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아날로그의 힘...

까칠부 2010. 3. 2. 15:33

사실 방송에서 곡을 쓰는 장면이 이번 남자의 자격에서 처음 나온 게 아니었다. 그동안도 띄엄띄엄 곡을 쓰는 장면이 방송에 나오고 있었고, 그 가운데는 상당한 완성도의 곡이 보는 앞에서 만들어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어느 것도 이번과 같은 파장은 일으키지 못했다. 왜?

 

예전 불멸의 이순신을 보다가 가장 황당했던 장면이 바로 그것이었다.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일본군의 배로 뛰어올라가 구루지마 미치후사와 직접 칼을 마주대고 싸우는 장면이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그러나 드라마로 보았을 때는 성공적인 연출이었다. 원래 건담도 칼 들고 맞대고 싸우고, 제다이도 라이트세이버 휘두르며 몸으로 부딪혀 싸우는 것이다.

 

액션영화의 주인공이 굳이 방탄복을 입기보다 근육질의 알몸을 드러내는 이유와 같은 것이다. 총을 쏘기보다 칼을 들고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에 더 환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초적인 야성이다. 아무리 인간의 의식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달해도 인간을 감동시키는 것은 그같은 원초성이라는 것이다.

 

확실히 그렇다. 멋지게 생긴 주인공이 최첨단 방탄복을 입고서 멀리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격해 적을 죽이는 장면보다는, 알몸을 드러내고 땀을 튀겨가며 피를 흘려가며 주먹다짐을 하는 쪽이 더 짜릿한 법이다.왜냐면 총보다야 알몸 쪽이 훨씬 직접 와닿기 쉬우니까. 화약냄새보다야 땀과 피가 더욱 진하게 다가갈 수 있을 테니까.

 

말 그대로다. 최첨단 장비로 한 순간에 반주까지 만들어내는 모습이란 어쩐지 비현실적이다. 그것이 훨씬 이치에 맞고 현실에 부합한다 하더라도 간단한 조작으로도 훌륭한 소리를 쏟아내는 첨단장비라는 것은 어쩐지 직접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그러나 가슴까지 닿기에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통기타란 누구나 직접 느끼는 바다. 자기가 칠 줄은 몰라도 주위에서 누군가 치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다른 것 하나 없이 통기타 하나와 복잡한 악보 없이 노트를 찢어 휘갈긴 악보, 바로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고 바로 이해가 가능한 것들이다. 굳이 머리를 거치지 않고서도 보는 자체로 납득이 가고 마는 것들이다.

 

더구나 전혀 나와 다를 것 없는 한심한 수준들이라는 것이다. 기타고 드럼이고 베이스고 나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수준들이라는 것이다. 내가 해도 저보다는 더 낫겠다. 사람들마저 납득이 간다. 이제까지 방송에 나왔던 어느샌가 뚝딱 멋드러지게 끝내던 출연자들과는 달리 멤버 자체가 딱 납득이 가는 나나 다를 바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가 된다.

 

듣는 순간 누구나 그 비트를 이해해 버렸다. 아마 방안에서 따라 쳐 본 사람들 꽤 될 것이다. 건반이 있는 양 손가락으로 따라 미레도레를 눌러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베이스도, 기타도, 역시 머리로가 아닌 본능으로 이해해 버렸다. 이런 것이다. 그리고 경험했다. 그 단순한 것들이 어느샌가 훌륭한 음악으로 바뀌는 것을. 그리고 그 하잘 것 없어 보이던 나와 전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멤버들이 어느샌가 훌륭한 소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을. 여전히 연주는 서툴지만 그렇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소리들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소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같은 액션이더라도 홍콩영화의 와이어액션과 한국영화에서의 진흙탕 주먹신이 주는 느낌이 다른 이유일 것이다. 하늘을 휙휙 날아다니고 기기묘묘한 동작을 취하며 싸우고, 그보다는 몸과 몸이 부딪히고 주먹과 주먹이 피튀기며 오가는 그런 치열함이 훨씬 이해가 쉬운 법이다. 아니 이해하기 전에 느껴지는 법이다.

 

차라리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한 것이었다면. 듣는 순간 이것은 대단하다 느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면. 그렇다면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나와 분리하여 철저히 감상자로만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서툰 주먹질과 서툰 발길질이었기에 사람들은 어느새 그 안에서 자기를 보았다. 어설픈 몸짓과 손짓들에 어느새 자기를 그 안에 투영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어설픔들이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을 지켜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리 하잘 것 없던 것들이 그럴싸하고 멋드러진 무언가로 바뀌는 것을.

