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악들

들국화 - 그것만이 내 세상

까칠부 2010. 2. 22.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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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이 내세상 - 들국화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나보고 그대는 얘기하지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봐
혼자 이렇게 먼 길을 떠났나봐
하지만 후횐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하지만 후횐 없어 찾아 헤맨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그것만이 내 세상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나 또한 너에게 얘기하지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봐
혼자 그렇게 그 길에 남았나봐
하지만 후횐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하지만 후횐 없어 가꿔왔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그것만이 내 세상

가사 출처 : Daum뮤직

 

 

조금 성급할 수 있지만 나의 경우 한국 현대사를 들국화 이전과 이후로 나누곤 한다. 그만큼 들국화의 등장은 한국 현대사에서 매우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70년대까지 한국 대중음악은 비겁하거나 아니면 비장했다. 불의한 시대였기에 특히 청년들의 문화란 그런 시대에 저항하는 비장함과 더불어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의 비겁함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한 마디로 시대에 짓눌려 있었던 것이었다. 시대를 의식할 수 없었기에 청년들의 문화는 시대에 짓눌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저항하거나 순응하거나 아니면 외면하거나. 저항하지도 그렇다고 순응할정도로 타락할수도 없었던 젊음은 그래서 외면을 택했다. 꿈결처럼 아름답고 환상처럼 달콤한 피안의 세계를.

 

그래서 70년대 청년음악을 들으면 또 그렇게 아름답다. 특히 이장희의 음악은 지금도 들으면 마치 마약이라도 한 듯한 나른한 권태와 퇴폐가 느껴진다. 어쩌면 그들의 나약한 도피는 또한 소심한 저항이었는지 모르겠다. 산울림은 어쩌면 그러한 극단에 있는지도 몰랐다. 지독히도 자폐적이고 이기적인 그들의 음악세계는 오히려 현실과 철저히 단절함으로써 체념을 넘어 완고함으로까지 여겨졌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서며 경제성장과 더불어 성숙한 청년의 자아는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시대는 더욱 들끓었고 청년들은 그와 함께 더욱 혼란스러워했다. 비장하기에도 또 비겁하기에도 시대는 너무 뜨거웠고 청년들도 너무 뜨거웠다. 그런 때 그들이 나타났다.

 

들국화.

 

그들의 등장은 말 그대로 혁명이었다. 충격이었다.

 

그들은 당당히 외쳤다.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고. 나의 과거따위는 어째도 좋다고. 전혀 아름답지 않은, 아름답기보다는 절규와도 같이 거친 쇳소리로 거침없이 외치고 나섰다.. 나는 나라고. 나는 나일 뿐이라고.

 

그것은 마치 부처가 처음 세상에 나와 했다는 말과도 닮아 있었다.

 

"천상천하유아독존"

"단지 나는 나일 뿐."

 

그것은 당시의 모두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비장해질 수도 비겁해질 수도 없었던 많은 이들이. 비장해지기에는 비겁하고 비겁해지기에는 용감했던 더 많은 젊은이들이.

 

아니 그것은 들국화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70년대를 걸쳐 80년대를 살았던 그들의 젊음이 시대 속에 체화한 이야기들이었다. 시대를 떠돌던 동시대의 젊음들과 공유하던 바로 그들의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그들의 외침은 더욱 강렬하게 시대속에 퍼져나갔는지도 몰랐다.

 

말 그대로 새로운 시대를 여는 포효였다. 더 솔직하고 더 당당하게, 그렇게 더 이상 시대에, 세상에 짓눌리지 않는 젊음이 세상을 열어가기 시작했다. 반독재로부터 시작된 민주화는 사회적 민주화로 확장되었고, 전통과 인습에 속박되었던 개인들은 더욱 자유롭고 이기적인 개인으로 거듭났다. 더 자유롭고 더 이기적인, 그래서 더 다양하고 역동적이던 시대. 70년대와 구별되는, 이전의 다른 시대와도 구별되는,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세대의 시작을 열리는 고호성이었다.

 

80년대 중후반 이전과는 전혀 다른 한국 대중음악의 역동성과 다양성은 이로부터 비롯되었다 봐도 좋았다. 들국화로부터 완성된 언더그라운드 문화는 90년대 대중음악에 서태지를 필두로 이승철, 손무현, 임재범, 윤상, 오태호, 김종서 등 새로운 피를 공급했고, 이들을 통해 한국 대중음악은 90년대의 전성기를 맞을 수 있었다. 과연 들국화를 빼고서 한국 대중음악을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들국화가 존재한 시간을 짧았다. 마치 화려한 불꽃이 폭발하듯 그렇게 단 두 장의 앨범만을 낸 채 들국화는 팀내 불화와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해체되어 현재 각자 자기 길을 가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들국화를 잊지 못하는 것은 그 짧은 시간 자신의 수명을 태워 들려준 그 폭풍같은 일갈 때문이리라.

 

지금도 잊지 못한다. 들국화가 나오고 조금 뒤였다. 우연히 길가다 라디오로부터 들려온 그 포효하는 듯한 목소리를.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고. 그저 행진할 뿐이라고. 어린 마음에도 그렇게 가슴이 떨렸었는데. 그렇게 그 거칠고 날카롭던 전인권의 목소리를 닮고 싶어했더랬다.

 

나는 그래서 지금도 문득 외치고 싶어지곤 한다. 조금 서툴고 조금 미숙하고 조금 어리석어도 그래서 세상을 아직도 모른다 해도 그래도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고. 언제까지고 여전히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고.

 

가끔 보면 가수는 노래 따라간다고 전인권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는 여전히 사랑할 것이고, 상랑한 뒤일 것이고, 자기만의 세상에서 그저 행진할 뿐이라고. 허성욱은 죽고, 최성원은 지금 뭐할까. 조덕환은 지금...

 

나이를 먹은 탓이다. 더 이상 당당하지도 솔직하지도 못한 채 자꾸만 비겁해지려 하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그래서 자꾸 떠올리고 마는 것이다. 당시 그 거칠고 자신만만하던 전인권의 포효를. 마치 내 목소리처럼. 나 자신을 위한 선물이랄까?

 

때로는 그립고, 때로는 아련하고, 때로는 서럽고, 그러나 여전히 들려오는 전인권의 목소리는 젊을 적 그대로다. 지금과도 다른. 그대 나도 그랬었는데. 시간은 흘러도 기억은 음악과 함께 남는 것이라.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