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직전 임재범의 목에서 힘이 빠졌다는 소리를 들었다. 더 이상 예전같지 않다고. 이제는 퇴물이라.
그러나 웬걸? 낙인을 처음 듣는 순간 느낀 것은 늙은 호랑이의 노회함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가장 강하면서도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그의 목소리는 천변만화했었고 소화하지 못할 노래가 없는 것 같았다. 가장 뛰어난 메탈보컬이었으면서도 소울 보컬로서도 탁월했으니. 노래에 맞게 변화하는 목소리란 하늘이 내렸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드러내고 감추는 것을 자유자재로 하게 된 임재범의 목소리는 가녀리게 흐느끼면서도 단단하게 관조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상처입은 사내의 울부짖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를 부여잡고 걸어갈 수밖에 없는 의지가, 말라버린 눈물과 피조차 멎어버린 상처가 무심한 눈빛과 함께 보이는 듯한, 야수와 그리고 흐느낌조차 삼켜버린 여린 내면과,
아마 임재범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이렇게까지 소화할 수 없는 노래가 아닐까. 멜로디 자체는 범상하다. 가사와는 어울리지 않게 어쩌면 평범하다 할 수 있는 음악을 이렇게까지 살려낼 수 있다는 것은. 왜 대중가요에서 노래 앞에 작곡가가 아닌 가수의 이름이 붙는가를 보여준다. 이 노래는 임재범의 노래라.
드라마를 보지 않아 모르겠다.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데다, 이제는 분량까지 제법 쌓여 엄두가 잘 나지 않는다. 그러나 노래와 함께 흘러나오는 동영상은 그렇게 잘 어울린다. 모르긴몰라도 땀냄새와 피냄새가, 그리고 매캐하게 타버린 땀냄새가 나는 그런 드라마이리라. 노래에서처럼. 임재범의 목소리처럼.
몇 번을 들었을까. 들어도 들어도 도무지 질리지 않는다는 건. 역시 임재범이라. 임재범의 이름때문에 들었고, 임재범이었기에 만족할 수 있었던 그런 노래였다. 임재범의 건재함이 그래서 반갑다.
전설은 역시 전설로서 살아 있구나. 임재범은 임재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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