘부를 구성한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체계를 갖추고 훈련을 쌓는다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문제는 미군이 지휘권을 가지지 않으면 스스로 북한과 싸울 능력이 안된다 여기는 한국군 지휘부 자체인 것이다.
한국군에는 아직 그만한 역량이 갖춰져 있지 않다. 그렇다면 부족한 가운데서도 어떻게든 상대에게 최대한의 피해를 강요할 수 있도록 전략과 전술을 연구하며 체계와 훈련을 가다듬는 것이 바로 군지휘관의 자세인 것이다. 지휘권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는 사실 정치적인 문제다. 필요하다면 외국군대를 끌어와 그들에게 지휘를 맡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군이 스스로 나라를 지키려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당장 미국에 어떤 다른 문제가 생겨서 한국군을 지원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거나 하면 그때 대한민국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오로지 한국군 자신의 책임인 것이다. 그런데 싫다. 미국에 다 맡기겠다. 미국의 그늘 아래서 미국이 시키는대로 미국이 주는 것들만을 받아먹겠다. 하기는 그러니까 이해가 간다. 한국전쟁 당시 무능하기 이를 데 없었던 한국군 수뇌부도 그렇게 스스로를 지킬 준비도 역량도 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군이 먼저 나서서 지휘권 환수에 반대한다. 군이 가장 앞장서서 나라를 지키는 것은 다른 나라 군대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군대가 사라지면 자신들만으로는 나라를 지킬 수 없다. 무력하고 비겁하다. 그토록 사병들에게는 용기와 패기를 가르치면서 어째서 군에는 그만한 호기를 갖춘 지휘관조차 찾아볼 수 없는 것일까. 그러니 전시작전권의 환수는 아직 이르다.
어쩌면 내가 전시작전권환수에 찬성하면서도 반대하는 이유일 것이다. 명분적으로 전시작전권 환수가 옳지만 전시작전권을 가지기를 오히려 거부하는 한국군 지휘부를 보면 그것은 아직 시기상조다. 스스로를 지키려는 의지도 용기도 없는 집단에게 어떻게 나라를 지키는 중대한 책임을 맡길 수 있을까. 부족할 때 외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닌, 아예 처음부터 외부에 기대려 한다. 이미 타성이 되었다.
아무리 좋은 장비를 주어도 그대로 놓아두고 몸만 도망치는 군대라면 그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아무리 많은 병력이 주어져도 한 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망칠 것이라면 그런 군대는 어디에도 필요가 없다. 한국전쟁이 그같은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국군은 그런 준비가 갖춰져 있는가. 군인들 자신이 알 것이다. 한국군에는 아직 전시작전권을 가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하여튼 재미있다. 고작 군사지휘권 가져오는 것 하나로 나라가 망하네 마네. 하기는 굳이 전시작전권을 가져올 이유도 그리 절박하게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러려니. 그냥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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