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이라는 가족...

까칠부 2010. 2. 2. 07:47

남자의 자격에 있어, 단언한다. 에이스란 없다. 에이스가 있다면 모두가 에이스다. 이경규, 김국진, 김태원, 이윤석, 김성민, 이정진, 윤형빈, 이들 모두가. 중심이 있다면 이경규일 테지만, 그러나 이경규조차 남자의 자격이라는 틀 안에서 존재한다.

 

몸으로 때우는 과제에서 단연 에이스는 김성민과 김국진이다. 특히 항상 앞장서서 해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김성민 특유의 천진난만함은 과제에 대한 부담을 줄여준다. 그리고 김국진은 항상 묵묵히 뒤에서 보이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김성민으로 인해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사실 남자의 자격에서 김국진의 역할이 매우 크다. 첫째 김성민과 함께 몸으로 때우는 역할을 맡아, 김성민으로 인해 붕 떠버린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역할을 한다. 자칫 김성민 페이스대로 내버려두었다가는 프로그램 자체가 너무 가벼워질 수 있는데, 그러면 웃음은 줄 수 있지만 자칫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잃을 수 있다. 웃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프로그램이 목표하는 바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초심을 잃고 방향을 잃게 되면 아무리 잘나가는 프로그램이라도 좌초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김국진은 메인MC인 이경규가 마음껏 날뛸 수 있는 든든한 백이다. 항상 중심에서 사건의 기점이자 종점 역할을 하던 이경규가 스스로 사건 안으로 뛰어들 때 그것을 정리하는 것이 김국진의 역할이다. 때때로 개인플레이를 즐기고, 또 멤버 가운데 개인플레이가 가장 뛰어난 이경규의 특성으로 볼 때, 이경규의 몫 가운데 상당부분을 김국진이 떠맡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김국진은 최근 김태원과 함께 뻥토크로 남자의 자격의 가장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인 토크를 이끌고 있다. 이경규가 풍부한 경험과 인생의 깊이로 토크를 주도한다면, 이경규가 세운 뼈대 위에 김국진과 김태원은 함께 살을 더한다. 멤버들의 토크를 가장 많이 받아주고 있는 이가 바로 이경규와 김국진이다.

 

김태원은 몸으로 하는 것에서는 국민시체, 국민할매로서 저질체력으로 이윤석과 함께 웃긴다. 사실 이윤석은 남자의 자격에서 김태원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물론 국민약골로서의 저질체력 캐릭터는 김태원이 많이 가져갔지만, 그로써 이윤석은 프로그램 초반 보여주었던 의외의 마초캐릭터를 프로그램 안에서 살려갈 수 있게 되었다. 몸은 따르지 않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망가지는 모습을 통해 도리어 감동을 주는. 동정과 조롱의 대상이었던 저질체력이 이제는 응원과 격려의 대상이 된 것이다.

 

토크에서 김태원은 이경규와 함께 토크를 주도한다. 전혀 사차원스러운 사고와 말투로 이경규와는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는 그의 토크는 자칫 밋밋해지거나 진부해질 수 있는 토크에 항상 신선한 자극을 주고, 보다 다채롭고 입체적인 풍성한 재미를 가져다 준다. 아마 둘 중 어느 하나만 빠졌어도 남자의 자격의 토크는 이만한 재미를 주지 못하지 않았을까.

 

몸개그 말고도 이윤석의 역할이라면 역시 박사에 현직 교수답게 김국진과는 다른 방향으로 상황을 정리한다. 지난주 마치 주제처럼 쓰인,

 

"세상이 편리해진 것이지 좋아진 것은 아니다."

 

이 말도 이윤석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OB의 막내이자 YB의 맏형으로서 두 다른 세대그룹의 교류를 맡기도 한다. OB에게는 막내로서 구박을 당하며 소심한 반항을 하고, YB에서는 소심한 형으로서 적절히 견제와 공격을 하면서 분위기를 넘치지 않도록 조절하고. 많은 경우 또 김태원의 간병인 역할을 맡는 것이 이윤석이다.

