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리얼버라이어티와 상황극

까칠부 2010. 2. 8. 23:10

어제 남자의 장면을 보면서 그리 감탄을 했더랬다. 이야아, 이런 게 리얼버라이어티구나...


자동차의 고장을 점검하고 해결하는 미션이 주어지자 김국진이 말한다.


"OK를 받아야 하는 거야? 그럼 중간에 휴게소 들르지 말고 그냥 가자구!"


그것이 복선이 된다. 이어 이경규가 차량점검에 들어가라 하자 이윤석을 부른다.


"윤석아, 세차부터 해라!"


이윤석이 YB의 리더역을 맡아야 한다 하자 다시 김국진이 말한다.


"거기는 리더가 없지만 여기는 할 사람이 없어!"


그리고 한 마디,


"저쪽에서 점검 마치면 저거 타고 가자!"


이로써 OB의 캐릭터는 정의된다.


물론 전제가 있다. 이제까지의 날방에 버럭캐릭터인 이경규와 그와 어울리며 귀차니즘과 무책임의 극치를 보이는 김태원, 여기에 어느새 허세캐릭터로 한데 휩쓸리고 있는 김국진,


그러나 어제는 여기에 자동차에 대해 잘 아는 마니아 이정진과 뭐든 나서서 열심인 김성민, 그리고 성실한 윤형빈이라는 YB가 있었다. 그러면서 OB는 YB를 전제로 그와 대비되는 캐릭터를 잡은 것이다. 더불어 OB에 대비되는 YB의 캐릭터 역시. 역시나 OB의 관록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캐릭터와 관계를 정의하고 나니 상황은 자연스레 이어진다. 정비소에 가서 와이퍼 등의 부품을 가져와야 한다고 하니 이윤석에게 시키려는 이경규, 마침 윤형빈이 필요한 것을 사들고 오자 불러서는 중간에 가로챈다.


"아예 저쪽 것까지 하나씩 더 가지고 와!"


김성민의 말에,


"형빈아! 우리 것도!"


김태원의 뻔뻔한 요구, 난감한 듯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들어줄 수밖에 없는 막내의 모습이란 아마 윤형빈 말고는 소화하기 힘들 것이다. 아마 다른 예능인이었다면 여기서 웃음을 만들려 뭔가 모션을 취했겠지만 윤형빈은 그대로 상황을 받아들임으로써 상황이 주는 재미를 극대화했다. 게으르고 의욕도 없는데다 성격까지 나쁜 OB에 대해 성실하고 유능하며 또 착하기까지 한 YB로. 어제의 포인트였다. OB와 YB의 대비란.

 

상황에 대해 또 한 번 그 묘미를 느끼게 해 준 것이 또 차를 실은 트레일러가 앞을 지나갈 때 김태원의 한 마디,


"차가 도착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조금 전 이경규가 차를 고치느니 아예 한 대 사자며 친구에게 전화하던 장면에서 이어진다. 고칠 것 없이 한 대 사서 가자는 이경규의 말을 잊지 않고 트레일러가 지나가자 그것으로 상황을 이어간 것이다. 이경규도 아주 잠깐의 간격을 두고 바로 그것을 받고 있었고.


"내 친구가 빨라!"


그리고 이경규와 김태원의 상황극.


바로 이런 게 리얼버라이어티에서의 상황극이라는 것이다. 보면 알겠지만 어느 것 하나 바로 지금에서 시작되는 것이 없다. 딱 정해서 지금부터 어떻게 하자. 그건 상황극이 아니다. 콩트지.


그건 그동안 오래도록 쌓아 온 캐릭터와 관계를 전제한다. 초반에는 이경규가 무리해서 나서가며 상황극을 만드느라 어색한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동안 이만큼 캐릭터와 관계가 쌓여 온 거다. 딱 보는 순간 누구나 각 멤버가 이 순간 어떻게 반응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에 대해 또 주위에서 어떻게 대할 것이라는 것도.


