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인디밴드와 밴드 컨셉 아이돌...

까칠부 2010. 2. 19. 07:24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아이돌밴드라도 밴드음악을 하는 팀이 늘어나고 그래서 밴드에 대한 저변을 넓히면 궁극적으로 인디밴드를 비롯 밴드음악 자체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그런 게 윈윈이라.

 

그러나 정작 들어보니 사정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간단히 아무리 인디씬에서 독립적인 음악을 한다고 여전히 대중음악의 주변에서 관심도 받지 못한 채 계속 음악을 하고 싶은 이가 누가 있을까.

 

음악을 한다는 것은 들려주기 위해서다. 아무리 투덜거려도 결국은 읽히기 위해 글을 쓰듯 아무리 독립음악이라고 남들이 들어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거다. 작은 라이브클럽보다는 소극장이라도 서는 게 낫고, 소극장보다는 대극장이, 락페스티벌에서 메인에 설 수 있으면 좋고, 나아가 메이저로 진출해 방송에도 나가고 모든 이들이 그들의 음악을 따라부를 수 있으면 좋은 것이다.

 

실제 미국이든 유럽이든 일본이든 그같은 인디음악 출신으로 주류로 진출해 성공한 예가 적지 않다. 아니 인디음악 자체가 주류음악계에 끊임없이 새로운 피와 흐름을 공급하는 저변의 역할을 한다. 인디씬에서 실력을 키우고 인지도를 높여 메이저회사를 통해 음반을 내고 스타가 되어 부와 명예를 누리고...

 

아니 사실 그게 정상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처음 가수가 음악을 시작하는 것은 주변의 작은 무대에서였다. 길거리에서 연주도 하고, 밤무대의 빈 시간에 땜빵으로 서기도 하고, 그러면서 점차 실력을 키우고 인지도를 높여 기회가 주어지면 음반도 내고 메이저로 데뷔하기도 했었다. 특히 클럽무대가 발달한 해외의 경우는 작은 라이브클럽을 통해 데뷔한 밴드가 점차 인지도를 높이며 스타가 되는 코스란 전혀 특별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나라 인디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YB나 자우림도 지금은 주류밴드로 여겨지고 있지만 시작은 어디까지나 언더그라운드였다. 노브레인, 체리필터, 크라잉넛, 럼블피쉬, 루시드폴, 장기하와 얼굴들, 델리스파이스, 언니네이발관, 등등 인디씬을 통해 대중에 이름을 알린 밴드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즉 아무리 밴드음악이 침체기에 있어도 어딘가는 밴드음악을 필요로 하는 시장이 있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밴드음악을 공급하는 공급처 역할을 우리나라에서도 인디씬이 담당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주류음악인들처럼 대단한 부와 명예는 얻지 못해도 앞서 언급한 선배밴드들처럼 밴드로서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그런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선순환구조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바로 주류 연예기획사에서 아예 자체적으로 밴드컨셉의 아이돌을 만들어 데뷔시키면서부터였다. 어찌되었거나 밴드컨셉이고 그들이 하는 음악 자체가 밴드음악의 그것이었기에 그들은 급격히 밴드음악의 수요층을 흡수하게 된다. 더구나 연예기획사에서 고르고 골랐으니 외모도 되겠다, 주류무대에서도 훌륭히 적응하도록 훈련까지 잘 되어 있었다. 저 대단한 김태원조차도 핸드싱크하려면 연기가 어색한데, 처음부터 그렇게 기획된 아이돌밴드들은 연기력까지 훌륭했다. 밴드컨셉의 아이돌들은 그렇게 급속히 인디밴드의 몫이어야 할 주류밴드시장을 독점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이번 씨엔블루와 와이낫 사이의 표절논란에 대해서도, 댄스그룹 일색의 아이돌 가운데 밴드 컨셉의 아이돌이 나왔으니 그것으로 좋다는 다수의 사람들이 바로 그런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씨엔블루와 표절을 문제로 다투고 있는 것이 인디밴드인 와이낫이었음에도 인디밴드인 와이낫보다는 단지 주류무대에 서게 된 실력 있고 외모도 잘 생긴 씨엔블루의 존재에 대해 더 환영하며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주류음악시장에서 밴드음악을 이야기할 때 그 대상은 더 이상 인디밴드가 아닌 것이다. 인디밴드의 곡을 표절한 의혹이 있어도 인디밴드가 입어야 할 피해보다는 주류밴드에 괜찮은 아이돌밴드가 나타났다는 자체에 더 좋아하게 된 대중이란.

 

그래서 아마 최근 몇 년 사이 주류무대로 올라온 인디밴드가 몇 없을 것이다. 작년의 장기하와 얼굴들이 고작이랄까. 그러고 보니 최근 주류무대에서 기존의 밴드를 제외하고 새로운 밴드를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라라라 같은 음악프로그램들이야 그 자체가 비주류니 말할 것도 없고.

