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어디 가면 빼놓지 않고 하는 멘트가 있다.
"이거, 내가 지은 거야!"
IMF가 터지기 직전 나 역시 현장에 있었더라는 것이다. 벌이가 꽤 쏠쏠했다. 당시 하루 일당이 5만 5천원이었던가? 소개료 5천 원 떼주고 나면 5만 원, 일주일에 사흘 뛰고 나면 나머지 나흘은 내 일을 볼 수 있었다. 마침 당시 나도 목표로 하던 것이 있었기에 그 시간이 아쉬워 현장일을 나가고 했었다. 그놈의 IMF만 아니었다면...
정말 타격이 컸었다. 아마 기억하는 사람들 있을 것이다. 새벽같이 직업소개소에 나가도 도무지 일이 없어 허탕치고 돌아오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한 번은 긴가민가 하면서도 비슷한 이름 불리길래 무작정 일을 나간 적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원래 다른 사람에게 돌아갈 일이라 맡겨놓았던 회원증을 잃어버려 그나마 일도 못하게 되었었다. 새로 회원증도 발급 안 해 줬었거든. 정말 비참하던 시절이었는데...
그래서 참 새삼스러웠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지으면서 맡았던 석면냄새며, 한겨울 언 땅에 곡괭이도 없이 삽질하던 말 그대로 삽질의 기억이며 - 아마 삼성건설 아파트 현장이었을 것이다. - 무게도 부피도 애매한 철근을 거리까지 애매한 곳으로 몇 번이나 반복해 나르던 기억이며, 아, 마지막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차라리 아예 무겁거나, 아니면 부피라도 적당하거나, 멀기라도 하거나, 애매한 것이 나중엔 미치고 환장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 도로 근처를 지날 때면 지금도 허리가 욱신거린다.
그나마 어느 현장에선가는 새참조차 나오지 않았었다. 다른 어느 현장에서는 빵과 우유가 전부였고. 추운 겨울날 차게 언 우유에 딱딱한 빵을 씹는 기분이라니. 가장 서러운 것이 먹는 것으로 사람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일 시키면서 먹는 것 가지고 돈 몇 분 아끼겠다고 할 때는 치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것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에서. 정말이지 그때 일만 생각하면...
한 마디로 당시 일에 대해 좋은 기억이라고는 거의 없다. 말로야 내가 저거 다 지었다고 으스대고 뻐기고 하지만 어차피 사람이란 군대 갔다와서도 그러지 않던가.
"내가 군대에서는 말야..."
그러나 그렇다고 군대 다시 가라면 가겠는가? 물론 돈 주면 다시 간다. 충분타당한 돈만 주면야 지금이라도 다시 가라면 간다. 그러나 그때 그 조건 그대로 다시 가라면 그냥 이민가고 만다. 말 뿐이다. 너무 힘들었으니까. 그리고 억울하니까. 그래서 그렇게라도 풀고자.
사실 그런 게 신명이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오히려 그것을 흥으로 바꾸는 것. 힘들고 어려운 채로 있을 수는 없으니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고 흥겨움을 찾으려는 것. 흑인음악에서 발견되는 그루브라는 것도 바로 거기에서 나온 것이다. 같은 것이다. 신명을 위한 구라.
물론 그럼에도 힘들어도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게 있다. 그것이 자기 일이라면 당연히 최소한의 긍지와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할 수 있어야 한다. 최선을 다해서 자기 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직업이라는 것이니까. 그런 것이 프로라는 것일 테니까. 그렇게 다들 일해 먹고 산다. 가족 부양하고.
그러나 그렇다고 반드시 힘든 일을 해봐야 한다?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힘든 일을 경험해 봐야? 그것도 당연히 아니다. 반드시 힘든 일을 해야? 그건 더더욱 아니다. 과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도대체.
