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간만에 세련된 예능을...

까칠부 2010. 2. 8. 07:01

참 대비가 좋다. OB와 YB, 전자는 어쩐지 게으르고 요령만 부리려 드는 어수룩함이, 후자는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의 성실함과 의욕이 보이는 빠릿함이, 무엇보다 자동차와 담을 쌓고 살 것 같은 이경규, 김국진, 김태원과, 자동차에 대해 많이 아는 김성민, 이정진에, 이윤석, 윤형빈의 멤버와. 그리고 단계적으로 부여되는 과제들.

 

마치 하나의 게임을 보는 것 같았다. 아니 게임이었다. 주어진 과제들을 누가 먼저 풀어내고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가는가. 그 과제들은 당연히 남자의 자격의 지난주 미션인 자동차에 대한 것들. 와이퍼를 교체하고, 워셔액을 채우고, 전조등을 갈아끼고, 그리고 다음은 타이어교체에 스노우체인 장착, 마지막으로는 배터리가 방전된 상태에서의 대처법 같은. 집에서 차를 몰고 출발하면 한 번 씩은 부딪힐 것 같은 상황들이 차례로 부여되고 그것을 각 팀은 자기 개성껏 풀어내며 마침내 목적을 달성한다. 그리고 최종승자는 YB. OB가 여전히 끙끙거리며 매달리고 있는 동안 유유히 퇴근.

 

한 편에서는 OB를 보여주고, 한 편에서는 YB를 보여주고, 각 팀의 멤버구성에 따른 전혀 다른 개성들이 순간순간 대비되며 재미를 극대화한다. 답지 않게 의욕을 보이다 어느새 버럭하고 마는 이경규나, 야무진 듯 하면서도 오히려 더 헐렁한 김국진, 그리고 전혀 뜻밖에도 해결사 역할을 자처한 김태원, 그런 한 편으로 YB에서는 자동차마니아 답게 이정진과 김성민의 해박한 지식과 이윤석의 몸개그가 빛을 발한다. 자동차에 얽힌 사연이며, 자동차 안에서 사랑을 고백하던 이야기를 나누는 YB와는 달리 여전히 아무것도 해결된 것 없이 서로를 비난하고 의심하고 갈구며 불안해하는 세 큰 형들의 OB의 어수선함이 웃음을 자아내고. 아마 이들을 한 팀으로 엮었다면 얻지 못했을, 왜 OB이고 YB인가를 한 눈에 보여주는 구성이고 연출이었다.

 

물론 재미는 OB 쪽이 압도적이었다. 이경규야 당연하고, 김태원의 토크는 이미 경지에 올라 이경규와 상대할만 하다. 순간순간 치고 들어오는 김국진의 센스는 클래스라는 게 무언가를 보여주고. 단지 타이어 하나 교체하고 스노우체인 장착하는 것만으로도 저리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YB의 안정감도 빛을 발했다. OB가 웃겼다면 YB는 별 어려움없이 자연스럽게 과제를 수행하며 믿음직스런 남자의 모습을 보여줬달까. 주책맞은 형들과 젊음으로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과제를 수행하는 동생들. 그래서 OB는 그저 웃음보따리였고, YB에게는 오늘의 주제가 있었다.

 

"앞으로는 어떤 비상사태가 일어나도 내 아내만큼은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이윤석이 말한 그대로. 마침내 일찌감치 과제에 성공한 YB와 끝끝내 과제를 끝내지 못한 OB를 통해서. 정말 세련되고 멋진 연출이었다고나 할까? 마치 한 편의 로드무비를 보는 것만 같았다. 원래 그런 이야기가 있고, 그런 시나리오가 있는 것처럼. 그저 흘러가듯 그렇게 자연스러웠고 또 정교하고 치밀하게 아귀가 맞아들어가고 있었다. 물론 편집의 힘이었겠지만 바로 이런 게 남자의 자격의 힘이 아닌가. 이제껏 본 가운데 단연 최고라 할 만 했다. 재미로서가 아니라 구성이라는 측면에서. 완벽은 몰라도 완벽에 가까웠다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물론 멤버들의 자연스럽고 유기적인 관계라는 것도 말 그대로 물이 올랐다. 이정진의 차에 대해 이경규가 회사에서 사준 것이냐, 자기 돈으로 산 것이냐, 집에서 사준 것이냐 하고 있는데 김태원이 한 마디 한다.

 

"어떤 아줌마가 사준 것 같은데?"

 

바로 받아먹는 이경규,

 

"묘령의 여인이 사준 것 아냐?"

 

이윤석이 받는다.

 

"묘령이면 괜찮은데 고령이면 문제가 되지."

 

그리고 마무리짓는 이경규,

 

"어머니라는 얘기야!"

 

이경규가 고속도로에서 차가 고장이 나서 세 시간을 서 있었다니까 역시 김태원의 한 마디,

 

"윤석이를 부르지 그랬어?

 

김국진이 받아먹는다.

 

"보험회사에서 먼저 와? 윤석이가 먼저 와?"

"윤석이가 먼저 와..."

