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이모네 집에 전축이 있었다. 이모부가 워낙 그런 걸 좋아하셔서. 그런데 한 번 음악을 들으려면 보통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아니 아예 나는 만지지도 못하게 했었다. LP판을 닦고, 바늘을 조절하고 어쩌고...
그건 마치 의식과도 같았다.
"나는 이제 음악을 들으려 한다."
음악에 허락을 구하고 자신도 마음을 가다듬는. 옆에서 보고 있으면 자연히 음악을 듣는다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우리집에 오디오가 잠깐 생겼을 때는 - 외삼촌이 잠시 머물며 맡겨놓은 적 있었다 - 도저히 그렇게는 못 듣겠더라. 몇 번 해 보다가 판 하나 말아먹고, 그냥 테이프데크로 카세트테이프만 들었었다. 편리했지만 그만큼 가벼웠다. 지금의 mp3는 더 가볍다. 고작 600원에 다운로드받아 듣다 지겨우면 지워버리면 되니. 그 시절 카세트테이프만도 내 용돈에서는 상당한 출혈이었던 터라.
하긴 게임을 하려고 해도 도스시절에는 일일이 유저가 설정해주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일정 용량 이상의 메모리를 요구하는 게임인 경우, config.sys며 autoexe.bat 파일을 만지느라 한참이 걸리곤 했었다. 물론 나중에는 아예 605k로 맞춰놓고는 부팅디스크를 만들어 놓기는 했지만, 그러나 다시 나온 610k게임. 그것 또 맞추느라. 게임을 하나 하려 해도 의식이 필요했다.
언젠가 말한 동의다. 사람이 무언가와 소통하자면 동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음식을 먹더라도, 음악을 듣더라도, 방송을 보더라도, 왜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먹으면 음식맛이 더 기억에 남는가. 맛있어서도 있지만 분위기 자체가 맛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정장을 갖춰 입어야 하고, 에티켓을 지켜야 하고, 단정한 종업원에 정갈한 식탁에,
그래서 허들이 있을수록 더 재미가 있는 것이다. 어려운 만큼 더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고 더 깊이 동의하게 되니. 없는 돈에 볼 것이 흔치 않던 시절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소리를 지르던 그런 것처럼. 인터넷에서 다운로드받는 것이 아닌 용돈을 모아 어렵사리 찾은 극장에서 보는 영화라는 것이다. 그만큼 설레고 그만큼 절실하다. 텔레비전을 보더라도 문을 열고 닫고... 우리집에도 있었다. 흑백시절 브라운관 자체가 예열되려면 시간이 걸려서 텔레비전을 켜 놓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던. 가끔 채널을 열심히 돌리다 보면 채널이 헐거워져서 채널을 맞출 때 번호판에서 약간 엇나가게 맞춰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말 그대로 아날로그다. 채널이 7과 9와 11만 있는 것이 아니라, 7.5와 9.34와 10.698도 있던 시절이었으니까. 부모님의 허락을 겨우 얻어 보던 만화영화와 심야시간 외화들은 얼마나 재미있었던가. 날아라 태극호, 달려라 승리호, 달려라 번개호, 우주전함 브이호, 별나라손오공, 그리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격제트작전과 에어울프.
확실히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다운로드받아 보게 된 이후로 드라마라는 게 재미가 없어졌다. 번거롭더라도 그 시간에 어떻게든 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본방을 사수하는 그게 재미있다. 말했듯 의식이다. 나는 이것을 보려 한다. 나는 이것을 보고자 한다. 동의의 의식. 그저 아무때나 다운로드받아 보는 것이야 우연히 길가다 대리점 창으로 비치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는 것만도 못한 것을.
밥을 할 때도 그래서 전기밥솥이 아닌 곤로에 할 때면 항상 밥에서 눈을 떼어서는 안되었다. 밥을 그냥 불 위에만 올려 놓으면 3층밥이 되어 버리는 이유다. 불조절이 중요하다. 원래 장작으로 밥을 지을 때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불이 확 일어나며 강불로, 그 다음에는 나머지가 타면서 중불로, 뜸을 들일 때는 재에서 남은 열로, 그것을 곤로로 조절해야 했으니. 어머니께서는 그래서 밥을 할 때면 부엌에서 떠나지 못하셨다. 한 구석에서는 통통통 도마에 칼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다른 한 편에서는 밥 끓는 소리가 들리고,
그러고 보면 우리집에 냉장고가 생긴 것도 꽤 나중이다. 그때까지는 찬장이었다. 그래서 오래 두면 상하는 음식은 겨울에나 먹는 것이었다. 겨울을 제외하고 항상 밥상에 오르는 것은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는 것들이나, 아니면 바로 먹을 수 있는 것들. 딱 먹을 만큼만, 많이도 못하고 밥상을 차릴 때마다 반찬을 새로 해야 했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어머니도 고생이 많으셨다. 지금이야 냉장고가 있으니 한 번 반찬 만들어 놓으면 며칠쯤이야. 소시지며 계란프라이며 그 흔한 것들도 그때는 그리 귀해서 쉽게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었다.