예를 들어 김태원이 이정진의 차를 두고,


"아줌마가 사 준 것일 수도 있어."


했을 때 그 전제는 바로 이정진의 비덩캐릭터였다. 남자의 자격의 얼굴로서 호남형인 이정진을 놀려 그같은 멘트를 던진 것이다. 이어진 고속도로에서 타이어가 펑크나서 한참을 서 있었다는 말에 이윤석을 부르지 그랬느냐는 말 역시 상전 이경규와 하인 이윤석의 캐릭터를 전제한 것이었고.


그리고 그것이 OB와 YB로 팀을 나누는 순간 서로의 팀에 대한 캐릭터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 아내가 사라졌다 편에서 나뉘어졌던 연장이기도 하다. 서로 하기 싫어하고 떠밀고 어수룩한데다 무능하기까지 한 늙은 형들과 그와 대비되는 YB. 그것을 김국진과 김태원, 이경규의 짧은 상황극으로 정의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정의 아래 YB와의 관계를 만들고 그로써 상황을 이어가고 상황극을 연기하고.


뒤에 언급한 김태원의 멘트 역시 마찬가지다. 김태원이 시작이 아니었다. 시작은 이경규였고, 이경규 역시 자신의 캐릭터를 연기한 것이었다. 그것을 잊지 않고 돌발적인 상황에 그것을 살려 이어간 것이 김태원의 감각이고, 그에 호응하여 상황극을 이어간 것은 이경규의 경륜일 것이다.

 

물론 말했듯 이런 것들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또 한 번 김태원에게 감탄한다. 김태원이 리얼버라이어티에 출연한 자체가 남자의 자격이 처음이었고, 예능 역시 그 전해 9월에 라디오스타와 명랑히어로에 출연한 것이 처음이었다. 남자의 자격까지 예능출연이라고 해봐야 띄엄띄엄 이어지고 있었을 뿐이고. 그러나 이미 김태원은 남자의 자격에서 이경규, 김성민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기둥 가운데 하나라 해도 좋을 정도로 활약이 매섭다. 적절히 상황을 파악하고 이용하면서 다른 멤버의 캐릭터까지 살려주는, 또한 자기 자신을 다른 멤버들을 위한 먹잇감으로 내던지고 하는 능력은 어지간한 예능감이라 보기 힘들다. 멘트나 행동이 웃겨서도 웃겨셔지만 그같은 역할이 남자의 자격에서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아무튼 그동안 그렇게 쌓여 온 관계와 캐릭터가 이제는 굳이 이경규가 나서서 상황을 부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작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역시 상황을 부여할만한 능력이 되는 것은 이경규에서부터 이윤석까지의 고참들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김성민 역시 자기 캐릭터로써 사건을 일으키는 능력이 되니 남자의 자격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란 멤버의 수 만큼이나 다양할 수밖에 없다. 바로 그런 것이 두드러지는 웃음은 없지만 끊임없이 소소한 - 치밀하면서도 소박한 재미를 주는 이유일 텐데,


바로 이런 것이 리얼버라이어티가 추구하는 리얼리티일 것이다. 자연스러움. 물론 그것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심지어 인위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것이다. 설사 그것이 인위적인 어떤 설정이며 연기에 불과하다 하지라도 오랜시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축적되고 완성되어 온 것이라면 그것은 프로그램 안에서 하나의 사실로 정해진다. 시청자들도 그것을 사실로서 받아들인다. 그런 가운데 이루어지는 바로 그같은 자연스럽고 유기적인 대화와 행동들. 그리고 그것들이 끊이지 않고 연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 그래서 다음을 기대하도록 만드는 것.


