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땀을 겉만 핥고 지나가다...

까칠부 2010. 2. 22. 16:21

물론 몸으로 하는 일이 힘들다. 몸은 고단하고 마음도 지치고, 진짜 일 마칠 무렵 되면 몸이 나인지 내가 몸인지 거의 비몽사몽이 되기도 한다. 그냥 습관으로 일하는 거다. 일을 한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몸이 움직이니까. 영하 10도가 넘는 추위에서도 그렇게 건물 허물고 해봤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몸으로 하는 것만이 노동인가? 그동안 편하게 일해 온 것을 느꼈다고? 그러나 막노동 말고도 그동안 거쳐온 일들 가운데 쉬운 일이란 하나도 없더라는 것이다. 몸이 힘든 것도 힘든 거고 마음이 힘든 것도 힘든 거다. 과연 개그맨이란, 예능인이란, 가수란, 배우란 그리 쉬운 일일까?

 

한 번 일반인 데려다 시켜봤으면 좋겠다. 예능인이란 어떤가. 배우란 어떤가. 음악인이란 어떤가. 아니 아예 멤버 가운데 직업을 바꿔 해보면 어떨까? 아니 밴드는 이번에 하기로 되어 있고, 배우 둘이 예능에 출연중이니까 한 번 배우에 도전해보라. 혹은 개그콘서트에 도전해 보던가.

 

며칠째 밤새며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프로그래머는 어떨까. 명절인데도 건물에 난방이 끊겨 온풍기의 온기에 몸을 맡기고 막바지작업을 하고 있는 작은 게임회사의 프로그래머란? 투자를 받기 위해 거의 상거지가 되어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사장은? 하긴 게임회사만일까? 어디는 안 그런가?

 

너무 피상적인 접근이었다. 아마 내가 어제 보면서 느꼈던 위화감도 그것이었을 것이다. 힘드니까 고귀하다. 힘들기 때문이 훌륭하다. 그래서 이경규를 굳이 아파트 공사현장에 보내고, 이윤석을 비탈면녹화사업 현장에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인가.

 

힘들어서가 아니다. 전에도 말했듯 그렇게 한 번 막노동 뛰고 나면 나중에 그 주위를 다닐 때 그렇게 뿌듯하다. 내가 다 지은 것도 아닌데 저 건물이 내가 지은 것 같고, 저 도로를 내가 닦은 것 같고, 저 다리를 내가 놓은 것 같고. 코엑스 별관 공사장에도 내가 있었다. 거기 지나가면서도 항상 자랑했다. 내가 지었다.

 

오히려 자식 둘을 대학까지 가르쳤다는 아주머니의 말에 그런 진정이 담겨 있지 않은가. 자식 가르치려, 가족 부양하려, 몸에 파스를 붙이고 돌아가면 끙끙 앓으면서도 내일이면 또 일하러 나올 수 있는 것은. 그리고 올라가는 건물과 완성되는 공사에 알 수 없는 뿌듯함이 차오르고.

 

더 많이 해서도 아니다. 더 힘들어서도 아니다. 아마 이경규 역시 프로 하나를 마치고 나면 그 성취감이 대단할 것이다. 그를 위해 그동안에는 그리 마음고생도 하고 몸고생도 하는 것일 테고. 영화 복면달호를 만들 때는 경제적으로도 힘든 적이 많았었다고 했다. 무릎팍 도사에 나와 이경규가 한 말을 기억한다.

 

"예능은 직업이고 영화는 꿈이다."

 

그 말이야 말로 정답이지 않을까? 다 지어진 세트를 보고 뿌듯해 하는 김국진, 겨우 순대 하나 채워놓고 자랑스러워하는 김태원, 일 잘한다는 칭찬에 어느새 흐뭇해지는 이정진, 조금씩 일하는 방법을 알아가며 더 힘을 내고 열심이던 김성민과 이경규,

 

일 자체가 꿈이기도 하고, 가족이 꿈이기도 하고, 아니면 다른 꿈이 있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힘든 삶을 버틴다. 비탈면 녹화사업 공사장에서 아내가 아직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더라는 한 남자처럼,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래서 사람들은 그리 땀을 흘리며 일을 하는 것이다. 단지 잠시 들러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하긴 그같은 거창한 주제를 담아내기엔 남자의 자격은 예능이었다. 차라리 장기프로젝트로 했으면 모를까 시간도 너무 짧았다. 아예 공사장 하나에 달라붙어서 점차 건물이 올라가는 모습을 진정을 담아 지켜보거나, 아니면 한 가지 일에... 아, 자격증 편이 있었구나. 차라리 그쪽이 더 낫지 않은가.

 

뭔가 어설펐다. 아마 남자의 자격이 함정에 빠진 모양이다. 설마 감독도 젊어서 막노동 조금 해 보았을 텐데. 그동안 감동 어쩌고 했더니 진짜 감동코드로 가려고. 그것도 그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기보다는 일이라고는 해 본 적 없는 주변인의 피상적인 감상으로. 내가 그리 어제 방송분에 불편했던 이유일 것이다. 진정이 아닌 뻔한 감동을 이끌어내려는 얄팍한 의도가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졌기에.

 

아니 어쩌면 거기에는 노동에 대한 어떤 편견이 자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몸이 힘들어야만 노동이고, 몸이 고단하기에 가치가 있고 대단한 것이다. 노동이란. 단지 표면만을 훑고 그같은 스테레오적인 결론에 만족하고 마는 것은 그만큼 노동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표면적이어서일수도 있겠다. 아니었을까?

 

물론 모르겠다. 나와는 달리 진심으로 어제 방송분에 감동을 느낀 사람이 있는지도. 감동이 아닌 공감을 느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어차피 나란 한 개인이고 방송은 불특정 다수의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아닌 건 아닌 거다.

 

어제의 그건 분명 아니었다. 그냥 겉만 핥고 지나간 것이었다. 겉의 땀만 핥고는 그게 전부라. 그냥 힘드니까 고귀하다. 힘드니까 소중하다. PD의 한계인가, 방송의 한계인가, 아니면 내가 생각한대로 다른 뜻이 있어서인가. 땀의 의미란 그런 것이 아닐 텐데. 아쉬웠다. 남자의 자격이기에 더욱.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