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라이프 - 점령군과 대항자, 자본과 병원의 전쟁

까칠부 2018. 7. 25. 09:47

정복이란 두 개의 서로 다른 문명 혹은 문화가 충돌한 결과다. 더 강한 쪽이 이긴다. 더 우세한 쪽이 열세인 쪽을 지배한다. 기업과 병원이 만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대자본인 기업이 병원을 인수하여 지배한다. 마치 점령군 같다. 점령군에 저항하는 투사들 같다. 문득 떠올린 미묘한 느낌이다.


어쩌면 화정그룹의 경영회의 장면도 작가가 의도하여 집어넣은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기업과 병원이라는 전혀 다른 세계가, 전혀 다른 문화가 그렇게 극적으로 대비되어 보여진다. 기업에게 병원이란 단지 돈이다. 수익이다. 이익이다. 반면 돈이 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리 해야만 하는 병원의 구성원들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과연 병원은 거대자본의 논리에 지배당하고 말 것인가.


오히려 이동원(예진우 역)의 미묘한 표정연기에 흥미를 가지게 되는 이유다. 차라리 저 표정이 다른 방송사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나왔으면 과연 어땠을까? 애써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 직접 관여하지 않으려 거리를 두고 자신을 억제해 왔다. 속에 끓어오르는 불길을 억누르면서 무리하지 않도록 앞서가지 않도록 자신을 다스려 왔었다. 그런 가장된 무심함이다. 꾸며진 방관이다. 가끔 보이는 동생 예선우(이규형 분)의 환상은 그런 억눌린 자신이었을 것이다. 가장 그러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가장 앞장서서 새로운 지배자에 저항한다. 다만 예진우의 캐릭터 묘사가 그리 친절하거나 상세하지 않았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 예진우의 성격은 단지 주변인물들의 설명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병원에서도 각 과마다 저마다의 입장이 있다. 확실히 구승효(조승우 분)는 지배자로서 자격이 넘친다. 의사들이 모인 회의장에서 지금의 문제가 단지 지방으로 내려가는 특정 과들의 개별적 문제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예진우가 마주치는 인물들을 통해 병원 내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갈등의 요인들을 드러낸다. 병원은 하나가 아니다. 그리고 설사 병원이 하나가 되더라도 새로운 지배자에게는 저항할 수 없다. 늙은 왕을 잃은 순간 나라는 새로운 젊은 지배자의 손아래 들어가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벌써부터 단서는 보이고 있다. 대기업 출신으로 자본의 논리로만 완전무장한 구승효가 병원의 지식과 논리를 하나씩 배워간다. 병원의 현실도 조금씩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으며 알아간다. 예진우의 직접적인 저항은 그룹의 구조조정본부를 동원한 직접적인 진압으로 돌아온다. 그것을 이미 대자본에 넘어간 병원이 거스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힘으로 지고 문화로 이긴다. 로마는 그리스를 힘으로 지배했지만 결국은 그리스의 문화에 거꾸로 지배당하고 말았다. 다만 그 경우 병원의 총괄사장으로서 구승효는 대자본인 화정과 정면에서 맞서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과연 거기까지 그리게 될까는 당장 모르겠다.


평소 안 그러던 만큼 행동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 과격함과 무모함으로 나타난다. 아예 직접 부딪힌다. 남들이 고민하는 사이 예진우는 행동부터 한다. 주변인물들의 묘사는 아직 부족하다. 아직은 구승효와 예진우, 그리고 주경문(유재명 분) 정도만 보이고 있을 뿐이다. 결국은 전쟁이다. 과연 상국대 병원은 지금의 점령사태를 어떻게 맞서고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영영 잡아먹히고 말 것인가.


재미있는 것은 그러면서도 과연 드라마는 온전히 의사의 편에서만 그들을 변호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회의장에서 구승효의 몇 마디는 속물적인 의사사회에 대한 질타이기도 했다. 어찌되었거나 의사인 자신들이 일개 월급쟁이들과 같을 수는 없다. 그런 오만 뒤에 숨은 비루함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역시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