사실 이것은 남자의 자격만의 강점은 아닐 것이다. 요즘은 잘 보지 않지만 무한도전이나 1박 2일에서도 리얼버라이어티로서 추구하는 재미란 바로 이런 것들에서 나온다. 그동안 축적되어 온 캐릭터와 관계에 MC에 의해, 혹은 이제는 멤버들 자신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상황에, 그리고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상황극들. 마치 실제처럼 이루어지는 그같은 모습들이 재미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패밀리가 떴다가 그토록 대본논란을 비롯 구설수에 휘말리면서도 유재석이 하차를 발표하기까지 선전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오히려 패밀리가 떴다가 몰락한 이유는 그같은 캐릭터와 관계의 붕괴와 재구축의 실패였지 정작 대본이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아니 대본이 문제가 되었어도 그것이 너무 서툴러서 더 이상 자연스러운 상황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지 대본 자체가 문제였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캐릭터와 관계를 그토록 강조하는 것도 그래서다. MC에 대해 캐릭터와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상황에 대해서 요구하는 것도 그래서다. MC가 상황을 부여하지 못하면 제작진이라도 나서라. 혹은 사건이라도 일으키라. 사건이 일어나면 자연스레 그에 반응하면서 상황은 만들어질 것이니. 그러면서 출연자들의 자연스런 반응을 통해서 굳이 개인기에 의존하지 않고도 분량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출연자 개인의 역량이 아닌 팀웤을 통해서. 그래야 안정적인 재미를 꾸준히 오래도록 줄 수 있다.


내가 말하는 궁극의 리얼버라이어티란 시트콤이란 의미일 것이다. 리얼버라이어티만의 캐릭터와 관계, 그리고 상황을 통해 만들어지는 자연스런 상황극이 보여주는 재미. 또 그것이 극치를 이루면 전혀 관계없이 따로따로 이루어지는 상황극이 하나의 줄거리를 이루며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어제의 남자의 자격이 그랬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리얼버라이어티다. 오히려 무한도전이나 1박 2일에 비해서도 더 버라이어티의 티가 나지 않아, 때로 너무 서툴고 어색해서 그래서 더 집중하게 되는 최고의 리얼버라이어티다. 남자의 자격이란. 어쩔 수 없이 그래서 리얼버라이어티를 이야기할 때 남자의 자격을 전제하는 것일 테고.


말하자면 전제다. 나는 과연 어떤 리얼버라이어티를 추구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리얼버라이어티란 무엇인가. 그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이야기하는 것들에 대한. 내가 왜 그런 소리들을 하는 것인가에 대한.


어제는 연출이며 구성까지도 너무 세련되어서 오히려 어색할 정도였다. 남자의 자격이라면 촌스러울 정도의 투박함이 매력이었는데. 그런데도 그것이 너무 잘 어울리더라는 것이. 아니 어쩌면 세련된 것은 연출과 구성이 아닌 멤버들이었을 것이다. 출연자들의 연기가 모습들이 너무 자연스러워 그렇게 보인 것일지도.


내가 남자의 자격과 더불어 이제는 유이하게 챙겨보는 청춘불패에 대해서도 요구하는 것들이 이런 것들이다. 시간과 더불어 축적된 캐릭터와 관계로써, 단속적인 콩트가 아닌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상황극들을 만들라. 아예 청춘불패라는 한 편의 드라마를 스스로 만들어 보라. 멤버들의 자연스런 모습을 통해서.


어쩌면 너무 큰 요구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미지는 크게 잡아야 근처에라도 가는 것이다. 물론 청춘불패가 추구하는 방향이 그와는 전혀 거리가 멀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거야 그쪽 사정이고 내 사정은 아니니.


결국 결론은 남자의 자격이야 말로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리얼버라이어티라는 것이다. 누가 뭐라든. 내 멋대로. 나는 말했듯 항상 주관적으로 글을 쓰니까. 오로지 내 입장에서만.


아무튼 어제는 정말 최고였다. 바로 이런 게 남자의 자격이구나... 다른 말이 필요없이.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