어쩌면 당시 어머니밥이 맛있었던 것은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정성이 의식이었던 것이다. 장을 봐오던 그 손길이 의식이었던 것이다. 먹겠다는. 맛있게 먹겠다는. 어머니의 손을 통해 우리는 음식들과 그 재료들과 소통하고 있었던 게지.
내가 왜 이렇게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는가. 우리집은 그리 형편이 좋지 못했거든. 가난하다는 건 때로 남들보다 더 느린 시간 속에 산다는 뜻이다. 집에 컴퓨터도 없는 아이들이 컴퓨터며 인터넷을 이해 못하듯, 컴퓨터가 있어도 사양이 낮으면 HD화질의 고해상도 동영상은 꿈도 못 꾸듯, 서울 외진 곳에, 허술한 삶을 살던 사람들에게는 남들보다 시간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전화도 늦게 놓았고, 냉장고도 늦었고, 앞서 말한 문이 달린 - 다리도 달렸다. - 텔레비전도 이모네서 보던 것을 나 국민학교 때야 물려받아 보던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도 부엌에는 곤로가 있었고, 아궁이에서는 물이 끓고 있었다. 연탄보일러 덕분에 아랫목 따로 없이 따뜻한 방에 잔 것도 중학교 들어가서.
내가 음악을 듣던 카세트라디오도 어디선가 주워다 고친 것이었다. 멀쩡해 보이길래 줏어왔더니 테이프데크만 문제였던 것이었다. 혼자 끙끙거리며 싸매고 일주일을 고생한 끝에 마침내 테이프재생도 녹음도 다 되도록 돌려놓을 수 있었다. 물론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분해해서 만져주어야 했지만. 음악을 듣는다는 게 그리 신기할 수 없었다. 그때 내가 가지고 있던 테이프가 영화음악 걸작선. 그때부터 용돈 모아서 아마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 씩 테이프를 사 모았을 것이다. 테이프를 사던 날에는 거의 며칠을 그것만 듣고 지냈다.
그리운 시간들의 기억. 하긴 이 블로그도 원래는 아날로그다. 워낙 하이텔 시절부터 글쓰기를 시작해서 그림 넣어 쓰는 게 그리 익숙지 않다. 하라면 하겠는데 굳이 그래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나 편한대로, 텍스트로만 이루어지던 그 시절처럼 지금도 텍스트로만 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람이란 나이를 먹을수록 또 시간은 느리게 가는 법이라.
모든 사람에게 시간은 같지 않다. 이게 아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겠지. 시간이 느리게 가는 사람들, 혹은 시간이 멈춰버린 사람들, 어쩌면 시간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한 사람들...
아마 오늘의 남자의 자격은 그런 이야기들일 것이다. 느리게 가는 시간 속에 잠시 뒤를 돌아보고 싶은. 한참 빠르게 가는 시간 속에 혼자 느리게, 그리고 가끔은 뒤를 돌아보고도 싶은. 그 시절의 성가시고 번거로웠던 이야기. 귀하고 흔치 않았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 그래서 더 소중하게 남는 기억들. 확실히 600원에 다운로드받는 mp3보다는 겨우겨우 시간 맞춰 좋아하는 노래 나와서 테이프에 녹음해 듣던 것이 그리 더 기억에 남더라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이야기들.
"세상이 더 편리해진 것이지 더 좋아진 것은 아니다."
경규옹의 간만에 보는 아날로그 개그도 좋았고, 태원옹의 한창 시절의 육중한 몸매도 좋았다. 아마 94년 사랑할수록 나오고 난 뒤겠지? 그 짧은 머리는 결혼식 때문에 자른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때문인지 의외의 지식을 자랑하던 이정진도.
그리고 딴에는 추억이라 이야기하는데 어디 끼어드느냐고 타박을 듣던 윤형빈.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윤형빈도 그리 말하게 될 것이다.
"어딜 감히 어린 녀석이... 너 DDR 알아? CD 알아? 카세트테이프 알아?"
시간이란 본디 그렇게 흐르는 것이라...
마치 긴 꿈을 꾸고 난 듯 정겨웠다. 시간여행이라도 하고 돌아온 듯 그리웠다.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래서 더 소중했던 그 시절들이. 그 기억들이. 잊고 있었던 그것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아마 이런 맛에 남자의 자격을 보는 것이겠지. 앞을 보면서도, 주위를 살피면서도, 그리고 때로 뒤도 돌아볼 수 있더라는 것이. 가끔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며 함께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정겨움이. 그 그리움이.
시간은 흐르다가도 잠시 사람의 기억 속에 고여 머물며 그 시절로 돌아가게도 하는 모양이라.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그 소중한 시간들을 함께 했던 조금 전의 아주 잠깐의 시간들도 또한. 즐거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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