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뭐라도 하나 하려 하면 챙겨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아니면 전달되지 않는다.
당장 내가 시상식에서 상을 받고 좋아할만한 여건이 아니다. 그래서 거부하고 싶다.
그 이유에 대해 듣기보다 그 형식을 따진다. 어째서 후배인 백진희였는가.
그 의도가 얼마나 선하고 순수했는가보다 그로 인해 곤란해질 주위를 먼저 따진다.
하기는 그래서 누가 잘하고 잘못했고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침묵하는 것을 현명하다 않던가.
밀양여중생 성폭행 사건 당시에도 밀양시민 다수가 피해자를 탓한 것도 바로 그래서였다.
그냥 혼자 당하고 가만히 있으면 됐을 것을 괜히 주위 시끄럽게 만들고 분위기만 나빠졌다.
향촌사회의 방식이다. 오늘 시시비비를 가린다고 해봐야 내일이면 다시 얼굴을 봐야 한다.
아예 죽을 때까지 이웃에서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하며 살아야 한다.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르고, 바르고 잘못되었고, 그보다는 관계에 충실해야 한다.
여자고, 나이어린 후배이고, 방송국과의 관계도 있고,
그보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수상을 거부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진다.
그것을 봐야 하는데 누가 피해를 보는가가 더 중요하다. 신중치 못한 것을 탓한다.
하여튼 누군가 어떤 발언이나 행동을 하면 항상 나오는 반응 가운데 하나다.
이런 결과를 예상치 못했는가. 이러이러한 영향이 있을 것을 예비하지 않았는가.
의도는 옳지만 따라서 방법이 적절치 못했다. 처신이 잘못되었다.
메시지를 공격 못하면 메신저를 공격하라. 그게 아니라 아예 습관이다.
정답에 대한 강박이다. 객관식에서 답은 항상 하나다. 다른 가능성을 생각지 못한다.
판단하고 결정하는 주체로서의 개인을 스스로 배제하려 한다.
타인이 요구하는 답을 찾고 그에 맞춰가야 한다. 그런 방식에 익숙해진다.
단지 수상거부 메시지를 대신 읽었다는 이유로 불이익이 가해진다면 그것을 문제삼아야 한다.
하기는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가 이모양이다.
정작 문제삼아야 할 곳은 상수로 두고 단지 조용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단속하려 한다.
입다물라. 조용히하라. 가만있으라. 더 조심하고 주의해서 행동하라. 결과에 책임을 지라.
자유에 따른 책임이란 결과에 대한 것이지 결과를 전제하는 자유는 아니었을 텐데도.
예상한 바이기는 하지만, 최만수는 어쩌면 어울리지 않게 너무 순수할 것이다.
재미있기는 하다. 누가 잘못인가. 누가 문제인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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