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출연진만 놓고 보면 정말 대단한 이름들이다. 예능의 전설 이경규, 90년대를 들었다 놓았던 김국진, 80년대 3대 기타리스트이자 부활의 리더인 김태원, 그래도 대학교수 이윤석과, 배우로서 상당한 커리어의 이정진과 김성민, 그리고 왕비호 윤형빈. 누가 있어 이들을 감히 무시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남자의 자격 안에서 이들은 부인에 치이고 딸에게 구박받는 가장이며, 이혼의 아픔을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홀로 지나는 홀아비이고, 자식들을 아내와 함께 유학보내고 홀로 외로이 지내는 기러기 아빠이고, 항상 현실의 문제로 고민하는 당당하지 못한 약골이며, 앞으로 더 나가야 하지만 어딘가 정체되어 있는 듯한 어정쩡한 30대와, 언제 잘릴 지 몰라 안달하는 층층시하 막내다.
이를테면 기믹이다. 우리는 프로그램 밖의 멤버들의 프로필을 안다. 그리고 프로그램 안에서 멤버들은 그러한 프로필이 전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이면을 이야기한다. 아니 정확히는 프로그램 안에서 그들이 이야기하고 강조하는 것은 항상 후자다. 이리저리 눈치를 보아야 하고, 버겁고 힘든 것들도 많고, 부대끼고 부치는 것들도 많고, 불평불만에 그러나 속에는 여전히 끓어오르는 무언가.
우리네의 모습이다. 그래 많이 부족한지 모른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이다. 그래도 나름 자부심도 있다.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러나 사적으로 항상 어딘가 주눅들어 살아간다. 더 크게 성공하지 못해서. 더 크게 올라가지 못해서. 남들처럼 번듯하지 못해서. 건강하지 못해서. 어쩌면 남자의 자격에서 멤버들이 토로하는 고민이란 우리의 고민과 같을 것이다.
사실 이런 부분들이 나로서는 남자의 자격의 한계가 아닐까 생각되는데, 아마 나이가 어리거나 여성이거나 하면 이런 부분들에 대해 쉽게 와닿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힘에 부치기에 멈추고 싶고, 현실에 버겁기에 주저앉고 싶고, 그냥 이대로만 계속 되었으면 싶은 그런 무력감들. 남자의 자격이라고는 하지만 과연 저래야 하는가 싶은 그런 나약함과 비겁함. 그러나 그게 또 남자라는 동물의 참모습일 텐데.
그래서 남자의 자격에 끌리는 것인지 모른다. 나약한 나 자신의 모습을 보니까. 비겁한 나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 힘겨워하고 버거워하고 현실에 부대끼며 이루고자 하는 것과 이미 이룬 것과 이룰 수 있는 것들과의 괴리에서, 그리고 어느새 현실을 더욱 알게 되었기에 더 좌절하고, 그럼에도 낙천적일 수 있다는 것은. 그래도 저리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현실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그리고 그런 평범한 남자들이 아주 작고 소소한 것에서부터 전투기를 타는 정말 대단한 도전에 이르기까지 대신해 이루어준다. 하고 싶어도 못했던 것들, 과연 그런 것이 있었던가 싶은 것들, 그동안 외면하고 있었던 그런 것들을 나와 전혀 다르지 않은 남자들이 대신해 이루어준다. 그리고 말한다.
"당신도 할 수 있어!"
"같이 하자구!"
"같이 해 봐!"
때로는 시간을 거스르기도 하고, 때로는 공간을 뛰어넘기도 하고, 때로는 미래로 잠깐 나갔다 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때도 그들은 말한다.
"어때? 괜찮잖아?"
"좋잖아?"
어쩌면 그런 것들이 내가 남자의 자격에 대해 남들과 다르게 느끼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대단한 성취감보다는 그를 위한 도전이 좋다. 더 크게 대단하게 성취하기보다는 그 과정에서의 소소한 울림들이 좋다. 마라톤에서 추월해 가는 윤형빈의 엉덩이를 토닥여주던 김성민처럼. 함께 귤과 초코파이를 나눠먹던 김성민과 이정진처럼. 결국에 체력의 한계로 일찌감치 포기하고 마는 김태원처럼.
마음이 놓인다. 나와 다르지 않은 모습들이. 물론 그들은 나와 다르다. 대단한 예능인이고, 대단한 개그맨이며, 대단한 뮤지션이고, 무려 대학교수씩이나 한다. 이정진과 김성민이 비록 주연급은 아닐지라도 무시할만한 배우는 아닐 것이다. 왕비호 윤형빈은 여전히 잘 나가고.
