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밤의 서정곡 - 블랙홀
까맣게 흐르는 깊은 이밤에 나홀로 외로이 잠못 이루네
바람 별빛만이 나의 창가로 찾아 드네
밤안개 흐르는 고요한 밤에 나홀로 외로이 잠못 이루네
흐르는 눈물에 별빛 담기어 반짝이네
깊어 가는 하늘아래 잠든 세상 외면하여도
지쳐 버린 눈망울엔 별빛마저 사라지네
깊어 가는 하늘아래 잠든 세상 외면하여도
지쳐 버린 눈망울엔 별빛마저 사라지네
어둠에 흐려진 눈동자 속에 그리움 가득히 넘쳐흐르네
어두운 하늘만 나의 눈가에 사라지네
가사 출처 : Daum뮤직
당시 내 공부방은 다락방이었다.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낮았던 바닥이 언제 꺼질 지 몰라 걱정이던 좁은 다락방. 그러나 그곳은 나만의 공간이었다. 한겨울 난방이 되지 않아 덜덜 떨면서도 차가운 바닥을 얇은 요 하나로 견디며 내 밤을 지새웠던.
물론 공부를 하고자 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그리 성실한 학생이 아니었다. 많은 것들을 했었다. 그림도 그리고, 어설픈 글도 쓰고, 이런저런 손장난들도 하고, 주로 공상에 빠져들었다. 밤은 그런 내게 무척 소중한 시간이었다. 모든 것이 잠들어 침묵에 빠져든 밤의 어둠은 세상에 오로지 나만 홀로 깨어있게 했었다. 마치 이 세상이 모두 나의 것인 양. 그리고 그 시간 속에 라디오는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였다.
지금도 기억한다. 겨우 반도 안 열리던 작은 창 너머로 보이던 어두운 공터가. 희뿌옇게 내리는 가로등 사이로 무슨 일로 쌓여 있던 목재들이 보였었다. 지나가는 이 없이 한적한 공터길로는 고양이 한 마리만이 외로이 울고 있었다. 밤처럼 새까맣던 무척이나 큰 고양이 녀석이.
그것은 가슴을 헤집는 칼이었다. 가슴 저 깊은 곳을 후비고 지나가는 비수였다. 왈칵. 왜 나오는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려 하고 있었다.
"까맣게 흐르는 깊은 이 밤에..."
누구의 목소리인가는 몰랐다. 마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신경질적으로 날카롭게 헤집으며 들려오는 기타소리와 비성이 섞인 흐느낌과도 같던 고음의 목소리는 그렇게 한 순간 내 영혼을 훑고 지나갔다. 누구의 노래인지도 어떤 노래인지도 모르고 나는 무심코 그 부분을 따라부르고 있었다.
노래의 제목을 알게 된 것은 조금 지나서였다. 블랙홀이라고 했다. 주상균이라고 했다. 아직은 이원재도 정병희도 김응윤도 합류하기 전의 블랙홀이었다고. 주상균의 기타이고 그의 목소리였다고. 물론 그에 대해 깊이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그 노래의 의미도 알 수 있었다.
광주에 대한 노래였다고 했다. 당시의 많은 대학생들처럼 광주의 진실에 대해 알게 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무력감을 노래한 것이라고. 내가 느꼈던 서러움은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깊은 밤 홀로 잠에서 깨어 그러나 사실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소외감. 고독감.
그것은 어쩌면 "서시"를 노래했던 윤동주의 순수한 감성과도 닿아 있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랬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모두가 잠든 밤에 홀로 깨어 있으되 잠들지 못하고, 홀로 깨어 있어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여전히 잠들어 있는 세상에 느끼는 분노와 절망과 안타까움... 무엇보다 자괴감.
시대를 고민한다는 것은 젊음의 특권일 것이다. 재는 것도 많고 따지는 것도 많은 기성세대로서는 불가능한 젊음이기에 가능한 젊음만의 권리일 것이다. 시대를 고민하고 시대와 갈등하고 그 시대와 부딪히고 그리고 깨지고 부서지고... 순수하기 때문이다. 그런 순수가 젊음으로 하여금 고민하게 만들고, 갈등하게 만들고, 끝내 분노하고 서러워하게 만들고,
그런 시대였다. 그야말로 별빛조차 없이 깜깜하던 그런 시대였다. 과연 새벽은 오려는가. 과연 새벽이 이 어둠을 몰아내는 날이 오려는가. 밤이 깊어 마음이 외롭고, 밤이 깊어 마음이 시리고, 그런 때 젊음이 느껴야 했던 좌절과 분노란 어떤 것이었을까.