 

이정진의 경우는 예능에 어울리지 않게도 가장 상식적인 캐릭터다. 아마 1박 2일에서의 김C와도 비슷한 캐릭터가 아닐까. 그러나 캐릭터란 관계에 의해 정의되듯 비슷한 캐릭터임에도 두 프로그램에서 두 사람이 맡은 역할은 전혀 다르다. 이정진에게 부여된 비덩이라는 캐릭터 자체도, 비정상적이라 할 정도로 개성이 강한 멤버들 가운데 그나마 정상인으로서 흐트러진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잡아주는 역할인 것이다. 실제 그동안 예능에 대한 부담이 있던 때와 달리 힘을 뺀 최근 이정진의 플레이는 매우 자연스러워서 굳이 오버하지 않으면서도 튀지 않게 분위기를 잘 받쳐주고 있다.

 

윤형빈의 역할도 중요하다. 윤형빈은 남자의 자격에서 가장 어리다. 한 마디로 막내다. 그렇다고 막내라고 한 번 나댈 법도 하건만, 그러나 그러기에는 이미 이경규, 김태원, 김성민 이 세 사람만으로도 넘칠 정도로 멤버가 개성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막내까지 날뛰고 나면 질서고 뭐고 남자의 자격만의 안정감 자체가 흔들릴 판이다. 따라서 남자의 자격에서 윤형빈이 맡은 역할은 그래도 어리고 순진한 막내, 가끔 소심한 반항도 하고, 어떻게든 튀어 보려 발버둥도 치지만, 신입사원편에서처럼 늦잠을 자는 형을 위해 상을 차려주고 나오는 형을 받드는 모습이다. 말하자면 이정진이 정상인 가운데 뭔가 건드리기 힘든 존재감이라면 윤형빈은 정상인이기에 마음놓고 건드릴 수 있는 만만함일 것이다.

 

지금까지 몸으로 때우는 편에서 주인공은 항상 김성민이었다. 물론 체력이 아닌 약골의 몸개그가 드러나는 장면에서는 김태원이 주인공이었다. 또한 말로 때우는 분량이 많을 때는 이경규와 김태원이, 의외의 분투캐릭터로서는 이윤석과 이경규가, 웨이크보드편에서는 이경규와 함께 이정진이 몇 번의 실패에도 끝까지 도전하는 진지함으로써 자신을 드러냈고, 자격증따기 편은 확실히 이정진을 위한 것이었다. 아직 윤형빈을 위한 미션은 없지만 어찌되었거나 이제껏 각자가 자기 능력과 캐릭터에 맡게 역할을 나누어 온 것은 분명하다. 아마 윤형빈도 조만간 그를 위한 에피소드가 하나 정도 나오지 않을까.

 

남자의 자격이 갖는 강점이다. 아니 남자의 자격만이 아닌 현재 대중적인 관심을 모으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예능 모두의 공통적인 강점이다. 누구 하나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 모두에게 고루 역할이 주어지고 무게가 지워진다는 것. 하나의 다리와 여섯개의 곁다리가 아닌 일곱 개의 다리가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을 떠받치는 것이다. 어느때는 김성민이, 어느때는 김태원이, 어느때는 김국진이, 어느때는 이경규가, 어느때는 이윤석이, 어느때는 이정진이, 그리고 이제 남은 윤형빈...

 

그리고 그들의 유기적인 조합이 남자의 자격만이 갖는 훈훈함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묵묵히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자기 역할을 다하는 비덩 이정진, 궁시렁거리고 구박을 받으면서도 항상 형들을 챙기는 막내 윤형빈, 그리고 소심한 넷째형으로 형들의 눈치 보랴, 동생들 눈치 보랴 바쁘신 이윤석, 웃기지 않는다고? 그러나 그들이 있기에 김성민도, 김태원도, 이경규도 마음껏 웃길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형제가 있을 때 오히려 큰 형보다도 때로 더 큰 형답게 형제를 이끄는 것은 작은형이지. 김국진.