그러나 프로그램 안에서 그들은 나와 다르지 않다. 나와 다르지 않은, 나의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일상을 살아간다. 그래서 나 역시 그런 그들의 모습에 반응한다. 마음좋은 웃음을 웃으며 어느새 병풍이 되고 마는 이정진이나, 항상 잘릴 것을 걱정하며 분량을 고민하면서도 형들에게는 깎듯한 막내 윤형빈이나,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이경규를 가장 챙기고, 동병상련의 김태원을 챙기는 이윤석이나,
혼자 나대는 것 같으면서도 멤버들에게 세심한 김성민도 좋고, 버럭거리며 성격 나쁜 상사의 역할을 맡으면서도 동생들을 걱정하며 흐뭇해하는 큰형 이경규도 좋고, 제멋대로인 큰 형을 옆에서 견제하며 알게 모르게 상황을 정리하는 둘째 김국진의 의젓함이 좋고, 가장 철없으면서도 또 가장 속깊은 셋째 김태원의 쳔연덕스러움도 좋다. 물론 그것이 크게 웃음을 주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정겨운 일상들이.
내가 다른 예능은 두 번 안 봐도 남자의 자격은 여러 번 반복해 보는 이유다.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완전 리얼이라는 것이 정말 디테일하다. 과연 연출로 이런 디테일한 장면들이 가능할까. 겉으로 드러난 부분보다 드러나지 않은 부분들이 더 즐겁고 더 정겹다. 빨려든다. 마치 그 안에 내가 있는 듯이.
아마 이런 것이 남자의 자격의 미덕이 아닐까. 대단한 사람은 없다. 물론 대단하다. 그러나 전혀 대단할 것 없이 보인다. 그러려고 하지도 않고 굳이 그것을 꾸미려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더 낮게, 더 평범하게, 더 소외되어, 우리네 아저씨의 모습처럼. 우리네 작아지는 남자들의 모습처럼. 그리고 말하지.
"괜찮아!"
"할 수 있어!"
"괜찮을 거야!"
그것은 아마도 고비에 접어든 남자들만의 루저문화일 것이다. 아직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전의 그것과는 다른, 지나온 길과 앞으로 나아갈 길 사이에 놓인 나약한 남자들의 루저로서의 자화상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안주하고 싶지 않은, 그러나 안주하고 싶은. 그런 모습들이.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남자의 자격의 한계가 아닌가. 이건 너무 마니악하다. 아마도 공감하는 사람이야 공감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래서 병풍 빼라, 웃기지 못하니 빼라, 체력 약하니 빼라, 몸이 따라주지 못하니 빼라, 재미없으니 빼라, 그들이 바라는 것은 그저 예능일 터이므로.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남자의 자격이 좋은 거라. 그래서 나는 남자의 자격이 이리도 좋은 것이라. 부디 이대로만 계속 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잘난 것 없이, 더 대단한 것 없이, 지금 모습 그대로. 지금의 한참 어깨에 힘을 빼고 선 모습 그대로. 우리들의 모습 그대로. 거울로서.
물론 말하지만 그렇다고 남자의 자격에서 하는 도전 나도 다 따라할 수 있느냐? 절대 아니다. 설마 그렇게까지야 할까? 할 수야 있을까? 말했듯 대리만족이다.
"어때? 괜찮지?"
"응, 괜찮아!"
그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거다. 우리와 같지도 않다. 그들은 대단하다. 그리고 멋지다. 아름답고 훌륭하다. 그래서 감동이 있는 것이다. 울어서 감동이 아니라 공감하기에 감동이다. 나와 같기에, 그러나 나와 같지 않기에. 나와 다르기에. 그러나 나와 다르지 않기에.
물론 항상 만족하는가? 그건 아니다. 불만도 많고 아쉬움도 많다. 이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까지도. 그런 불만과 아쉬움까지도. 그래서 남자의 자격이라는 것이다. 그런 살아있는 감정들이. 그런 감정들을 함께 하기에 느껴지는 그런 울림들이. 그런 진심들이.
일요일 저녁이면 약속을 잡지 않는다. 꽤 되었다. 일요일 저녁 한 시간은 무조건 나를 위한 선물로 남겨둔 것이. 만남을 위해서다. 이경규와 김국진과 김태원과 이윤석과 김성민과 이정진과 윤형빈과, 그리고 일주일을 기다린 나와의. 그런 시간들이 정말 좋아서. 작은 큰 기쁨이다. 나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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