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트로트의 미학...

까칠부 2010. 2. 4. 11:52

나는 희한하게도 어려서부터 트로트를 좋아했었다. 락도 좋아하고, 블루스도 좋아하고, 포크도 좋아했지만, 그러면서도 항상 트로트를 함께 끼고 살았었다. 특히 80년대 이전의 트로트들에 관심이 많았는데, 일단 나이 지긋하신 분들 좋아하는 트로트는 거의 같이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까지 되었었다. 그 이유,

 

내가 카라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를 말하면서 밝힌 그대로다. 순수해서.

 

트로트는 정말 순수한 음악이다. 악기구성도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리듬에, 단순한 박자에, 멜로디조차 어디선가 들어본 듯 뻔한 것들이다. 그러나 그 단순함에는 신명이 있다. 바로 탁주 한 사발 들이키고서는 흥에 겨워 젓가락 장단을 맞추는 그런.

 

원래 트로트 자체가 일본 칸토지방의 민요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폭스트롯에서 유래를 찾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인데, 그렇다기에는 엔카 자체가 너무 슬로우템포다. 폭스트롯은 경쾌한 리듬의 댄스음악이다. 그리고 그러한 일본의 전통민요가 현대음악과 만나 체계를 갖추고, 다시 우리나라로 건너와 우리나라의 전통민요와 만나 만들어진 것이 우리나라의 트로트다. 그 핵심이 바로 뽕짝. 젓가락 장단이다.

 

어차피 민요라는 게 그렇다. 미국의 블루스도 노예로 있던 흑인들의 한이 서려 그리 구슬픈 장단과 리듬을 갖게 되지 않았던가. 힘겨운 일상을 하루하루 버티던 민초들에게 노래란 그들의 삶을 위로하는 소중한 도구였다. 힘들고 억울하고 화나고 슬픈 모든 감정들을 감정만큼이나 굴절된 리듬에 실어 토해내곤 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노래에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소박한 일상들이 진솔하게 담겨 있었다.

 

정선아라리에 보면 그런 가사가 있다. 고초당초 맵다더니 시집살이보다 매운 게 있을까. 당연히 시집살이에 시달리던 며느리들이 부르던 노래일 것이다. 한오백년은 가락은 참 구슬픈데 정작 가사를 보면 자기를 농락하고 떠나간 누군가를 원망하는 내용이다. 밀양아리랑은 아예 날 좀 봐달라고 보채고 있다. 어차피 배운 것 없고 체면 차릴 것도 없는 민초들이기에 노래들에는 더욱 그들의 일상과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그들이 즐기던 노래도 바로 그런 노래들이었다.

 

더 복잡할 것도 없고 더 대단할 것도 없다. 간결한 멜로디에 실린 구성진 목소리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가사들. 더 깊이 들어갈 것도 없이 그저 들리는 대로 듣고, 느끼는 대로 어깨춤을 추고 장단을 맞추며, 그 가사를 따라부를 수 있는 그런 노래.

 

바로 그런 유치함이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질박함일 것이다. 그리고 원래 락도 그런 음악이었다. 포크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락이 등장했을 때, 포크가 미국에서 컨트리로 불려졌을 때 그것이 추구한 것은 단순하고 소박한 감정이었다. 사랑하고, 슬퍼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일상에 기뻐하는, 그런 락과 포크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 것이 60년대 이후 일어난 학생운동의 바람이었고. 기성세대에 저항하던 젊음의 열정이 또한 순수하고 또 솔직하게 이들 음악에 실려 들려왔던 것이었다.

 

구성지게 지르고 꺾는 민요나 트로트나, 한껏 샤우팅으로 내지르는 락이나, 절제된 목소리로 읊조리듯 부르던 포크나, 영혼 저 밑에서 끌어올린 듯 깊은 울림으로 토해내던 블루스나, 결국 같은 것이었다. 목적한 바는 하나, 솔직하고 순수한 자신의 일상과 감정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우리만의 저변의 솔직함과 순수함을 담아내던 것이 트로트였다. 마치 동요처럼. 어른의 동요랄까?

 

그래서 나는 요즘 이른바 신세대 트로트 가수들의 의도적인 꺾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원래 트로트의 꺾기는 흑인음악에서의 그루브마냥 자연스럽게 자신의 신명을 담아내는 거였다. 꺾으려 해서가 아니라 노래를 부르다 보니 어느새 꺾이는 거다. 속의 것을 토해내듯 내뱉다 보니 그것이 떨림이 되고 꺾임이 되던 거였다. 얼마나 잘 많이 꺾느냐가 아니라. 아예 그런 의도적인 꺾임 없는 트로트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박사가 그랬다. 이박사도 트로트가수였다. 정확히는 뽕짝. 그러나 이박사의 노래를 들으면 의도적인 꺾임은 거의 없다. 그저 솔직하게 내지를 뿐이다. 가락을 따라, 장단을 따라, 솔직하게 토해낼 뿐이다. 그래서 흥겹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 가운데 한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는 트로트란 그렇다. 한 마디로 유치한 거다. 너무 뻔해서, 너무 속이 들여다 보여서, 그래서 더 이상 생각할 것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그게 뭔지, 뭔 뜻이고 뭔 의미인지 생각할 것 없이 그냥 그대로 듣고 따라부름면 되는. 때로는 더 깊은 이야기일수도 있고, 때로는 한없이 가벼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어찌되었거나 그 자체로써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음악이다. 더불어 신명나고.

 

그래서 나는 트로트를 두고 가사며 멜로디며 유치하다 비판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웃음부터 난다. 원래 그러자는 음악인데. 쓸데없이 폼 잡고 더 잘하려 부르는 음악이 아니라, 그냥 속에서 나오는대로 솔직하게 후련하게 지르는 음악인데. 그래서 평소 락이네 재즈네 해도 노래방 가서는 가장 많이 부르고 가장 분위기 띄우는 것이 트로트 아니던가. 그같은 유치함이 오히려 더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와 닿는 터라.

 

유치한 것이 반드시 나쁜가. 나는 그건 절대 아니라 본다. 때로 유치해서 좋은 것도 있는 법이다. 동요가 그렇다. 어린아이의 순수함은 동요의 유치함 속에 있다. 그럼면 어른의 순수함은 어디 있을까. 옛사랑의 추억에 울며 부르는 트로트에 있지 않을까. 남자따위 필요없다며 투정부리는 트로트에 있지 않은가. 그 한없이 유치한 직설적인 가사에 있지 않을까.

 

내가 트로트를 좋아한 이유다. 이상하게 어려서부터도 그 유치한 가사들이 좋더라는 거다. 에두르지 않고 직설적으로 내뱉는 것이. 락을 좋아한 이유처럼. 블루스며 포크를 좋아한 이유처럼. 다만 그런 것들과는 다른 어쩐지 소똥냄새 장작타는 냄새가 나는 듯한 그런 촌스러움이 좋아서. 지금도 그래서 그런 음악들이 좋다. 한없이 순수하고 솔직하고, 그래서 유치하고.

 

트로트란 그런 음악이더라는 것이다. 아아, 간만에 트로트나 한 번 열심히 달려볼까? 죄다 옛날 것들로다. 그것도 좋겠다.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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