내가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느꼈던 어떤 불편함이 그것이다. 하필이면 방송국이 KBS더라는 것. 그리고 바로 얼마전 대통령이 취직이 안 되면 기술이라도 배우라고 한 말씀 하셨다는 것. 더불어 일자리 만든다며 4대강 사업을 벌써 착곡하셨다는 것. 그러고 보니 나온 일자리 가운데 하나가 비탈면 녹화사업이다. 녹생성장. 녹색산업. 무언가 통하지 않는가?
아마 이런 것을 몽타쥬 기법이라 할 수 있을 테지. 에이젠슈타인이 영화 "전함 포템킨"에서 처음으로 사용했을 때 그것은 혁명의 열정에 들뜬 한 젊은이의 이상을 위한 선동의 수단으로 쓰였었다. 땀흘려 일하는 현장과 녹화사업과 그리고 땀과 육체에 대한 찬사. 다른 때였다면 모르겠지만 하필 요즘이라. 그리고 방송국이 KBS라. 그리고 KBS라는 것이 어떤 방송국인지 아는 터라. 설마 예능국까지 점령당한... 아니지. 애시당초 사장의 교체나 그동안의 일련의 사태에 대해 침묵하고 있었다는 자체가 무언의 동조일 것이다. 그러나 예능에 대해서까지 이런 식으로 동원하리라고는.
물론 아닐지도 모른다. 나의 넘겨짚기일지도. 그러나 KBS라는 말이다, 다른 방송국도 아닌 KBS라는 것이다. 세상에 어느 다른 나라에서 광우병이 발병했다는 데 설마 걸리겠느냐며 아무렇지도 않게 수입해 먹는 나라는 한 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정부를 무려 절반이 넘는 국민이 지지하는 위대한 국민의 나라. 과연 내가 안심하고 KBS산 예능을 받아먹어야 되겠는가.
참 시절이 좋지 않다. 요즘만 아니었다면 나는 다른 이야기를 풀어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른 좋은 기억들. 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 현장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 참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러나 시절이 시절이다 보니 떠오르는 것이란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이 그저 습관처럼 새벽 직업소개소에 얼굴을 비추던 나보다 한참 나이 들어 보이던 어느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여인숙에서 여자친구와 결혼도 못하고 동거중이라던. 나더러 그랬었다.
"평생 할 일 아니면 왠만하면 이런 데 나오지 말아."
아마도 그저 잠시 일당벌이를 하려 나오는 내 모습이 젊음을 낭비하는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리라. 자기처럼 아무 꿈도 목표도 없이 그저 일당벌이만을 목적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지금 와 생각해 보면 IMF때문이라고 해도 그 말이 맞았던 것 같지만.
그래서 입맛이 참 썼다. 프로그램 자체는 재미있었다. 이제 남자의 자격은 아무렇게나 찍어도 장면이 나오고 이야기가 나온다. 그냥 아무렇게나 흩어 놓아도 알아서 장면을 만들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혼자 떼어 놓아도, 병풍이라 소외시켜도. 그래서 정말 아쉬운 회차였다. 더 재미있을 수도 있었던 것을.
그나저나 경규옹 팬이 많네. 익히 알고 있었다. 김국진도 여성팬들 많다. 아직 표면화되지 않아서 그렇지. 멋지단다. 경규옹도 마찬가지다. 전설이 되어 있어야 함에도 여전히 현역에 남아 있는 그런 프로정신이, 그리고 자신이 맡은 프로그램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며 보여주는 모습들이, 더구나 최근 남자의 자격에서 보여주기 시작한 그런 귀여움들이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어필하는 모양이라.
재미있었다. 카메라가 돌아갈 때마다 모로 쓰러지며 얼굴을 가리는 팬들. 디시 경규갤에서 왔다고 하니 아는 닉도 몇 있을 것 같은데, 당황하고 쑥쓰러워하면서도 자랑하고 싶어 어쩔 줄 몰라 하는 경규옹의 모습은 참으로 귀여웠다. 아마 저런 모습들에 꺼뻑 넘어간 것이겠지. 회춘하신 경규옹이었다.
여전히 정겹고, 여전히 훈훈하고, 그놈의 KBS만 아니었다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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