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남자는 아이이고 자동차는 꿈이다...

까칠부 2010. 2. 10. 08:13

새벽 문득 잠에서 깨어 남자의 자격을 다시 보았다. 역시 재미있었다. 두 번이나 보고서도 여전히 보지 못한 부분이 있었고, 미처 주목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 부분도 있었다.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그리고 또 새로운 재미를 느껴가며 보는 느낌이라니... 내가 이 맛에 남자의 자격을 본다.

 

특히 새벽에 느긋하게 드러누워 보고 있으려니 이번에는 그렇게 웃기던 OB만이 아닌 별로 웃기지 않던 YB까지 눈에 들어왔다. 그저 헐랭한 OB에 대한 대조군으로서 남자의 자격의 지난주 미션의 주제를 보여주고 있구나 여겼는데... 그러나 한참 느긋해져 있으려니 또 그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아, 이래서 팀을 이렇게 나누었구나...

 

말하자면 OB에게 자동차란 이미 현실이다. 당장 고장나면 고쳐야 하는 난감한 현실이고, 일상에서는 가족이 떠오르는 현실이다. 그러나 YB에게 차란 아직 꿈이다. 처음 차를 샀을 때의 설렘, 차와 얽힌 씁쓸힌 기억들, 그리고 이윤석이 말한,

 

"차가 없었다면 커플이 될 수 없었던 사람들도 많을 거야."

 

윤형빈도 차 안에서 처음으로 프로포즈를 했다던가. 윤형빈의 프로포즈 이야기에 이은 기괴한 웃음소리란 역시 남자만의 공간이구나...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이란 다 해봤다며 수줍은 듯 자랑하던 이윤석 역시. 사내자식들 모여서 한창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막힌 웃음과 함께 공모자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만다.

 

남자의 이야기란... 이미 꿈이 현실이 되어 버린 OB와는 달리 꿈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여전히 꿈이고 싶은 남자들의 허튼 이야기들이란... 그런 시시껍절한 잡담들이 자동차를 고쳐야 한다는 부담감에 끙끙거리는 OB와는 상관없이 YB사이로 흐르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것도 자동차 안에서. 마치 아이처럼 들떠 설레면서.

 

그러면서 OB의 사투도 달리 보인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문제를 마주하고 해결해가려는 모습들이. 때로는 서툴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한심하고, 때로는 무력해 보이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고민하고 실패하고 좌절하면서도 과제를 풀어나가는 그 모습들이라는 것이.

 

제작진이 원래 의도한 바인가는 모르겠다. 그러고자 한 것인가. 아니면 그냥 습관처럼 OB, YB를 나눠 놓았더니 어느새 이런 그림이 나와 버린 것인가. 하긴 리얼버라이어티라는 것이다. 리얼리티란 살아있는 것이다. 살아있기에 리얼리티라 하는 것이다. 생생히 살아 숨쉬며 어디로 튀고 어디로 자랄지 알 수 없는 그 생동감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런 장면들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 그런 장면들을 담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 바로 남자의 자격이라는 것이겠지.

 

남자의 자격이라기에는 너무나도 나약한 남자들. 나약하고 비겁하고 무책임하고 때로 무기력하기까지 한, 그래서 때로 실망과 분노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전혀 허세없이 그런 약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그러면서도 또 마지막 허세를 잃지 않는 그런 남자의 모습들. 어머니께서는 그러시지.

 

"남자란 아무리 나이를 먹어봐야 애다."

 

남자는 몇 살이 되어도 아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이는 꿈을 꾸며 살아간다. 설렘과 동경과 아픔과 좌절과 슬픔과 그리고 사랑의 달콤함이란... 그곳이 하필 아이가 꿈을 꾸던 자동차 안이더라는 것이다. 마치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비밀기지에서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듯. 그곳은 어른들의 비밀기지였을까.

 

그런 진솔함이, 그런 섬세함이, 그런 남자들만의 이야기가... 나 역시 평생을 아이일 수밖에 없는 남자이기에. 어느새 놓치고 지나쳤던 그런 것들이 이 새벽 새롭게 웃음을 머금게 하는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웃고 있는 줄도 모른 채. 내가 남자의 자격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설레었다. 아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