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듣는 순간 느꼈다. 이건 뜨겠다. 주문과도 같이 반복되는 가사와 멜로디, 미처 거부할 사이도 없이 촘촘하게 밀려드는 강렬한 비트의 사운드, 확실히 한 귀에 와서 박히는 사운드였다. 이건 분명 뜬다.
그러나 정작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계속 카라를 떠올리고 있었다. 테이스트 러브와 엄브렐러를. 루팡을. 같은 기계음이 쓰였어도 롤린을. 론리를.
내 지론은 그거다. 문화란 소통이다. 작가와 대중이 작품을 통해 소통하는 것이다. 소통이란 상대를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상대를 확인하고 그에 동의하고. 상대가 있어야 소통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티아라의 "너 때문에 미쳐"에는 정작 티아라가 없었다. 아무리 들어도 티아라를 느낄 수 없었다. 중간 뽕삘나는 멜로디는 소연이었던가? 그조차도 느낄 수 없었다. 그냥 "너 때문에 미쳐"란 노래가 있고, 사운드가 있고, 단지 알고 보니 티아라의 노래더라.
답답했다. 마치 사방이 두터운 커튼으로 둘러친 듯 답답하기만 했다. 강렬한 사운드도, 뽕삘 멜로디도 오히려 답답함만을 더했을 뿐 후련함을 주지는 못했다.
기계음 때문이었다. 물론 안다. 기계음도 음악을 표현하는 한 기법이다. 그래서 아브라카다브라에서도 도입부에서 기계음을 쓴 것 두고는 뭐라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탄한다. 아, 이렇게도 음악을 표현할 수 있구나.
롤린에서도 기계음은 쓰였다. 그러나 역시 나는 지금 롤린에 별 불만을 갖지 않는다. 기계음이 쓰였음에도 각자 멤버의 개성은 기계음 너머로 차갑지만 느껴지고 있고, 기계음이 쓰인 나머지 부분에서는 상쾌할 정도로 생생한 멤버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으니까. 젖빛 유리로 가려져 있던 창이 열리면서 비로소 얼굴을 마주하는 느낌? 어디서고 나는 카라를 느낄 수 있었고, 그 대비는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티아라의 "너 때문에 미쳐"는 그렇지 않았다. 어디에서도 티아라 멤버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느니 기계음이라는 두터운 쇠커튼이 드리워진 어두운 창 뿐이었다. 그 너머에 누가 있는지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
새삼 스윗튠에 감탄하게 되는 이유다. 스윗튠의 음악에는 항상 카라가 있었다. 바로 카라가 있어 스윗튠의 음악은 완성되었다. 다른 가수에게 곡을 준 적이 있는가의 여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카라가 부르는 스윗튠의 음악에서 카라는 출발이었으며 중간점이었으며 마지막이었다. 철저히 부르는 사람을 고려한 음악이었다. 그에 맞춘. 그에 최적화된.
반면 "너 때문에 미쳐"에는 티아라가 없다. 티아라가 없어도 된다. 티아라가 아닌 다른 누구이면 무슨 상관이겠는가. 카라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스윗튠의 음악에 비해 "너 때문에 미쳐"는 굳이 티아라가 아니어도 아무라도 상관없이 오로지 작곡자의 의지만이 존재한다. 작곡자의 의지를 대신하는 사운드만이. 티아라는 단지 그를 위한 한 부속일 뿐.
아마 내가 티아라에 아무런 감정도 호감도 없었다면 굳이 이런 긴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름 호감을 가지고 지켜봐왔기에 이런 긴 글도 쓰고 앉았는 것이다. 실망 때문에. 화 때문에.
물론 성공한다. 어쩌면 카라의 "루팡"보다 더 성공할지 모르겠다. 확실히 카라의 개성에 맞춘 듯 고풍스럽기까지 한 "루팡"의 사운드에 비해 티아라를 배려하지 않은 "너 때문에 미쳐"의 사운드는 한결 강렬하고 세련되었으며 매력적이다. 자꾸 듣게 만드는 힘도 있다. 그러나 과연 거기에 티아라가 있는가. 정작 그것을 부르는 것은 티아라가 아닌가. 설사 무대에서 춤을 추는 것은 티아라라 할 지라도.
아무튼 재미있게 되었다. 듣자니 이건 레퍼런스다. 어떤 곡을 모델로 단지 표절만 아니도록 그 느낌을 갖다 쓰는. 일부의 비트와 사운드가 같은 것과 아예 곡의 분위기가 같은 것, 과연 어느 쪽이 더 큰 문제가 될까. 개인적으로 후자가 더 큰 문제라 보지만. 전자는 또 어떻게 해결나려는가. 그러나 어찌되었거나 엄마곡이 좋으면 자식곡도 좋을 수밖에 없다. 레퍼런스의 장점이다. 비트야 아무리 갖다 써도 결국 노래 자체가 주는 느낌이 다르다면 전혀 별 상관이 없는 것이고. 과연...
어쨌거나 실망이 크다. 티아라에 가졌던 호감 만큼이나 음악에 대한 실망은 크다. 아무리 이 노래가 히트하고 대중적으로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자리에 티아라가 없을 것 같기에. 티아라를 좋아하기에.
그러나 또 그렇기 때문에 카라를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다는 점은 다행이다. 과연 카라와 티아라가 함께 경쟁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민했었는데. 그것이 또 이렇게 후련할 정도로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음악은 소통이다. 가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가수를 대할 수 있어야 한다.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가수와 대화하는 것이다. 음악을 통해서. 아마 내가 라이브를 즐겨서인지도 모르지만. 과연 그런 기본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행히 바로 이어 카라의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조금은 촌스러운지 모르지만 카라의 음악은 그래서 속시원히 그 답답함을 씻어준다. 루팡은 좋은 음악이다. 스윗튠은 좋은 작곡가고. 내 취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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