거리를 가득 메운 청년들이 있었다. 최루탄에 눈물콧물 쏟으면서, 전경에 머리가 깨지고 팔이 꺾이면서, 절망 속에 도망칠 곳을 찾아 골목을 누비면서도 꺾이지 않았던 젊음들이 있었다. 겁이 나 도망치면서도 내일이면 다시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열정들이 있었다. 도무지 밝아올 줄 모르는 새벽을 억지로 끄집어내려 자신을 내던진 이들이었다. 시대가 지운 빚을 거부할 수 없었던 이들이었다. 스스로에게 지운 짐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의 시대였다. 그런 시대를 살던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이야기였다. 그런 시대의 아픔이었다. 너무나 순수해서 순결해서 스스로 상처입고 말았던, 때로 스스로 상처입히고 말았던 그런 아픔의 이야기였다. 시대를 아파하고 그런 시대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신을 부끄러워해야만 했던 그런 순수들의 이야기였다. 열정과 젊음과, 그런 자신들의 노래였다.
바람이 무척 찼었다. 아마 늦가을이었던 모양이다. 창밖 나무는 잎사귀 하나 없이 앙상하게 헐벗고 있었다. 고양이 소리는 그리도 컸고, 좁은 나무계단 아래 안방에서는 부모님이 하루의 곤한 몸을 누이고 코를 골며 주무시고 계셨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도 그래서 나 또한 그것이 서러워 눈물이 맺히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나는 그래서 이 노래만 들으면 울컥 치미는 무언가를 느낀다. 이렇게 자랐는데. 이렇게나 커버렸는데. 그러나 네온사인 불빛은 별빛마저 가리워 버리고, 불빛에 드리워진 그늘은 밤보다도 더 어둡다. 그조차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나는 이미 너무 자라고 너무 커 버렸다. 커버리고 늙어버렸다.
시간은 흐르고 시간과 함께 나도 흐르고, 시간은 흐르고 어느새 시간의 흐름과 떨어져 나 홀로 남아 있고, 밤은 깊고 나는 홀로 앉아 밤을 지새고 있다. 달라진 것이라면 라디오 대신 하얀 인터넷 화면이랄까. 내 고양이는 잠들어 있다. 잠은 오지 않고 그렇게 상념은 깊어간다. 슬픔도. 서러움도. 분노도. 그 퇴색한 감정들도.
내가 꼽는 한국 락사상의 명곡. 간명하게 전해지는 그 울림이, 그 서러운 치열함이 가만히 듣고 있지 못하게 만드는 노래다. 그러고 보니 작년이 블랙홀 데뷔 20주년이었다. 1989년 부활이 해체되고 부활의 매니저 백강기가 언더그라운드에서 끌어올려 앨범을 내고 데뷔시켰으니. 요즘식으로 하면 부활의 동생그룹이랄까?
블랙홀 1집 Miracle의 타이틀곡으로 수록되었고, 2집 Sirvive에 리메이크되었으며 지금도 콘서트며 라이브실황이며 블랙홀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이름이 되어 버렸다. 음악적으로야 지금이 더 성숙했어도 그 무엇과도 대신할 수 없는 그 시절의 순수가 그곳에 있기에. 부끄러워했고, 부끄러워해야만 했었던 그같은 뜨거움이, 그 고민들이 그곳에 있었기에. 망각마저 잊어버린 그것들이.
20주년 공연에 가지 못한 미안함을 전하며. 마음대로 하기에는 이미 나이를 너무 먹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리 음악을 들으며 서러워하는 것은 시간 만큼이나 뻔뻔함도 쌓였다는 뜻일 테고. 밤은 여전히 깊고, 졸리워 무거운 눈꺼풀은 자꾸 감기고, 별빛은... 바람이 무척 차다. 봄은 저 먼 앞에 다가온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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