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할마에, 예능의 마에스트로...

까칠부 2010. 3. 1. 08:08

지난주 남자의 자격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바로 이경규의 부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철저히 사라져 있었다. 시청자 앞에서 완전히 사라져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간간히 양념삼아 등장해 웃음을 주는 정도? 그럼에도 프로그램은 흐트러짐없이 순항하고 있었다. 왜?

 

지난주의 남자의 자격은 버라이어티가 아니었다. 예능이 아니었다. 밴드였다. 버라이어티로서 밴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밴드로서 버라이어티를 하는 것이었다. 물론 기본은 리얼버라이어티인 남자의 자격이지만 최소한 지난주 미션에서만큼은 남자의 자격은 밴드였다. 따라서 남자의 자격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예능MC가 아닌 밴드의 리더 김태원.

 

그래서였다. 밴드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이경규는 그래서 김태원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뒤로 물러섰다. 대신 김태원이 MC가 아닌 밴드의 리더로서, 그리고 아마추어 밴드를 지도하는 프로듀서로서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김태원의 진가가 드러났다.

 

"음악으로는 안될 것 같으니까 비주얼로 가기로 했다."

 

하긴 악기라고는 거의 만져 본 적 없는 멤버들이었다. 과연 이런 멤버들을 데리고 제대로 밴드를 할 수 있을까. 더구나 정기적으로 모여서 연주도 하고 한다면 가능하겠지만 서로 스케줄 때문에 그러기도 쉽지 않지 않은가. 어설픈 음악을 하기보다는 예능을 하리라. 그것은 음악인이며 예능인으로서의 김태원의 절묘한 타협점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김태원의 선택은 프로그램 전반을 지배한다.

 

학교 다닐 때 보면 그런 선생님들이 꼭 계신다. 굳이 어려운 것을 어렵게 설명하지 않는다. 아무리 어려운 것이라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유머를 섞어 쉽게 풀어 설명해준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사이 어느새 머릿속으로 그 어려운 것들이 쏙쏙 들어와 박히는 것을 느낀다. 아니 어렵기만 하던 그것들이 사실은 무척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마찬가지다. 김태원은 예능인으로서 예능인 남자의 자격에서 예능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음악인으로서의 자존심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음악이 안 되니 예능을 하지만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음악인으로서의 엄밀함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각 파트를 나누기는 그야말로 장난하듯 나누고 있다. 기왕에 비주얼로 하는 것, 보컬로는 윤형빈이 최적이지만 비주얼이 안 되기에 김성민, 이정진은 외모가 되니 베이스고, 김국진도 기타, 앉은 키가 크니까 이윤석, 그리고 나머지 윤형빈, 이경규는 하는 일 없는 퍼커션을...

 

"악기 셋팅하는 동안 성민이와 정진이가 무대 위를 얼쩡거리는 거야."

"그러고 나면 나머지 시간만 버티다 내려오면 되는 거지."

 

그러나 정작 음악에 들어가서는 김태원은 마침내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 보인다.

 

"내가 음악의 위대함을 보여주겠어."

 

그것은 마법이었다. 고작 코드 네 개였다. 드럼의 비트는 오로지 한 가지였다. 키보드의 멜로디는 도레미레 네 음계, 베이스마저 하나의 패턴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어우러지는 순가...

 

아, 이것이 바로 밴드음악이라는 것이다. 별 것 아닌 사소한 것들이 한 데 모이면 이런 소리가 나는구나. 채제민이 그랬지. 김태원은 천재과라고. 부활의 음악을 작곡할 때 베이스면 베이스, 드럼이면 드럼, 키보드면 키보드 모든 파트를 염두에 두고 곡을 쓰고 멤버들은 그 느낌을 충실시 살리는데 주력한다고. 물론 그럼에도 각자 자기 분야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들이니 그 의견이 반영되기는 할 것이다. 다만 그 정도로 전체적인 사운드를 구상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일 게다.

 

그대로였다. 모두가 웃어넘기던 단 네 음의 멜로디가, 어디서 들어본 듯한 그 단순한 멜로디가, 그만큼이나 단순한 베이스와 드럼 소리와 어우러지며 놀라운 사운드로 완성된다. 거기에 기타가 곁들여지고, 세컨드 기타가 올라가고, 그리고 보컬... 물론 완전한 합은 아직 무리였지만.

 

바로 김태원식 리얼버라이어티였다. 음악의 놀라움을 예능으로 승화시키는. 허술하고 어눌한 초짜들을 데리고 점차 사운드를 만들어가는 그 자체로써 예능으로 만들어가는. 정말 놀랍지 않은가? 밴드음악이란 이런 것이다, 또 실제 밴드하는 친구들을 보아 왔던 나로서도 그같은 과정들은 경이 그 자체였다. 저런 엉망인 사람들이, 저런 단순한 코드와 멜로디와 연주로 저런 소리를 내는구나. 굳이 억지로 웃기지 않아도 그 자체로 사람들은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에 놀라게 되고 감탄하게 된다.

 

여기에 예능인으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는 적절한 애드립까지. 철저히 음악인으로서 아직 한참 서툰 멤버들을 이끌고 사운드를 만들어가는 도중 그는 예능인으로서의 감각이 그대로 살아 있는 디스를 결코 잊지 않는다. 이경규를 놀리고, 김국진은 다그치고, 김성민을 질타하고, 멤버 전원에 독설을 날리며 밴드음악을 완성해가는 혼란은 물론 자칫 다큐로 빠질 수 있는 프로그램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물론 그런 때 가장 적절하게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이경규다. MC의 역할을 김태원에게 맡긴 만큼 이경규의 역할은 MC로서가 아닌 철저히 웃음을 주는 예능인으로서다. 느닷없이 기타를 들고 나와 퍼포먼스를 취할 때는 얼마나 놀라고 웃었던지.

