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유전자풀은 매우 협소하다. 불과 수 만 년 전 인류는 극심한 기후변화와 거대한 자연재해로 인해 멸종위기에 놓인 적이 있었다. 당시 고작 수 천의 개체만이 남아 무려 2만 년 넘게 겨우 종을 유지하고 있었다는데, 바로 지금 100억을 바라보는 인구가 그 수 천의 개체에게서 번식된 후손들인 셈이다. 그리고 인류의 유전적 다양성도 딱 그 범위 안에서 수 만 년의 시간 만큼 밖에 되지 않는다. 거의 없다 할 정도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인간이 다른 종을 볼 때 그 겉모습을 바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고양이는 털색깔이라도 다르다. 개도 털색깔이나 체형이 다르다. 하지만 비슷한 색과 외형을 가진 늑대는 어떨까? 개구리의 무늬 패턴을 모두 구분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필요에 의해 인간은 서로를 구분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유전적으로 충분히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로를 구분하여 인식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의 뇌는 서로 크게 차이가 없는 인간의 외모를 구분하기 위해 고도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의 뇌는 사람의 얼굴을 구분하는데 상당한 착오를 일으키고는 한다.
한 마디로 개인과 개인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서로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동물과 달리 사람에게 우생학이 따로 적용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수한 유전자만을 따로 분리해내기에는 그만큼 유전적으로 섞여 있고 다양성도 적다. 하긴 그래서 호부견자란 말도 있는 것이다. 잘난 부모 아래서 잘난 자식이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못난 부모라고 못난 자식을 낳는 것도 아니다. 흑인과 백인과 황인의 인종적인 차이도 그렇게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대체적인 차이는 물론 있다.
그냥 생각나서. 오히려 유전학의 발달이 우생학을 부정하게 된 경우라 할 수 있다. 진화론을 멋대로 왜곡하여 인용하던 인종주의가 더이상 의미가 없어진 이유인 것이다. 인간의 유전적 다양성은 그렇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의미있는 크기를 가지지 못한다. 인종의 차이보다, 민족의 차이보다, 혹은 혈통의 차이보다 그냥 개체간의 차이가 더 크다.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말일 테지만. 별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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