 

미션이 주어지고 차를 몰고 다음 휴게소까지 가야 한다니까 김국진이 하는 말,

 

"그냥 휴게소 안 들르고 바로 가는 거야!"

 

이경규가 받는다.

 

"영화에서 보면 차가 너덜너덜해져도 잘만 가."

 

김태원이 마무리한다.

 

"음악 크게 틀어 놓으면 밖에서 뭔 소리가 나든 아무것도 안 들려!"

 

OB와 YB로 팀이 나뉘고서도 차량점검 시작하라니까,

 

"윤석아, 세차부터 해라!"

 

이경규와 이윤석 사이의 관계에서 나오는 멘트다.

 

"(YB에는)리더가 없어서..."

"(OB에는)일할 사람이 없어!"

 

그리고는 김국진의 한 마디,

 

"저 차(YB의) 정비 끝나면 저거 타고 가자!"

 

그렇게 OB의 성격이 정의된다. 비가 안 오니까 와이퍼 없어도 상관없다는 그대로.

 

그리고 그러한 관계는 윤형빈이 정비소에서 와이퍼와 워셔액을 사가지고 오자 이경규와 김태원이 그것을 삥뜯는 것으로 극치를 이룬다. 아예 OB의 몫까지 하나씩 더 사오라는 말처럼. 미등이 고장났는지도 확인하기 전인데 미등 하나 더 사오라는 김태원의 뻔뻔스러움이란.

 

그런데 그런 것들이 전혀 어색하거나 하지 않은 것은 그동안 축적되어 온 캐릭터와 관계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이경규와 이윤석의 관계, OB와 막내 윤형빈과의 관계, 그리고 제멋대로인 이경규와 어느새 허세캐릭터가 되어 버린 김국진과 은근히 독한 김태원과, 여기에 김태원에게는 캐릭터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김억삼.

 

이경규가 말한다.

 

"뻥 좀 그만 쳐!"

 

그러자 김태원의 대꾸,

 

"습관이 돼서..."

 

억삼으로서의 김태원의 가치가 드러난 것이 바로 트레일러에 실린 차들이 바로 앞을 지나가고 있을 때. 마침 이전 이경규가 아예 차를 정비하지 말고 리스해서 가자며 친구에게 전화한다 상황극을 벌린 뒤였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받아 이경규에게 말한다.

 

"차 도착했습니다."

 

순간 이경규도 당황하다가 받는다.

 

"내 친구가 빨라!"

 

조금 전에 끝난 멘트까지도 기억했다가 살리는 감각이란. 오늘 분량도 그렇게 이경규, 김국진, 김태원의 토크에서 거의 나왔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주는 이경규와 김태원. 술끊고 통원치료한다더니만 특유의 입담마저 건강마냥 나날이 경지에 오르는 모양이다. 순간순간 자동차를 정비하면서 보인 의외의 지식이나 아이디어들도 있고 해서 오늘 가장 돋보인 한 사람이었다.

 

물론 말만으로 끝낸 게 아니었다. 그보다 더 고도의 연기가 동반되었다. 실제이든 아니면 연출이든 세 사람이 모두 차에 대해 무지하다 했을 때,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들의 보인 리액션이란 상황을 더욱 과장해 더욱 재미있게 전달하고 있었다. 실망하고 화내고 짜증내고 당황하고 당연한 반응에 표정들이었지만 그것이 그 상황과 어우러져 더 재미있게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바로 이런 게 예능감이라는 것일게다.

 

그나마 이경규가 토크로 웃기고, 이윤석이 특유의 누구도 따를 수 없는 헐랭한 몸개그로 웃기려 들기는 했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웃음이란 그같은 자연스런 관계와 리액션을 통해서 나왔다. 예능을 한다는 느낌조차 없이 어느새 자연스레 묻혀가는 그런 모습들이 더욱 실감나게 웃음이 되고 재미가 되고 감동이 되었다. 여기에 앞서 극찬한 세련된 연출과 구성이 있어 재미를 극대화하고 있었고.

 

청춘불패 멤버들에게, 그리고 제작진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바다. 이런 게 리얼버라이어티다. 이렇게 마치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게 리얼버라이어티다. 하긴 남자의 자격은 원래부터 그랬었다. 아직 자리가 잡히기 전에도 그들의 토크는 끊기는 법이 없었다. 던지고 물고 이어주고 받고 다시 던지고, 허술해 보여도 그렇게 다져온 팀웤이 지금에 이른 것이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쉽게 생기는 것은 없달까?

 

다시 한 번 감탄하며... 지금 글을 쓰면서도 또 다시 돌려보고 있다. 정말 재미있다. 이제껏 가장 많이 돌려본 것이 석모도편이었는데 이제는 이게 그 기록을 갱신할 것 같다. 주고받는 토크며 때때로 보여주는 상황극이며 연출이며 연기며, 그리고 진지하고 진솔한 모습들까지. 이렇게까지 만들어낼 수 있었던 제작진과 출연자 모두에게 찬사를 보낸다. 고마움과. 이래서 남자의 자격이었다. 그 한 마디로. 최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