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밴드를 보여주다...

까칠부 2010. 2. 28. 18:43

원래 밴드음악이라는 게 저런 거다. 대부분의 밴드는 겨우 코드나 잡을 줄 알게 된 꼬맹이들이 어디 차고나 창고에 모여 뚱땅거리며 시작되었다. 역사적인 유명한 밴드들도 그렇게 시작했다. 악보를 볼 줄 아나, 악보를 그릴 줄 아나, 연주라고 해봐야 기본적인 것들 뿐. 그러나 그럼에도 서로 모여서 이러쿵저러쿵 손발을 맞추다 보니 코드가 나오고 멜로디가 나오고 리프가 나오고,

 

그래서 락이란 원초적이라 할 정도로 단순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오로지 음악이 좋아서 열정 하나로 시작된 음악이기에 원초적이랄 정도로 단순하고 그래서 가슴을 울리는 힘이 있다. 오늘 할마에 김태원이 작곡한 "사랑해서 사랑해서"처럼. 코드 세 개. 별달리 복잡한 코드도 없고 멜로디도 없고 테크닉도 없고 그냥저냥한 사람들이 연주하기 좋은. 바로 락은 거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락은 테크닉이 아니다. 대단한 어떤 음악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즐기는 거다. 현재의 자신을 즐기는 거다. 거기에서 락은 출발했고 단지 시대가 그러한 순수에 시대성을 부여한 것이었다. 저항이라든지 현실참여라든지 자유라든지, 그러나 결국은 순수라는 거다. 그저 기타를 치고 드럼을 두드리고 베이스를 퉁기고 싶다는 그 욕망. 시작은 그러한 60년대 청년밴드문화에서 시작되었고 리버풀의 어느 동네꼬맹이 밴드에 의해 완성되었다. 그것이 또 밴드음악이다.

 

하고 싶다. 하고 싶다. 그 하나. 하고 싶다는 그 하나. 그렇게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연주하고 함께 음악을 만들고, 김태원이 또 그러지? 그러면서 그 안에다 자기만의 창의적인 무언가를 집어넣으라. 자기 음악이니까. 밴드음악이니까. 그러니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또 서로 함께 손발을 맞춰온 동료이기에 다른 멤버의 그같은 애드립에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는 것이고. 무대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그러한 개성들마저 포용해간다는 뜻이다. 아직 남자의 자격 밴드는 갈 길이 멀었지만.

 

아무튼 정말 재미있었다. 밴드란 또 남자의 로망이기도 한 터라. 아니 여자들도 마찬가지일까? 마이크를 쥐고 샤우팅을 내지르는 보컬에, 멋드러지게 애드립을 해 보이는 기타리스트에 - 기타리스트야 말로 밴드의 꽃이지. 밴드의 사운드를 떠받치는 드럼과 드럼과 더불어 밴드의 사운드를 가이드하는 베이스, 멜로디악기인 키보드, 그 모든 것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사운드란. 화려한 무대의 조명과 열광적인 관객과 그리고 미친 듯 자기마저 잃고 함께 연주하는 그 사운드란.

 

그러나 이걸 또 5월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다. 겨우 맛만 보여주고. 이걸 도대체 어떻게 참으라고. 5월이 오기나 오나? 볼 수는 있는 거야?

 

오빠밴드가 실패한 부분이 여기에 있었다. 밴드란 함께 만들어가는 사운드다. 서툴러도 서로가 서로에게 맞춰가며 함께 만들어가는 사운드다. 실수도 하고 문제도 일으키며 때로 다툼도 일어나면서 밴드 안에서 만들어가는 사운드가 밴드음악이다. 차라리 그런 서툰 모습들을 더 보여주었어야 했을 텐데. 서툴더라도 열정이 있는 모습들을. 쑥쓰러워하고 어려워 하면서도 하나하나 알아가고 완성해가는 모습들을. 그러나... 너무 폼을 잡았고 너무 예능을 하려 했었다. 차마 더 보아주기 힘들 정도로.

 

놀란 것은 김태원의 작곡능력. 어려운 곡을 어렵게 쓰기란 쉬워도 쉬운 곡을 쉽게 쓰기란 어렵다. 단순한 코드와 단순한 멜로디, 연주에 있어서도 최대한 연주자의 수준을 고려해 단순하게 편성했다. 미레미레의 단순을 넘어선 키보드와 단지 한 가지 비트만이 존재하는 드럼, 기타도 베이스도 어느 것 하나 놀라운 연주력이나 그런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락이 갖는 원초적인 그대로. 그러나 더 대단하기보다는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음악이란 곡예가 아니라 즐기는 것이니까. 그러면서도 하나가 되었을 때는 더욱 아름답게. 그런데 그걸 8분만에 쓰고 한 달 동안 편곡했다는 말이지?

 

하긴 놀랄 것도 없다. 이미 작년 "안녕하세요 선배님"에서 김태원은 자신의 작곡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바 있다. 학생밴드를 만들면서 아이들 오디션하는 사이 멜로디를 떠올리고는 바로 악보로 정리, 멤버들과 합을 맞춰보고 있었다. 차이라면 그나마 악기를 만져보았던 당시의 고등학생들과는 달리 이번에는 악기라고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성인남자들이라는 것. 그렇기에 더욱 돋보인 것이지만.

 

그동안의 국민할매라는 것이 얼마나 허튼 이미지였는가를. 부활이 어떻게 25년을 이어져 올 수 있었는가를. 비로소 음악인 김태원의 진면목을 본 것 같다. 그리고 생초짜들로 이루어진 남자의 자격을 통해서 밴드음악이란 어떤 것인가를 볼 수 있었고. 그립고 행복했다. 나 또한 밴드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기에 반갑고 즐거웠다. 이래서 나는 남자의 자격을 보는 것이다. 5월을 기다리기 힘들 것 같다. 기다림이 벌써부터 버겁다.

 

 

 

그나저나 확실히 나 역시 아날로그 세대라 첨단 장비로 만들어내는 세련된 사운드보다는 저렇게 통기타 하나로 만들어내는 음악이 더 끌린다. 통기타 하나로 코드 잡아가면서 멜로디 만들고 파트의 연주 만들고 사운드를 만들고 가사를 쓰고... 아무렇게나 찢은 노트에 대충 끄적인 코드와 멜로디가 어쩌면 그리 멋지던지. 로망이라는 것이다. 음악이란. 음악이란 그런 꿈이었다. 멋졌다. 할마에 김태원. 진정 할마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