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악들

조관우 - 과거, 그 어느 겨울날의 기억...

까칠부 2010. 1. 31. 01:05

 

8

 

 

과거 - 조관우

그냥 모른척하고 말 것을 어쩔 수 없는 거라면
내게 보이는 사랑만 간직할 것을
한 번 실수라 얘기 했다면 난 널 이해했을 텐데
너의 탓은 아니란 걸 이미 난 아니까

아~하지만 넌 끝내 나를 떠나려 했지
그 어리석은 변명대신 너는 어느새 이별을 택한거야
그를 사랑한적 없다고 말해주길 바랬지
그건 잘못이 아니잖아 나의 욕심일 뿐

아~어떻게 난 너를 용서해야 하는지
터질 것 같은 가슴 속에 미움까지도 사랑일 뿐인 것을

아~나를 사랑한적 없다고
아~너는 어느새 이별을 택한거야

가사 출처 : Daum뮤직

 

한참 된 이야기다. 언제적이더라? 주택가에 위치한 장사 안 되는 호프집이었다. 사장은 전직 은행 간부였다는데 그 무렵부터 그리 위험해, 위험해를 입에 달고 다녔었다. 덕분에 나 역시 그리 오래 하지 못하고 도중에 그만두고 말았지만.

 

워낙 손님이 없어 사장도 없이 나 혼자 서빙에 조리에 카운터까지 보면서도 시간이 남아돌았었다. 더구나 손님이야 뻔하니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며 안면을 익히고 했었는데, 의외로 그런 점에서 손님들과 사이도 좋았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자주 보던 손님이었다. 가끔 이야기도 나누곤 하던 커플이었다. 그런데 무언가 심각하게 다투고 있었다. 여자는 눈물을 참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남자는 분에 못이기는 듯 술을 벌컥거리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여자가 먼저 자리를 뜨고 혼자 술을 마시던 남자가 내게 다가와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그럴 수 있습니까?"

 

이야기인 즉, 자기가 출장을 간 사이 여자가 남자의 친구와 잤더라는 것이다. 그것을 알고서는 남자는 여자를 추궁한 것이고, 여자는 그에 솔직하게 사실을 시인한 것이고.

 

남자는 차라리 여자가 거짓말을 해주기 바랬다. 차라리 그런 일 없었노라고, 남자의 친구가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아니면 그런 건 한때 실수일 뿐이라 오히려 야단쳐주기를 바랬다. 아무 일 아니라고. 진정 아무일도 아니었다고.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자고.

 

하지만 여자는 너무 솔직했다. 남자가 없는 사이 남자의 친구와 있었던 일들에 대해 가감없이 이야기하며 미안함을 드러냈다. 너무 미안해 하기에 오히려 원망스럽더라는. 너무 미안해해서 더 원망스럽더라는 그런 이야기였다. 차라리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마음껏 원망할 수 있게.

 

물론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가는 나는 모른다. 그 뒤로 한 번도 호프를 찾아온 적 없고, 나도 얼마지 않아 호프를 그만두었었다. 그러나 문득 이 노래를 들으면 그 사연이 떠오르는 것은...

 

아마 97년이던가, 96년이던가, 아니, 어쩌면 그것은 96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처럼 무척 춥던 어느날이었으니까. 남자는 검은 모직 코트를 걸치고 있었고, 여자는 베이지색 파카를 입고 있었다. 96년 겨울 조관우 3집이 나왔었다. 타이틀곡이 영원...? 하지만 내가 가장 처음 들은 노래는 이 노래 과거였다. 마침 그 남자와 이야기를 할 때도 이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냥 모른 척 하고 말 것을, 어쩔 수 없는 거라면..."

"한 번 실수라 얘기했다면 난 널 이해했을 텐데..."

"그를 사랑한 적 없다고 말해주길 바랬지..."

"너를 용서해야 하는 지..."

"터질 것 같은 가슴 속에 미움까지도 사랑일 뿐인 것을"

 

마치 남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남자의 울음은 그렇게 서러웠을 것이다. 아무말도 없이 고개를 떨구던 그 여자처럼. 한참을 그렇게 영원처럼 서럽게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은 그 커플처럼.

 

사실 매우 사이가 좋던 커플이었다. 남자는 살가웠고 여자는 상냥했다. 남자는 퉁명스러웠고 여자는 새침했다. 남자는 음흉했고 여자는 내숭이었다. 술도 잘 마시고 잘 어울렸으며 잘 놀았다. 돌아갈 때는 둘이 항상 함께였었다. 둘이 서로 헤어져 가게를 나선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아마도 그날도 둘은 사랑하지 않았을까.

 

사랑하기에 차라리 거짓말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사랑하기에 그래서 아프더라도 거짓을 말할 수 없는 마음, 차라리 모른 척 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러나 그래서 모른 체 넘어갈 수 없는 마음, 사람의 마음이란 오히려 진심이기에 그렇게 엇갈릴 수도 있는 것이라.

 

개인적으로 두 사람이 그 뒤로도 잘 되었으면 싶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마 그 뒤로 헤어지지 않았을까. 오히려 진심이기에 베인 상처가 썩고 곪아 돌이킬 수 없게 되기도 하므로.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은 그런 것이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헤어지지도 않았겠지.

 

원망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 그 원망을 차라리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쿨하게 용서하고, 쿨하게 용서받지 못하는 그런 마음들이... 그래서 또 사랑은 슬픈 기억들을 남긴다. 후회와 미련과 아쉬움과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들...

 

노래는 그리고 그런 추억들을 담는다. 마치 노래를 들으면 그때 그 남자를 떠올리게 되는 나처럼. 울며 가게를 나서던 여자와,울며 술잔을 들이키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내게 하소연해 오던 남자와,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끄덕이던 풋내나던 그 시절의 나처럼.

 

조관우의 목소리가 너무 구슬퍼서 그래서 더 슬픈 노래. 노래만큼이나 사연이 슬퍼서 더욱 애절한 노래. 그러나 아름답다. 아름다움이란 상처를 통해서만 완성되는 것이라. 슬프지 않고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란 아마도 어디에도 없지 않을까.

 

조관우가 하광훈과 헤어지고 처음으로 독립해서 낸 3집. 그해는 블랙홀 5집도 나오고 시나위 5.5집에 곧이어 시나위 6집도 나왔었다. 김돈규의 나만의 슬픔과 김기하의 나만의 방식. 영원과 그리고 이 노래 과거. 그러나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거라. 아무래도 나와 같은 사연이 없이는 타이틀곡도 아닌 노래를 기억하기란 쉽지 않은 것일까.

 

추워지는 무렵이면 지금도 생각난다. 그 남자의 눈물과 눈물과 함께 떨구어지던 노래와 그 퀴퀴하던 가게 안에서 저물던 나의 젊음이. 곧 이어진 IMF만 아니었어도. 그때는 그런 것 모르고 희망에만 들떠 있었다. 그 시절의 꿈들과.

 

음악은 기억이며 추억이다. 음악을 듣는 것은 때로 그 시절의 기억을 듣는 것이기도 하다. 마치 노래 제목처럼. 96년 겨울, 아니면 97년 초, 그 작고 손님없던 호프집을 떠올려 본다. 어느 슬프던 커플의 이야기와 함께. 과거로. 그 시절로. 밤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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