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단지 어른인 척 할 뿐이다...

까칠부 2010. 3. 7. 21:35

아마 김태원도 말한 적 있을 것이다.

 

"진짜 어른이 되는 사람은 없어요. 어른인 척 하는 거지."

 

어른이란 무얼까? 아이란? 그 경계는 어디일까?

 

남자의 자격을 보면서 부쩍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어른이 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그러나 채 그 의미를 알기도 전에 남자들은 어른이 될 것을 강요받는다. 점잖아야 하고, 진중해야 하고, 침착해야 하고, 근엄해야 하고... 알기도 전이니 그것이 진심일 리 없다. 대본도 외지 못하고 무대에 오른 양 결국 주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래야 할까, 저래야 할까...

 

그러나 인간이란 본질은 원래 아이와 어른의 구분이 없는 법이다. 아문젠은 뭣한다고 그 추운 남극을 가로질렀을까? 칭기즈칸은 또 뭣한다고 그 먼 지평선 너머까지 원정하고 했던 것일까? 산이 있어 오른다는 등산가나, 바다가 있어 뛰어드는 다이버나, 음악이 있으니 기타를 잡고 마이크를 드는 음악인이나...

 

다 늙은 나이에도 꿈을 쫓는 사람들이 있다. 다 늙은 나이에도 잃어버린 꿈을 쫓고자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늙은 아이들도 있다.

 

연예인이란 꿈이다. 아름답고 화려하고 멋진, 내가 가지지 못한 꿈의 결정이다. 스크린을 통해, 무대를 통해, 브라운관을 통해, 우리는 꿈을 보고, 꿈을 꾸고, 꿈을 동경한다. 어쩌면 어린 아이돌이란 이제 인생을 되돌아 볼 나이에 있어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일지도 모른다. 로리타 컴플렉스에 대한 그런 정의가 있다. 성인남성이 어린 여성을 좋아하는 것은 잃어버린 시간들에 대한 동경이며 추억이라고.

 

아이란 꿈을 쫓는 존재다. 인간은 누구나 아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른이기를 요구받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차마 그같은 꿈을 드러내지 못했다. 아니 꿈을 꾸는 자체를 스스로 용납하지 못했다. 아이는 어른이어야 했고 어른인 채 연기를 하며 살아가야 했다.

 

그러나 잠시 돌이켜 보면 결국 모두는 아이라는 것이다. 꿈이 있고 동경이 있고 순수한 호기심이 있는. 가슴 한 구석에 열정을 간직한.

 

남자의 자격이 그동안 일관되게 추구해 온 방향이었다. 항상 미션이 시작되면 김성민이 하는 말,

 

"꼭 한 번 해보고 싶었어!"

 

그것은 오래도록 억눌려 있던 아이로서의 자신을 해방시키는 주문이었다. 그렇게 물을 먹으면서도 웨이크보드에 도전하고, 아이돌그룹의 춤을 따라해 보기도 하고, 농촌에서 수확을 하고 고기도 잡아보고, 신입사원이 되었다가, 신입생이 되었다가, 그리고 아지트를 만든다는 생각에 음흉한 웃음도 지어보이고...

 

어떤 사람들은 남자들만의 어떤 강인함이나 당당함을 그 안에서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안에 있던 것은 단지 어른이 되도록 강요받았을 뿐인 아이들이었다. 한꺼풀 벗기고 나면 여전히 천진하고 순수한, 그래서 모든 것이 신기하고 즐겁기만 한 아이들. 단지 어른이 되도록 강요받느라 어른이라는 한 꺼풀 가면을 쓰고 어른을 연기하고 있었을 뿐.

 

아이돌이란 그래서 상징적이다. 아이돌이란 말했듯 꿈이다. 동경이며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시간 속에 잃어버린 무엇이기도 하다. 아이돌을 쫓는다는 것은. 그네들의 젊음과 에너지와 가능성과...

 

사실 부럽다. 때로 질투가 나기도 한다. 나도 저 나이였다면. 내가 저 나이 때였다면.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동경하고 그들을 꿈꾼다. 그들과 함께 한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꿈이다. 동경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한 사랑이기도 하다. 아주 원초적인, 인간에 대한 애정이다.

 

그러면서 아이돌이란 현재이면서 과거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소녀시대 유리를 보면서 채시라를 떠올리던 이경규처럼 20세기 소년에서와 같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 두고 온 꿈이고 기억이기도 한 것이다. 어른이 되어 버린 남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어른이 되어 버린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아이의 시간으로 돌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어른과 아이의 순수가 만나는 지점이랄까?

