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경제를 이야기하려면 역시 성리학의 검약과 금욕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차피 생산이 부족하니 그만큼 욕심부리지 말고 아껴서 남겨쓰자.
그래서 세금도 적었다. 당연히 관리들의 녹봉 역시 적었다. 조정의 지출 역시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이상적일 것이다. 가져가는 것도 받는 것도 그만큼 적다. 하지만 덕분에 조선은 후기까지 원시적인 자급자족경제를 벗어나지 못한다.
일본은 과연 어떻게 그토록 일찍부터 시장이 발달할 수 있었는가. 당장 농민들이 내는 세금이 7할이었다. 그리고 영주들이 거둬들인 세금을 쓰는데 있어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전국시대에는 군을 유지하기 위해, 전국이 끝나고 나서는 사치를 위해 막대한 수입을 재정으로 지출했다. 그로 인해 많은 영주들이 빚을 지고, 심지어 가신들에게 녹봉을 지급하지 못하는 지겨에까지 이르기도 했었다. 대신 그렇게 지출한 모든 비용은 곧바로 도시의 시장으로 흘러들어갔다. 상인과 장인, 그리고 그들의 고용인, 다시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인과 장인에게로 생산은 흘러들어간다. 물론 여전히 농민들은 궁핍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유럽이나 중국 역시 시장을 주도한 것은 지배신분의 허영과 사치였다. 지배신분의 호화스런 취향을 만족시키고자 굳이 멀리서까지 값비싼 상품을 사들여야 했고 그로 인해 무역이라는 것도 활성화될 수 있었다. 무역상인들이 생겨나고, 그들로부터 상품을 사들여 소비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상인들도 분화되었다. 수입이 늘어난 상공인들을 위한 또다른 소비시장이 생겨났다. 그에 따른 인력수요는 고용을 늘리고 어느새 도시로 몰려든 많은 인구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물론 이상적일 것이다. 굳이 낭비하지 않고, 아껴서 남기며, 필요한 것은 부족하더라도 직접 만들어서 나누어 쓴다. 하지만 그 결과 시장은 발달할 수 없었고, 경제는 순환되지 않았다. 부족한 것은 없지만 풍요롭지는 않다. 구한말 조선을 찾은 외국인들이 내린 조선인의 경제수준에 대한 평가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생산이 제한된 농업경제를 전제했을 때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무한성장을 전제한다. 무한생산과 무한소비만이 자본주의의 이유다. 그냥 정체된 채로는 자본주의는 성장할 수 없다. 그래서 국민들더러 빚을 내서라도 소비를 하라는 것 아니겠는가.
나라경제를 위해 소비를 줄여야 한다. 낭비를 줄여야 한다. 사치를 금해야 한다. 그러므로 욕심을 버리고 적은 수입으로도 만족해야 한다. 시장에 상품은 넘쳐나는데 그러나 늘어난 만큼의 소비를 감당할 여력이 안된다. 수입은 억제되고, 그만큼 다시 기업의 이윤은 제한된다. 이윤이 제한된 만큼 고용과 소득이 줄어들고, 다시 악순환이 이어진다. 굳이 소비하기보다 차라리 자기 손으로 모든 것을 직접하며 아끼기를 고집한다. 그러고도 경제는 발전할 수 있을까.
역사는 거울이다. 현재를 비추어 답을 찾는다. 조선시대에는 생산자인 농민을 걱정해서 검약과 금욕을 강조했다. 지금 국민들은 빚을 내서라도 소비할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 더 이상의 소득을 기대해서는 안되지만, 그러나 소비는 해야 한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그저 아끼고, 견디고, 참고, 그것이 미덕이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에까지 그것을 강요한다. 강물은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며 흐른다. 시대도 바뀌고 역사도 바뀐다. 현실만 바뀌지 않는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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