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악들

산울림 - 회상...

까칠부 2010. 2. 1. 01:30

 

9

 

 

회상 - 산울림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알아버렸네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
나는 혼자 걷고 있던거지
갑자기 바람이 차가와 지네

마음은 얼고 나는 그곳에 서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지

마치 얼어버린 사람처럼
나는 놀라서 있던거지
달빛이 숨어 흐느끼고 있네

우 떠나버린 그 사람 우 생각나네
우 돌아선 그 사람 우 생각나네

묻지 않았지 왜 나를 떠나느냐고
하지만 마음 너무 아팠네

이미 그대 돌아서 있는 걸
혼자 어쩔수 없었지
미운건 오히려 나였어

우 떠나버린 그 사람 우 생각나네
우 돌아선 그 사람 우 생각나네

묻지 않았지 왜 나를 떠나느냐고
하지만 마음 너무 아팠네

이미 그대 돌아서 있는 걸
혼자 어쩔수 없었지
미운건 오히려 나였어

가사 출처 : Daum뮤직

 

 

헤어짐이 슬픈 건 헤어졌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그런 건 사실 별 느낌이 없다. 너무 서러우면 한 며칠 울고 나면 어느새 잊혀진다. 그러나 문득 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연인이 아니더라도 그렇다. 가족이든 친구든 정작 슬픈 것은 그의 빈 자리를 보았을 때다. 항상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던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 그때 주체할 수 없이 서러움이 밀려온다. 울음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멍하니. 때로 눈물조차 흐르지 않는다.

 

빈 자리로 바람이 불어들고, 휑하니 서러운 마음에 마음조차 얼어 움직이지 못하고, 그리고 대신해 달빛이 숨어 흐느낀다. 울 수 없기에 달빛이 대신해 숨어 흐느껴준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외로움과 슬픔, 서러움...

 

그러나 차마 화자는 떠나간 연인을 원망하지 못한다. 왜 떠났느냐고 묻지도 못한다. 그저 시린 외로움 속에 자신만을 탓할 뿐. 무엇을 탓해야 하는지도 모를 것이다. 무엇을 탓해야 하는지도 모르게 그저 자신만을 탓할 뿐이다.

 

내가 김창완을 좋아하는 이유, 그리고 내가 김창완을 싫어하는 이유다. 그의 솔직하면서도 깊은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관조는 참 아름답다. 때로 서정적이고 때로 눈물이 나기도 하고 한없이 이끌려 도취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신 너무 나약하고 비겁하다. 사랑하는데 이별 앞에 이유조차 묻지 못한다는 것은 또 무언가. 매달리지조차 못한다는 것은. 그리고 홀로 서서 울지조차 못하고 자기만 탓하고 있다는 것은. 하긴 그래서 아름다운 것일 테지만 말이다.

 

아마 첫사랑일까. 그럴수도 있겠다. 첫사랑이란 그만큼 순수하고, 순수한 만큼 두렵고 버거운 것이니. 어찌할 바를 모르고 버둥거리다 끝나버리는 기억이 곧 첫사랑일 것이니. 그런 풋내나는 서투름이야 말로 또 젊다는 것일 테고.

 

어쩌면 그런 나약함과 비겁함마저 내면화시켜 관조하고자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솔직하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정직하게 그것을 보고 관조하며 그것을 흘려보낸다. 그럼에도 그 이면에 흐르는 이 시림 무력감과 유리감이란...

 

하지만 그래서 노래는 참 아름답다. 아마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이별노래가 아닐까. 헤어짐조차 알지 못하고 길을 걷다가 문득 비어 있는 그의 자리에 헤어짐을 깨닫고 마는. 그것이 너무 서러워 차라리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고 원망하고 마는.

 

더구나 김창완의 목소리란 너무 담담하다. 아무 슬픔도 서러움도 없이, 원망조차 없이 그저 담담히 읊조릴 뿐이다. 남의 이야기를 하듯, 마치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렇게, 관조하듯 아무 감정없이.

 

아마 오랜 시간 헤어져 있던 친구로부터 듣는 이야기가 이렇지 않을까. 세월에 곰삭은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처럼 털어놓는 그것이. 깡마른 얼굴에 광대뼈가 도드라진 초췌한 얼굴로, 수염이 덥수룩한 거칠어진 모습으로, 그러나 눈빛만은 슬픔으로 깊이 잠겨서,

 

아무것도 묻지 말아달라.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말아 달라. 나는 괜찮다. 나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 그리고 나는 그의 뜻대로 아무것도 묻지 않고 마냥 듣고만 있다. 남의 이야기처럼 남의 이야기를. 친구의 이야기를.

 

그것은 아마 어느 겨울밤일 것이다. 달빛도 밝은, 별빛마저 너무나 흐드러진 어느 맑은 겨울의 깊은 밤일 것이다. 한적한 어느 술집, 술잔을 앞에 놓고 누구도 술잔을 비우지 않는다. 아마도 그런 모습을 달빛은 역시 숨어 바라보고 있겠지.

 

 

 

김창완은 내가 아는 한국 대중음악사의 두 천재 가운데 한 사람이다. 다른 한 사람은 신중현. 그리고 이 사람, 김창완.

 

김창완이 처음 기타를 잡게 된 것이 아마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였을 것이다. 동생들과 함께. 곡쓰기도 이때부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누구로부터도 배운 적 없고, 누구로부터도 영향을 받은 바 없는,

 

산울림의 음악을 두고 누군가 밑도 끝도 없다고 한다. 그만큼 국내는 물론 국외의 어느 음악인과도 접점이 없다는 뜻이다. 마치 딥임팩트마냥 김창완은 그렇게 산울림의 음악과 함께 1970년대 한국 사회로 내리꽂힌 것이었다. 거대한 파동을 일으키며.

 

산울림 1집이 1977년 12월에 나왔다. 산울림 3집은 그로부터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이듬해 1978년 11월에 나왔다. 1년도 안 되는 사이 무려 세 장의 앨범을 내놓은 것이다. 그리고 이 세 장의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사상 명반으로 꼽히는 앨범들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 바로 앨범에 수록된 음악들이 모두 대학시절부터 꾸준히 써 온 음악들이라는 것이다. 단지 앨범을 만들면서 편곡이나 연주, 프로듀싱에 대해 보다 경험을 쌓으며 진보하고 있었을 뿐. 단지 그런 경험들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33년동안 산울림 정규앨범 13장, 동요앨범 4장, 솔로앨범 2장에, 최근 김창완밴드로 또 두 장의 앨범을 내놓고 있다. 정말이지 마르지 않는 음악의 샘이 바로 김창완이라 할 것이다. 여전히 현역인 '음악인'인 것이다.

 

앨범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앨범 이야기만으로도 사실 끝이 없다. 오늘의 이 글은 순전히 회상이라는 노래 하나만을 위한 것이라. 오늘 문득 길을 걷는데 이 노래가 흘러나와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더라는 것이라.

 

가로등은 희뿌옇고, 부지런히 지나다니는 자동차 전조등은 분주하고, 그리고 어두운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벗삼아 홀로 걸어가는 나. 옆에 누군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그 빈자리조차 잊어버린. 아마 산울림 8집에 수록된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