 

과연 이 가운데 누구 하나 에이스를 꼽을 수 있을까. 만일 누구 하나를 에이스로 꼽아 그에게로 중심을 가져간다면, 그래서 나머지를 그를 위한 들러리로 놓는다면 남자의 자격은 그대로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남자의 자격만이 갖는 그 다채로움과 풍요로움은 아마 그 에이스와 함께 사라져 그저그런 예능 가운데 하나로 남고 말 것이다.

 

간단히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이 MC고 가장 존재감이 강하다고 모든 것을 유재석에게만 집중한다면 어떻게 될까. 1박 2일에서 오로지 강호동에게만 초점을 맞춘다면. MC란 그러라고 있는 게 아니다. 결과적으로 가장 존재감을 그러내는 것은 MC겠지만 프로그램이란 팀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개인팬이다. 오로지 하나만 알고, 하나만 보고, 다른 모두를 무시하는. 그래서 내가 그동안 몸담던 커뮤니티에서도 등돌리고 나와 버린 것이지만.

 

걸그룹을 좋아하더라도, 설사 한 멤버가 좋아 그 걸그룹을 좋아하게 되었더라도 기왕에 좋아한 이상 전체를 좋아해주는 게 상식인 거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그 멤버일 테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멤버들도 좋아하고 아껴주는. 그 팀 자체를 좋아해줄 수 있는. 밴드에서도 기타 누구다, 베이스 누구다, 특히 보컬 누구나...

 

하물며 팀웍이 가장 중요한 리얼버라이어티에서야.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 그를 위해서만 만드는 프로그램이 얼마나 갈까. 때로는 돌아가며 병풍도 되고, 때로는 돌아가며 에이스도 되고, 그러면서 프로그램은 항상 새롭고 항상 다채로울 수 있는 것이다.

 

몇몇 멤버에 집중되고, 몇몇 멤버에 의해서만 이끌리고, 그래서 몇몇 멤버만이 인기를 누리고 관심을 받는, 그건 최악이다. 그건 이미 팀이라 할 수 없다. 서로 눈치보고 경쟁하고 서로 나서려 하고. 그런 건 퀴즈게임에서나 하는 것이다.

 

언젠가 말했지만 리얼버라이어티란 대본 없는 시트콤이다. 대본 없이 즉흥적으로 각자의 캐릭터에 의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한 편의 시트콤일 터다. 나를 알고, 서로를 알고, 그러한 관계 속에서 서로의 역할을 알아가는. 과연 혼자 튀겠다고 그것이 가능할까. 어느 특정한 멤버에게만 집중해서야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전부터 쓰고 싶었던 글이다. 에피소드마다 일희일비하며 특정 멤버의 존재나 역할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에게. 남자의 자격은 이미 그럴 단계를 넘어섰다고. 지난 7월 석모도편을 통해 이미 남자의 자격은 완성되었다고. 남자의 자격은 하나라고.

 

"All for one, one for All"

 

아마 남자의 자격을 위해 존재하는 말일 것이다. 누구를 위해서도, 누구에 의해서도, 누구의 것도 아닌 모두의 남자의 자격으로서.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남자의 자격으로서. 물론 거기에는 내 자리도 한 귀퉁이에 있겠지. 그런.

 

아무튼 웨이크보드편과 자격증편에서 이정진도 한 번 주인공이 되어 봤고 이제 윤형빈 하나 남았는데, 그래서 또 기대해 본다. 개그콘서트의 왕비호가 아닌 남자의 자격 막내의 비상을. 일곱개의 다리가 모두 갖춰지는 것이라. 과연.

 

 

 

덧, 몇 번이나 말하지만 나는 남자의 자격빠다. 가장 욕먹던 시기에 함께 욕하면서 지켜보아온 한 사람이다. 누가 에이스고, 누가 빠져야 하고, 허튼 수작들인 까닭이다. 모두가 한 가족인 것을. 팀인 것을.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이가 없는데.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