 

처음 어떻게 그러느냐고 역시나 고루한 꼰대스런 소리를 늘어놓던 이윤석이 어느새 콘서트장에서 누구보다 열광적인 모습이 되어가는 것은 그래서 얼마나 상징적인가. 어른인 척 하던 이윤석이 그렇게 콘서트장에서 어른으로서의 가면을 벗고 본연의 순수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유리의 매력 앞에 어느새 친친 두르고 있던 가식의 가면을 벗고 순수하게 반응하고 환호하고 열광하고...

 

늦바람 무서운 줄 모른다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베이비복스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원더걸스도 소녀시대도 다 넘어섰건만 결국에 카라에 걸리고 말았다. 나는 김성민과는 다른 경우다. 카라를 알았고 한승연과 박규리를 알았다. 박규리가 내게는 더 먼저 다가왔었다. 그리고 박규리 관련해서 동영상 찾다가 구하라를 보았다. 강지영 다음으로 늦게 안 것이 구하라였는데 이게...

 

처음에는 외모였고 그 다음에는 인간적인 매력이었다. 아니 이유란 필요없는지 모른다. 좋아하는데는 이유가 있어도 좋아하고 나면 이유가 없다. 좋아한다는 것이다.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순수한 흥분이랄까? 그래서 요즘 또 무척 즐겁다. 구하라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서 아이돌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확실히 깨닫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더 깊이 다가왔다. 처음에는 어색해 하다가 어느순간부터 야광봉을 힘주어 흔들고, 소리도 지르고 열광도 하는 아저씨들의 모습에서 수줍어하다가 어느 순간 나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이 빠져드는 모습을 본다. 그렇다. 그들은 나였다.

 

항상 느끼던 것이었다. 저들은 나다. 내가 저들이다. 내가 남자의 자격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것이야 말로 나의 이야기이니. 내 이야기에 내가 빠져들지 않고 누가 빠져들까.

 

새삼 카라를 듣보시절부터 관심을 가지고 좋아했다는 윤형빈이 몇 배로 좋아졌다. 카라도 카라의 히트곡도 모르면서 구하라만 알고 좋아한다는 김성민도 또 몇 배로 좋아졌다. 그 봉창까지도. 이것이 바로 동질감이라는 것이겠지. 같은 비밀을 공유한 아이들만의 은밀한 웃음처럼.

 

여전히 수줍어하고 여전히 창피해하지만 그러나 어느샌가 자신의 욕망에 솔직할 수 있게 된 어른이 되어 버린 아이들만의 비밀스런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아무튼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락덕으로서 어느새 아이돌에 빠져들게 되었다는 소시당의 아마 시삽이던가? 어린시절 부활의 팬이었단다. 그 시절 부활은 그들의 아이돌이었다. 그리고 지금 당시의 아이돌과 더불어 지금의 아이돌을 보려 찾아간다. 아마 그것은 나와 닮아 있지 않을까.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카라의 모습은 끝까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 소녀시대만 나와서 조금 - 솔직히 상당히 아쉬웠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좋았던 점. 소녀시대의 콘서트를 찾아갔어도 정작 소녀시대는 보이지 않더라는 것. 이것은 소녀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녀시대에 열광하는 아저씨들의 이야기다. 소녀시대는 아이돌이어야지 바로 옆에 있는 소녀여서는 안 된다. 그같은 기믹을 훌륭히 지켜준 남자의 자격에 감사하며...

 

이래서 나는 남자의 자격을 본다.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그 이유, 남자의 자격이니까.

 

 

덧, 남자의 자격의 저변이 의외로 넓다. 전혀 아닌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우연히 남자의 자격 이야기가 나오니 한도 끝도 없다. 마찬가지로 나처럼 1회부터 챙겨본 사람이었다. 내 또래였다. 그런 프로그램이라. 알게모르게 남자의 자격은 이렇게나 침투해 있다.

 

그러니 이명박 같은 살 떨리는 멘트는 웬만하면 빼주기를. 시절도 수상한데 살떨린다. 남자의 자격을 잃고 싶지 않다. 김성민도. 그 진정은 알았다. 모든 의심을 거둔다. 몸 사리기를. 시절이 무섭다.

 

덧, 이미 이에 관해 한 번 쓴 적이 있기에 어떻게 정리할까 조금 고민이었다. 제낄까 했다가 또 기왕에 하던 것 빼먹기도 뭣하고. 다른 방향에서 한 번 접근해 봤다. 괜찮았을까? 나름 만족스럽다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