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의료라고 하는 필수적인 사회적 역할을 대부분 민간에 맡긴 상태에서 정작 공공성을 앞세워 통제하려고만 하는 구조적 모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이미 대부분 병원들은 자본주의의 논리 아래 운영되고 있는데 정부와 사회는 공공의 책임만 앞세워 그들을 옭죄고 있다. 돈이 되지 않은 산부인과, 응급의료과, 소아청소년과를 지방으로 보내는 것은 상국대병원이지만 이미 구조가 그렇게 시키고 있지 않은가.
자선사업하는 것이 아니다. 흙푸고 물퍼서 운영하는 것이 아니다. 병원운영도 다 돈이다. 의사들도 누구보다 중요하고 위험한 일을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더 힘들고 더 위험한 일을 하는 의사들에게는 그만한 대가가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긴 과별로 수가를 차별화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의료계 내부에서 정리가 안된 탓에 시작도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건강보험료를 올리더라도 수가를 현실화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이보훈(천호진 분) 원장이 말한 그대로 어려운 의학용어 같은 것 시청자들은 들어도 잘 모른다. 어떻게 위급한 환자를 살렸는가 드라마에서 그렇다 하니 그런가보다 하는 정도지 그 이상 깊이 이해할 능력 자체가 대부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시청자에게 직접 와 닿을 수 있는 - 무엇보다 작가의 강점인 듯한 스릴러를 의료문제에 접목한다. 과연 병원장 이보훈은 어떻게 죽은 것일까? 무엇때문에 부원장인 김태상(문성근 분)의 집에서 시신이 되어 병원으로 실려오게 된 것일까? 도대체 김태상은 무엇을 감추고 있고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일까. 드라마의 초반은 그렇게 주인공 예진우(이동욱 분)가 이보훈의 죽음에 대해 파헤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렇다면 김태상은 병원장의 죽음에 얼마나 어떻게 관여되어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의사들로 이루어진 병원은 민간경영자라는 또다른 공동의 적을 맞이하게 된다. 민간의 자본과 의사의 사명이라는 현실의 모순이 직접적으로 대립하게 된다. 시작은 돈이 되지 않는 과들을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것부터다. 돈이 되지 않는 과들을 내려보내고 돈이 되는 과들만 남겨 이익을 극대화한다. 자본의 논리로는 옳다. 그러나 병원과 의사의 윤리에도 맞는가. 확실히 의사 전부를 상대할만한 존재감이다. 조금 과장해서 사장으로 부임하는 구승효(조승우 분)를 보기 위해 나머지 시간을 기다렸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병원의 현실을 지배하는 것은 역시 자본이다. 전쟁이다. 과연 이 싸움에서 의사들은, 병원은 자본을 상징하는 구승효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시작부터 긴장을 바짝 조인다. 과연 이보훈의 죽음은 진짜 부검소견대로 심근경색으로 인한 사고사인 것일까? 이보훈의 죽음에 김태상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은 아닐까? 예진우가 동생 선우로부터 전해받은 진실은 또 그의 죽음과 얼마나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 실체는 또 무엇일까? 그리고 구승효가 등장한다. 자신을 적대하는 모든 의사들 앞에. 그러나 그들을 굽어볼 수 있는 자신감을 창처럼 갑옷처럼 두른 채. 그 모든 긴장과 압박이 구승효의 등장으로 극대화된다. 이건 참을 수 없다. 과연 이후의 전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작가의 전작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대거 이번에도 함께 출연하고 있다. 그만큼 작가도 배우들도 서로에 대해 익숙하다. 배우들도 작가의 스타일을 알고, 작가 역시 배우들이 연기하는 방식을 안다. 함정이기도 하다. 스타일을 고정시키지 않으면서도 얼마나 능숙하게 서로의 장점과 강점을 활용하여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인가. 연기는 나무랄 데 없다. 이제는 중견이 되어 가는 이동욱도, 아직은 신인인 원진아도 자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내고 있다. 조승우는 존재 자체로 사기다. 문성근은 얼굴을 보이는 것만으로 드라마의 장르를 결정짓는다. 그 밖에 아직 그 존재를 드러내지 못한 베테랑들이 수두룩하다. 아직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작가의 이름만 듣고 참 오래 기다려 보기 시작했는데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출이 조금 산만하다 싶기는 하지만 그만큼 하고픈 말들이 많았다는 뜻이기도 할 터다. 아니 산만하다기에는 잠시만 눈을 돌려도 드라마의 내용을 따라잡기 힘들 만큼 꼼꼼하게 채워져 있기도 했다.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속이고 있는가. 작가와 감독을 상대로 한 시청자의 게임은 시작된다. 이길 수 없는 게임이기는 하다. 재미있다. 벌써부터 무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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