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마녀의 법정 - 원칙과 정도를 벗어난 대가, 마이듬의 비참한 패배와 몰락

까칠부 2017. 11. 8. 10:01

그나마 낫다. 부장검사 민지숙(김여진 분)은 부하의 일탈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검찰을 그만뒀고, 일탈을 저지른 마이듬(정려원 분) 역시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결과를 책임지고 검찰을 떠났다. 실제로도 이랬으면 정말 좋으련만 검찰의 수사를 방해하는데 앞장서고서도 그것을 수사하겠다 하니 자살로 도피하는 검사를 두고서 검찰조직 전부가 들고 일어나 하극상중이다. 어떻게 검찰의 잘못을 검찰이 수사해서 밝힐 수 있는가.


순간 화가 나서 보기를 그만두려 했었다. 자기만 불쌍한가? 자기만 아프고 힘든가? 자살한 검사를 떠올리게 만든다. 자기 사정은 자기 사정이다. 개인의 이유와 검사로서의 책은 전혀 별개다. 사건의 피해자도 가해자도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타인이며 그들 또한 각자 자기만의 사정과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자기의 사정과 이유만을 앞세워서 너무나 쉽게 검사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저버린다. 검사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지위와 신분, 권한, 책임을 그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조갑수(전광렬 분)도 처음에는 마이듬과 같았을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했었다. 그래서 그 결과가 어떠했는가?


마이듬의 생각대로 되었다면 더 화났을 뻔했다. 목적이 정당하다고 수단까지 다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꼼수와 편법이 허용되는 것도 어느 정도 선까지다. 그래도 수사를 위해 검사로서 그런 정도 수단을 필요하지 않을까 인정할 수 있을 때 그나마 귀엽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수사검사가 피의자의 가족과 만나 거래를 한다. 더구나 그 과정에서 사건의 중요한 증거를 거래의 수단으로, 협박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이든 어쨌든 특정인을 범인으로 몰아가기 위해 참고인의 진술조서마저 임의로 변조하고 있었다. 검사로서 할 수 있는,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선을 한참 넘어서 버렸다. 그런데도 진범만 잡으면 다 용서된다면 법이 왜 필요하고 원칙은 무슨 소용이겠는가? 검찰이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여진욱(윤현민 분)이라는 캐릭터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여진욱이란 드라마에서 균형과 조화를 의미한다. 이성과 상식을 담당한다. 범인을 잡고 처벌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인의 비극과 원한을 이기지 못하고 때로 폭주하기도 하는 마이듬의 캐릭터와 정확히 대척점을 이룬다. 검사란 어떤 존재인가. 진정 검사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부모자식간의 정에 이끌리면서도 일단 인지한 부모의 죄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단호한 모습을 보인다. 그럼에도 조심스러웠던 것은 자신의 어머니라서가 아니라 진실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정확한 사실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기 어머니마저 수사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항산 넘치지 않게 지나치지 않게 정도와 선을 지켜가며 수사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여진욱은 또다시 재판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이 또한 아이러니다.


어쩌면 마이듬이야 말로 현실의 검찰이 가지는 모순과 부조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갈수록 교활해지고 영악해지는 현실의 범죄와 맞서 싸우기 위해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는 반영웅적인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현실의 검찰이란 부패하고 타락해 있으니 원칙과 정도를 벗어난 기만과 편법을 아예 범죄를 수사하고 처벌하는데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면 어떨까? 어차피 검찰 자신이 법도 정의도 상식도 지키지 않는데 범죄자를 상대하는데 굳이 원칙과 정도를 지켜야 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래서 마이듬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범죄사실을 밝히고 재판에서도 이김으로써 그것을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범죄자를 상대하는데 굳이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원칙이 원칙이고 상식이 상식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기에 여진욱은 그런 그녀의 파트너가 되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검사로서 원칙과 정도를 저버렸을 때 어떤 결과가 돌아올 지 경고해주어야 했었다.


확실이 이번에는 여진욱의 말대로 되었다. 모든 것이 끝나 버렸다. 잡아야 할 진범은 빠져나갔고 오히려 자신과 상사인 민지숙만 검찰을 떠나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조갑수는 시장에 당선되며 더 멀리 더 높이 손닿지 않는 곳으로 날아오르고 말았다. 만일 마이듬이 처음부터 검사로서 원칙과 정도에 따라, 법과 절차에 따라 엄정하게 객관적으로 사건을 수사했다면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모든 것을 망쳐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토록 비참하고 궁색한 처지로는 내몰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의 성공들 때문이었다. 그동안 자신이 승리했던 기억들이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에 주의력을 흐트리고 말았다. 자신의 상대는 아주 작은 틈도 허락하지 않는 크고 강하고 철저한 이들이다. 자만이 모든 것을 망친다.


마이듬의 몰락은 말 그대로 자업자득에 사필귀정이라 할 수 있다. 백상호(허성태 분)의 죽음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조갑수의 측근으로 있으며 조갑수를 위해 많은 일들을 해왔었다. 그 가운데는 불법도 적지 않았고 심지어 명백한 범죄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동생만은 안된다. 동생의 억울함만은 안된다. 그렇게 다시 조갑수를 믿었고 조갑수에게 배신당해서 죽었다. 미성년자와 성매매를 했고, 안태규(백철민 분)가 피해자 공수아(박소영 분)를 무참히 폭행하는 것을 보면서도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었다. 신고하지도 않았고 죽었다고 여겨지자 시신을 유기하는데 협력하기도 했었다. 아직 공수아가 살아있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정작 말과는 달리 안태규의 몇 마디에 신고하는 것도 그만두고 있었다. 사실상 살인의 공범이었다. 일차원인은 안태규의 폭행이었지만 직접적인 사인은 출혈상태에서 장시간 야외에 노출된 것이었다. 그런데도 자기는 잘못이 없다. 자기는 무죄이고 억울하다. 이 무슨 개소리가 다 있는가.


검사가 검사여야 하는 이유다. 검사가 검사로서 법과 원칙을 지켜야만 하는 이유다. 수사에 정도와 절차를 지켜야만 하는 이유다. 그래서 마이듬은 실패했다. 민지숙마저 검찰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조갑수같은 인간들이 끝내 성공하고 사회의 상층부까지 올라갈 수 있는 이유다. 그런 이들을 수사하고 처벌해야 할 검사들이 그들과 같이 부패하고 타락해 있다. 법을 무시하고 원칙을 저버린 대가는 너무나 참혹하다. 심판해야 할 대상으로부터 도리어 심판당하고 만다. 변호사가 되어 나타난 마이듬의 모습은 비참할 정도로 추레하다. 검사라는 타이틀이 사라진 그들의 민낯일지 모르겠다. 검사라는 자리를 필사적으로 지키려 하는 이유다.


과연 변호사로 다시 나타난 마이듬이 검사인 여진욱과 장차 어떤 파트너십을 보여줄 것인가. 아직 조갑수에 대한 원한을 모두 포기한 것은 아닐 터다. 조갑수를 잡자면 검찰의 협조가 필요하다. 여진욱은 당사자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다만 여진욱과의 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한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백상호가 온전히 조갑수를 믿고 대책없이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만에 하나 가능성이지만. 재미있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