 

한 마디로 어제의 남자의 자격은 김태원의, 김태원에 의한, 김태원을 위한 남자의 자격이었다. 리얼버라이어티 남자의 자격이라기보다는 밴드 남자의 자격이었고 그 밴드의 리더는 MC 이경규가 아닌 음악인 김태원이었다. 그리고 김태원은 철저히 음악인으로서의 정체성으로 음악의 즐거움과 음악의 놀라움으로 시청자를 끌어들이고 있었고. 음악이란 이런 것이라며.

 

이제껏 한 번도 없었던 유형의 음악 버라이어티였다. 무한도전에서 이런 것이 있었던가? 무한도전에서도 음악보다는 버라이어티가 우선이었다. 버라이어티인데 음악이 곁들여진 것 뿐이었다. 오빠밴드도 마찬가지였다. 오빠밴드에서도 유마에 유영석이 있었지만 오빠밴드를 이끌어가는 것은 신동엽과 탁재훈이었다. 더구나 신동엽이 웃음을 잃으면서 탁재훈이 분위기를 주도했다. 밴드가 아닌 버라이어티로서. 그래서 탁초딩이 그리 웃겼다고들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남자의 자격에서 그 중심은 어디까지나 음악인 김태원이었다. 음악인 김태원을 중심으로 실제 음악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주 낮은 허들로 그것을 이루어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면서.

 

아, 이 또한 김태원의 음악인으로서의, 그리고 예능인으로서의 놀라운 감각이라 할 것이다. 굳이 쉬운 코드와 멜로디와 연주로써 곡을 쓴 이유. 아마 보여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너무 높은 목표로 인해 시작도 하기 전에 좌절하기보다는, 바로 넘을 수 있을 것 같은 낮은 허들을 통해 성취해가는 기쁨을 또 보여주고자. 생초짜들이 불과 몇 달만의 - 그것도 연예인으로서 무척 바빴을 터인데도 하나하나 이루어가는 그 성취감을 보여주고자.

 

과연 오빠밴드에서는 그같은 성장하는 즐거움이 있었던가. 모두가 한다하는 음악인들이었고 이미 당시 완성되어 있었다. 더 완성을 추구할 생각도 없었다. 음악적인 정체와 그러나 늘어만 가는 예능. 오빠밴드가 추구한 밴드란 어디에 있기나 했던가. 반면 남자의 자격에서는 그렇게 아주 낮은 목표지만 이루며 어느새 그럴싸하게 갖춰가는 성취감이 있었다. 나도 당장 저렇게 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더욱 흥미로웠던 것이다. 물론 여러 달의 시간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그 엉망이던 밴드가 이렇게까지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구나.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마치 나도 그것을 함께 이룬 양 뿌듯하고. 겨우 맛만 보여주고 결말은 5월로 미뤘지만 그 작은 성장이 보는 즐거움이었다. 이경규 없이도 그렇게 음악인 김태원은 밴드 남자의 자격을 훌륭하게 연주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지난 남자의 자격을 보고서 비로소 김태원이 작곡가이며 작사가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안 사람이 많을 텐데, 그러나 김태원에게는 한 가지 직함이 더 있다. 바로 프로듀서다.  더 크로스의 1집도 김태원이 프로듀스했을 것이다. 부활의 앨범은 기본적으로 김태원이 프로듀스하며, 영화음악 두 개 했던 것도 감독은 김태원이었다. 아니 밴드의 리더 자체가 밴드의 음악과 음악 외적인 것을 잇는 통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이끌고 조율해야 하는 MC에 비해 떨어질 것이 없다. 아니 음악에 대해서만큼은 그가 MC 위다.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 눈여겨 봐 온 바, 김태원의 예능감은 진짜다. 그는 단지 토크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저질체력으로 몸개그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반응하고 상황을 주도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다. 어제의 경우처럼 김태원은 때로 남자의 자격에서 세 번째 MC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할마에, 마에스트로라는 이름 그대로.

 

정말 재미있었다. 아마 이렇게까지 재미있었던 음악버라이어티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야기가 있었다. 초짜들이 밴드를 만들어 조금씩 연습을 하고 실력을 쌓아가며 자기 음악을 하는 이야기가. 그리고 김태원이 심어둔 씨앗, 실력이 아닌 얼굴만 보고 뽑은 보컬이 박치라고 하는 반전까지.

 

과연 박치 김성민은 윤형빈으로 교체될 것인가. 아니면 박치임에도 불구하고 보컬자리를 유지할 것인가. 아무래도 후자가 더 재미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막장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한 전개였다. 더구나 딱 궁금해질만한  순간에 "To be Continued"가 떠버린 탓에. 도대체 5월까지 어떻게 기다리라고.

 

오히려 미션의 성격을 이해하고 김태원을 믿고 배려하여 뒤로 물러난 이경규나, 그런 신뢰에 보답하듯 음악이나 예능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채 합의점을 찾아낸 마에스트로 김태원, 그리고 적절히 그에 반응하며 예능인이 아닌 아마추어 음악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 멤버들, 그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란.

 

왜 이경규이고 왜 김태원인가. 어제의 남자의 자격은 그 충분한 답이 되리라. 김태원이기에 가능했던 이야기와 그를 뒤에서 지탱해준 이경규를 통해서. 그리고 그와 함께 한 다른 다섯 남자들과. 밴드라는 거다. 각자의 다른 개성으로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것은 꽤 소란스럽지만 유쾌한 음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