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유현상이 방송에 나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아마 누군가 젊은 가수가 샤우팅에 대해 물었을 때였을 텐데,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돼. 어느 순간 이런 게 필요하다 여기면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익게 되어 있어."
사실 이건 이전까지 음악인들의 자연스런 방식이었다. 지금이야 연습생시절을 거치며 트레이닝을 받고 어느 정도 완성이 된 상태에서 데뷔하는 게 당연해졌다. 이미 사람들의 상식이 그렇다.
"가수로서 노래를 잘 하고 무대에 서야..."
그러나 당시는 아니었다. 그런 체계도 되어 있지 않았고, 따라서 대부분의 가수며 연주인들은 가장 소외된 무대부터 찾아 그 위에 오르며 자기 음악인생을 시작했다. 여전히 서툴고 어색한 채로 무대에 서서 무대 위에서 관객의 냉대와 비난 속에, 아니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가운데서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하며 무대부터 배워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기 음악을 만들어갔다.
사실 당시 가수들 가운데는 지금 기준으로 하면 노래 못부르는 가수가 더 많았다. 노래를 잘 부르기는 요즘이 더 잘 부른다. 연주를 잘하기도 지금이 더 잘 한다. 당연하다.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며 실력을 기르는 요즘과 거의 독학에 주위에 알음알음으로 배우는 당시와는 원래 비교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사람들이 당시가 나았다 착각하는 이유, 그만큼 자기화시켰기 때문이다.
당시는 생목으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도 많았다. 창법이고 뭐고 없이 그냥 부르고 보는 것이었다. 대신 그것은 이미 가수 자신이 되어 있었다. 당연히 자기 노래는 이렇게 부르는 거라. 유현상이 말한 것처럼 무대에 서고 자기 음악을 하면서 그러면서 무대 위에서 만들어지는 이미지가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실현되는 것이었다. 즉 어떤 음악을 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고 그를 필요로 하게 되었을 때 자연스레 자기 목소리가 만들어지고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과정은 꽤 고통스럽지만.
이해가 어렵다면 노래방에서의 자신을 떠올려보면 되겠다. 어떻던가. 좋아하는 노래다. 잘 부르고 싶다. 머릿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여기서는 이렇게 불러볼까? 여기서는 이렇게 해 볼까? 그렇게 궁리하면서 시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기 목소리라는 것이 만들어진다. 비록 정석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노래방에서만큼은 자기 노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카라의 미스터 첫무대와 마지막 무대와의 차이와 같은 것이기도 하다. 같은 미스터지만 첫무대와 마지막 무대를 놓고 보면 느낌이 상당히 다르다. 그저 주어진 노래와 안무를 따라갈 뿐이던 첫무대와 점차 그것을 자기화시키던 마지막 무대와. 그래서 원래 밴드란 것도 한 해 200회 넘는 공연을 통해서 무대 위에서 연주든 노래든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신대철이 오히려 아이돌이 자기네 밴드보다 낫다 하는 것도 그래서다. 아이돌은 그나마 무대에 설 기회나 많으니까.
다만 차이라면 과연 카라의 음악이란 카라의 음악인가. 즉 진정으로 그녀들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음악인가. 만일 진정으로 하고 싶어서 하는 음악이라면 어떤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불러야겠다. 혹은 이렇게 부르고 싶다. 그러면서 그같은 이미지에 다가가려 무의식적으로 노력하게 되겠지. 비록 정식적인 트레이닝을 거치지는 않았어도 무대 위에서 필요가 그녀들의 목소리를 그렇게 만들어갈 것이다. 잘하지는 않더라도 그렇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자기 음악으로 삼고.
내가 구하라의 노래를 들으면서 가장 실망한 부분이 그것이었다. 너무 자신감이 없다. 매가리가 없다. 그래서는 발전이 없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이라면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면서 정면으로 부딪히고 그러다 보면 깨지면서 자기 음악과 목소리를 찾게 된다. 그래서 내가 그때도 그랬을 것이다. 못하더라도 자신감 가지고 힘있게 부르라.
내가 지금도 아이돌이라면 음악인으로서 잘 인정하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다. 과연 자기 음악을 하고 있는가. 자기 음악을 하며 그로써 이미지로 삼고 있는가. 그것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음악인가. 그러나 또 그런 점들이 카라를 좋아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모두가 인정하는 서툶 가운데 아직 정형화되지 않은 살아 날뛰는 어떤 생생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아직은 한참 서툴고 부족하지만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아직 자기 색깔을 잃지 않은. 그래서 또 카라 멤버들의 의지가 반영되었다는 이번 새앨범이 그리 기대되는 것이고. 참고로 내가 카라 2집에서 가장 많이 들은 음악도 어디선가 카라 멤버들이 출연해 "가장 즐겁게 불렀다"고 말한 Let it go였다. 그 말이 그리 기대가 되어서.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과연 어떤 음악을 하고자 하는가. 과연 내가 서고자 하는 무대는 어떤 무대인가. 목표를 가지고 이미지를 가지고 그리고 그를 위해 자신감 있게 부딪힌다. 그러면서 시행착오 속에 어느새 자기 음악을 만들어간다. 그렇게 표현되는 음악이야 말로 자기 자신일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곳은 무대라는 것이다.
완성되고서 무대에 서려면 이미 늦다. 처음부터 자기가 할 바, 할 수 있는 바를 다 아는 사람은 없다. 연습과 실전은 전혀 다르다. 정형화된 연습과 살아 움직이는 무대와도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무대 위에서 자기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쉬운가. 같은 안무더라도 무대 위에서 저리 살아 움직이며 진화하고 있는데.
그래서 요즘 가장 큰 불만이 사실 그것이다. 너무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수들이 너무 노래들을 잘한다. 잘하는 게 뭐가 문제겠냐만 너무 잘한다는 것이... 왜 너무 잘하기만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디음악이 또 그리 좋더라는 것이고. 적당히 잘하고 적당히 못하고 전혀 균질화되지 않은 그 생생함이.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대로 느껴지는 그런 살아 날뛰는 느낌이. 원래는 무대를 봐야 하는 것일 테지만.
과연 노래를 잘한다는 기준이란 무언가... 글쎄... 바로 며칠 전 이재민의 골목길을 올리며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이재민은 노래를 못 부르는가. 못부르기도 하고 잘 부르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아마도.
아, 기타리스트 누구던가 예전 한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누가 더 잘하고 누가 더 못하고 그걸로 허들을 삼으면 재미없잖아요? 누구는 이런 걸 잘하고 누구는 저런 걸 잘하고 다 자기 색깔이 있는 거죠. 기타리스트만큼이나 다양한 색깔이 존재하는 거고 그래서 기타를 치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정확한가는 모르겠다. 참 인상적인 말이라 기억해두었던 기억이 있다. 그 말을 하고 싶어서.
음악이 만들어지고 무대에 서는 것이 아니라 무대에 서고서 무대에서 음악은 만들어지는 것이라. 그게 음악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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