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절벽 끝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할 때 문득 눈에 들어온 꽃 한 송이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떨고 있는 어린 짐승의 새끼인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고 꺄르르 웃고 있는 갓난아기를 위해 어떻게든 살아야겠다. 내가 아니라 그 작은 아이를 위해 나중이야 어떻든 지금은 살아야겠다.
항상 하는 말이다. 사람은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산다.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람은 비로소 살아있을 수 있다. 어차피 시한부였다. 어차피 더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은 찌꺼기에 불과한 삶이었다. 더이상 어떤 희망도 기쁨도 없을 것이라 그냥 아무렇게나 자신을 내던지려 했었다. 한 남자만 사로잡으면 당장 빚을 갚을 돈이 생긴다기에 그를 유혹하려 자신의 마음을 사랑의 감정까지 팔고자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사이가 사랑으로 발전할 줄이야.
어차피 죽을 것이다. 이제 한 달 뒤면 더이상 세상에 자기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랜 해묵은 빚을 갚으려 했었다. 그때 자기가 해주지 못한 만큼 어떻게든 그녀에게 빚은 갚고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관대해질 수 있었다. 상당한 실수와 사고에도 아무일 없었다는 듯 그녀를 관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보다도 더 그녀는 다른 누군가의 사랑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는 깊은 절망에 오래도록 신음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비로소 안순진(김선아 분)을 사랑함으로써 손무한(감우성 분)은 지금 여기 자기가 살아있는 의미를 찾게 된다.
그 사람이 나를 위해 살아주었으면. 내가 그 사람을 위해 살 수 있었으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한다. 세상은 그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시간도 그 사람과 함께 끝나간다. 그렇게 살아간다. 굳이 엄마와 함께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거부하고 한국에 남은 손무한의 딸 손이든(정다빈 분)처럼. 각자 자기만의 절망에 고민하며 괴로워하다가도 결국 돌아가는 곳은 그 사람의 곁이다.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도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지금 나는 여기에 존재할 수 있다.
확실히 아름답고 달달한 사랑은 아니다. 오히려 기괴하게 메마르고 비틀린 죽은 고목과 같은 으스스한 느낌마저 준다. 오래 사랑한 부부도 아니고 이제 막 뜨거워지는 젊은 연인도 아니다. 메마른 사막이 비가 내리면 잠시 꽃이 피었다가 지듯 그렇게 예정된 결말로 달려가는 이야기다. 뻔히 결말을 알면서도 그러나 그들은 사랑을 한다. 거부하지도 도망치지도 못한다. 그래서 더 애절한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이유로 만나고, 전혀 순수하지 못한 다른 목적으로 얽히며, 전혀 의도하지 않게 계획에 없던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삶을 얻는다. 막다른 삶의 끝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알고 있다. 더이상 다음은, 나중은, 내일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바로 지금 여기. 그들이 살아 있는 순간이다. 진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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