 

그것은 마법이었다. 마치 어제까지 나와 함께 뒹굴던 누군가가 하루아침에 영웅으로 뒤바뀌는 듯한 마법이며 충격이었다. 굳이 머리로서 이해할 것까지는 아니었기에 더욱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이해되었다. 직관으로, 아니면 원초적인 본능으로. 그리고 그것은 감동이 되었다.

 

머리로 이해해서가 아니었다. 머리로 이해했다면 이렇게까지 사람들의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해 버렸다. 직관으로, 본능으로 아니 이해하기보다는 느껴버렸다. 그 원초성에. 통기타 하나와 찢어진 노트에 적힌 간단한 코드와 계명, 그리고 누구나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은 간단한 멜로디와 단순한 구성이, 그리고 나와 전혀 다를 것 같지 않은 서툰 모습들이 어느새 사람들로 하여금 프로그램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지우도록 만든 것이다. 그 안에 함께 하는 듯이.

 

아날로그의 위대함일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어쩔 수 없이 인간이란 아날로그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굳이 역사에도 없는 적의 배로 뛰어올라 칼을 휘둘러야 했던 이유, 광속을 넘나드는 우주시대에 제다이가 라이트 세이버를 들고 날아다녀야 하는 이유, 건담이 굳이 빔세이버를 들고서 히트호크를 든 자쿠와 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이유, 아니 자이언트로보가 건물을 부수며 몸과 몸을 부딪히는 이유,

 

결국에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같은 아날로그라는 것이다. 최첨단 장비에서 쏟아져 나오는 세련되고 정교한 음악보다 통기타에서 만들어지는, 그리고 서툰 손짓을 통해 만들어져가는 허술하고 투박한 보다 단순한 음악이라는 것이다. 머리로서가 아닌 가슴으로,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가슴으로 느껴버리는.

 

이제까지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음악을 다루고, 음악이 만들어지는 장면을 보여주었어도 지난주 남자의 자격만 못했던 이유가 그것이다. 머리로서가 아니었다. 머리로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그럴 것조차 없었다. 그런 단순함이. 그런 원초성이. 그리고 이제는 잊혀져 버린 그런 그리움들이.

 

로망이었다. 어려서 음악을 만든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기타 하나 옆에 끼고, 혹은 피아노 옆에 앉아서, 줄담배를 피며, 한쪽 구석에는 술명이 굴러다니고, 알 수도 없는 최첨단 장비보다는 그같은 인간의 본연의 감수성과 영감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래서 김태원이 술을 끊은 것이 그리 아쉬울 수가 없는데...

 

인간이란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가슴으로 느껴버리는 존재라.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전에 가슴이 먼저 느껴버리는 존재라. 가슴이 먼저 느껴버리고 그 다음에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한다. 가슴이 먼저 받아들였을 때 그 감동은 더 커지고 그 의미도 커진다.

 

아날로그의 위대함이여.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인간은 아날로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우주를 날아다니고,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볼 법한 신기한 세계가 열렸어도 인간은 결국 아날로그로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간 자체가 아날로그이니. 인간 자체가 아날로그일 수밖에 없으니.

 

벌써 세 번째 보고 있다. 보고 또 보아도 감동이다. 곡을 만들고, 그것을 들려주고, 그 생초짜들로 하여금 그것을 연주케 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모습들이. 그 서툴고 어색한 연주들이, 그 단순한 멜로디와 비트가 어느샌가 훌륭한 사운드로 만들어져가는 것이. 인간이란 바로 이런 것에 감동할 수밖에 없는 법이라. 아날로그의 위대함이며 가장 아날로그틱한 남자의 자격의 위대함일 것이다.

 

다시 한 번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음악의 위대함을 가르쳐 준,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가슴으로 느껴버리게 만든 김태원의 배려에 감사하며. 그것은 출연자를 위한 배려만이 아닌 보는 모두를 위한 할마에의 배려이며 가르침이었다. 감동이었다. 다시 봐도 감동이었다. 최고였다. 아날로그 만세!

 

 

 

그러고 보면 이 블로그야 말로 아날로그 자체다. 다른 것 없이 그야말로 하이텔 시절 그대로 오로지 텍스트로만 이루어지고 있으니. 장식도 단촐하다. 아무것 없이 그야말로 텍스트만 존재한다. 잠시 다른 생각도 해 봤지만 역시 그렇게 운영하려 한다. 나도 아날로그다. 아날로그 만세!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