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을 다시 봤다. 역시 훈훈하지 재미있었다. 특히 김태원을 뒤에서 떠받치며 올라가느라 탈진해 버린 김성민. 드라마 촬영 때문에 지쳐 있을 텐데도 끝까지 김태원이 낙오하지 않도록 뒤에서 지키고 있었다. 이윤석의 뒤에는 이정진이 있었고.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굳이 무리하기보다는 당일의 기상과 멤버들의 상태를 보아서 중간에 포기할 수 있었던 것. 많은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실수다.
"이 정도 쯤이야..."
그러나 산사람들은 결코 산을 정복한다 하지 않는다. 잠시 들렀다 온다 하지. 그만큼 산을 알기에 산을 외경하는 것이라.
아무리 지리산이라고 눈까지 왔는데 쉬울 리 없다. 쉬울 리 없는 산을 쉽게 보고 도전하는 것은 오만이며 만용이다. 더 멋진 그림을 쫓기보다 겸손하게 지금의 자신을 알고 멈출 수 있는 것. 이경규가 산을 내려오며 그리 말하지.
"올라가는 것도 등산이고 내려가는 것도 등산이다."
그대로. 오르다 힘에 부치면 멈추는 것도 등산이다. 올라야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오를 수 없음을 알고 멈출 줄 안다는 것이 등산이다. 지혜라는 건 그래서 멈출 줄 안다는 것이다. 자기를 알고 만용으로 자기를 다치지 않고 주위에도 폐를 끼치지 않고.
하긴 그래서 남자의 자격일 것이다. 과연 젊은 장정들이 지리산종주에 도전했다면 저런 그림이 나왔을까? 그들은 타고난 체력과 힘으로 끝까지 종주에 성공했을 것이다. 아마 이정진과 김성민, 윤형빈만 따로 떼어 놓았다면 어떻게든 종주를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습게만 보이는 지리산 종주마저 - 그 종주마저 다 마치지 못했음에도 저리 그림이 나온다는 것. 멈추는 것도 오르는 것임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
아마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남자의 자격을 보고 그리 생각하리라.
"산이란 저리 힘들구나..."
괜히 한 번 객기를 부려보고 싶다가도 한 번 쯤 더 생각해 보리라. 산은 저리 힘들고 험하구나. 수월하게 산을 오르는 것만 보고서는 얻을 수 없는 경험이고 지혜일 것이다. 산을 두려워할 줄 알고, 산을 겁내 할 줄 아는, 그리고 자신을 아는.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남자의 자격의 한계를 느낀다. 왜냐면 이건 리얼버라이어티라는 것이거든. 버라이어티다.
버라이어티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게 무언가? 재미다. 웃음이다. 성취감이다. 감동이다. 그같은 디테일한 사실들이 아니다. 그같은 디테일한 현실이 아니다. 사실이 아니고 현실이 아니더라도 재미있는 것이다. 이경규도 말하지 않는가?
"이건 버라이어티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다."
아마 이번주 지리산종주를 보고 지루함을 느끼고 실망을 느낀 사람들이 적지 않을까. 먼저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가 우스워 보이고, 종주를 끝내 마치지 못한 것이 한참 부족해 보이고, 무엇보다 웃음이 없다는 게... 그렇지 않아도 한 해에만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지리산종주에 결국 성공하지도 못하고 중간에 포기했으면서 웃음도 주지 못한다는 것이 아마 아쉬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재미를 주자고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가는... 성취감 보여주자고 일정 조정해가며 일부러 산에 오르는 모습만을 보여주려 했다가는... 그랬다가는 그건 또 남자의 자격이 아니겠지. 아니 남자의 자격일지라도 이번주 보여준 것 같은 그런 디테일한 현장감은 보여주지 못했을 것이다. 산을 버거워하는 동질감이나 산을 두려워할 줄 아는 겸손함에 대해서도.
그것은 자기 장점을 버리는 것이다. 과연 이제까지의 남자의 자격이 보여주었던 장점을 포기하고 버라이어티를 추구하는가. 아니면 지금까지의 남자의 자격만의 개성을 유지하면서 차라리 버라이어티로서의 재미를 일정부분 포기하는가. 아마 후자이겠지만...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남자의 자격의 시청율은 지금 정도가 한계가 아닌가 싶다. 아마 높이 나오면 한 20% 정도? 패떴2가 아무리 망해도 어지간해서는 지금 정도에서 보합을 이루기 쉬울 것이다.
물론 이 정도만으로도 매우 높은 시청율인 것은 분명하다. 아마 무한도전이 이보다 좀 더 높거나 할 것이다. 최근에는 패떴과도 엎치락뒤치락하고 있고.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이 또한 일밤과 패떴이 그동안 삽질을 한 반사이익 부분이 크다. 분명 전투기편이나 마라톤편에서 대박을 터뜨리기는 했지만 일밤의 침체와 패떴에 대한 실망 - 더구나 유재석 하차설이 불거지면서 남자의 자격 역시 시청율에서 이익을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시청율그래프가 원래 그렇게 그려졌었다.
다시 말해 이야말로 리얼버라이어티가 추구할 수 있는 리얼리티의 한계라 할 수 있다. 결국 어떻게 해도 리얼버라이어티는 버라이어티라는 것이다. 리얼리티라서 대세가 되었던 것이 아니라 버라이어티이기 때문에 리얼리티라는 컨셉으로 대세를 탈 수 있었던 것이었다. 즉 버라이어티인 이상 버라이어티로서의 재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리얼리티는 단지 거들 뿐.
사실 그것은 남자의 자격도 마찬가지다. 피디 자신도 말한다. 재미를 추구한다고. 버라이어티로서의 재미를 최우선으로 추구한다고. 단지 그 과정에서 인위를 배제하겠다. 고민할 부분이라 하겠다. 버라이어티로서의 재미와 리얼리티와의 경계에 대해서.
결국은 기믹이라는 것일 텐데... 리얼리티라는 기믹과 버라이어티의 재미. 그러나 그 경계와 그 조합이. 다행히 남자의 자격은 멤버 구성이 좋아 그냥 자연히 내버려두어도 최소한의 재미는 나온다는 점이 강점이라 하겠다. 아니라면? 그때는 다른 수단을 고려해봐야겠지.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재미일 테니까.
물론 말하지만 남자의 자격이 신경쓸 바는 아니다. 이미 남자의 자격은 자리를 잡았다. 멤버들의 캐릭터와 관계는 거의 완벽해서 더 이상 손 볼 곳이 없을 정도다. 고정시청자층도 늘고 있다. 다만 다른 리얼버라이어티에서. 리얼리티와 버라이어티에 대해서. 그 경계와 조합을 어찌할 것인가에 대한. 그 참고 정도는 되겠다. 과연...
아무튼 다시 보아도 재미있는 남자의 자격이라 하겠다. 거의 유일하다. 내가 두 번 이상 반복해 보는 프로그램은. 두 번 보면 더 재미있고, 세 번 보면 또 더 재미있고. 이대로만 계속 이어가기를. 정말이지 최고의 리얼버라이어티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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