 

신해철이 괜히 씨엔블루를 가짜밴드라며 욕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씨엔블루가 밴드시장을 차지함에 따라 그만큼 인디씬에서 고생하는 밴드들이 올라갈 통로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오로지 음악 하나 좋아서, 오로지 밴드음악이 좋아서 인디씬에서 어렵게 음악하는 음악인들이 주류무대로 나설 시장이 그만큼 줄어들게 되는 것이었다. 락페스티벌에서 만난 얼굴도 모르는 인디밴드에게도 그리 친절하더라는 신해철에게 그런 것들이 좋게 보일까.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FT아일랜드나 씨엔블루 같은 밴드컨셉의 아이돌에 대해 조금은 달리 생각하게 된 이유다. 아이돌이더라도 밴드컨셉의 음악을 들려주다 보면 밴드음악의 저변이 넓어지겠거니... 그러나 정작 그런 밴드컨셉의 아이돌들이 차지하고 있는 시장이 원래는 인디밴드의 것이었어야 할 시장이었고 보면.

 

참 입맛이 쓰다. 밴드음악을 하는 아이돌은 반겨하면서 그와 현재 표절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 인디밴드라는 사실은 무시하고 있는 현실이. 정작 10년 넘게 밴드음악을 해 온 밴드가 있건만 단지 아이돌인데 밴드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대단한 평가를 받는다. 뭔가 상당히 어긋나고 일그러진 듯한...

 

인디밴드라고 평생 인디밴드만 하라는 법은 없다. 인디밴드라고 부와 명예와 담을 쌓으라는 법도 없다. 너바나도 시작은 시애틀의 작은 클럽무대에서 연주하던 인디밴드였고, 비틀스도 시작은 리버풀의 동네친구들이 모여 만든 밴드에서 시작했었다. 음악이 좋으면 그만한 댓가를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음악이 좋고 실력이 좋으면 더 큰 부와 더 큰 명예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부와 명예는 주류무대에 존재한다. 그같은 기대를 가지고, 꿈을 가지고 음악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왜 그리 아이돌에 대해 문제삼는가를 문득 깨닫고 만다. 아이돌에게서 가창력을 구하는 이유. 아이돌은 그저 아이돌로서만 소비하고 음악은 음악인들로부터 구하면 될 텐데도 굳이 아이돌에게서 음악을 구하는 이유,

 

물론 그렇다고 그것이 제대로 된 음악은 아니다. 이미테이션일 뿐. 아이돌이란 음악을 하는 컨셉이지 음악을 하는 존재는 아니니까. 밴드컨셉이라고 그들이 하는 음악이란 밴드음악일까. 그럼에도 아이돌이 보이는 밴드컨셉에서 밴드음악을 찾고 만다는 것이. 그래서 정작 10년 넘게 밴드음악을 해 온 베테랑 밴드는 철저히 무시해 버리고.

 

지금 한국 대중음악이 왜 아이돌 일변도이며, 왜 그럼에도 아이돌만을 비난하는가를 알 것 같다. 씨엔블루와 와이낫을 통해서. 밴드컨셉이라는 하나만으로 호의적인 평가 속에 부와 명예를 누리는 씨엔블루와 여전히 철저히 무시당한 채 묻히고 있는 와이낫과. 밴드컨셉의 아이돌과 진짜 밴드와.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다. FT아일랜드도 씨엔블루도 그래도 밴드라 여겼던 내 생각이 짧았다. 그래도 밴드이니 밴드음악에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지인과의 대화를 통해 그것을 확인했다. 밴드음악이 있는 곳은 아이돌이 아니란 것을. 밴드음악은 밴드가 하는 것이라는 것을.

 

기왕에 밴드음악이 좋은 것이면 차라리 실력있는 밴드가 마침내 주류로 진출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던가. 밴드음악이 그리 좋다면 아이돌이 아닌 진짜 음악인을 통해서 그것을 구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미테이션은 이미테이션일 뿐 결코 진짜가 될 수 없다. 이미테이션이 이미테이션인 채로 있는다면 상관없겠지만 진짜인 체 하려 한다면 그건 사기고 협잡이다.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밴드음악은 밴드에 있는 것이지 아이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데도 아이돌이 밴드를 흉내내려 한다면 사칭이랄 밖에.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이다. 진짜를 사칭한 짝퉁이 갈 곳은 소각장밖에 없다. 아이돌밴드란 없다. 밴드 컨셉 아이돌만이 있을 뿐. 아이돌은 밴드가 될 수 없다. 아이돌은 밴드가 아니다.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