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악들

Deep Purple - Highway Star

까칠부 2019. 1. 25. 09:24


사실 대부분 한국사람들에게 록이라면 레드 제플린보다는 이쪽이 더 친숙할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아는 록의 전형이다. 그만큼 딥 퍼플이 한국과 일본의 밴드들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아니 이후 수많은 밴드들이 이들의 스타일에 영향을 받으며 하나의 전범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다만 가장 큰 미국 시장에서 레드 제플린에 비해 상당히 낮은 평가를 받은 것이 두 밴드의 위상을 결정짓게 되었다.


아마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오래전 'TOP밴드'와 관련해서 글을 쓰면서 록이란 흑인의 블루스에 백인의 기악이 만나 만들어진 음악이라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록이란 백인의 블루스다. 백인이 자신들이 수 백 년 동안 발전시켜 온 기악의 전통을 바탕으로 흑인의 블루스를 수용한 것이, 아니면 흑인의 블루스 위에 자신들의 기악적 전통을 더한 것이 바로 록이다. 여기서 흑인의 블루스에 해당하는 것이 레드 제플린이라면 백인의 기악적 전통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이 딥 퍼플이다. 물론 이전에도 더 후와 같은 위대한 밴드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후의 록은 바로 이들 두 밴드가 정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흥미롭게도 딥 퍼플의 리더는 두 사람이었다. 딥 퍼플이라는 팀의 정신적 지주는 키보디스트 존 로드였지만 딥 퍼플의 음악을 이끌었던 것은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였다. 물론 이것은 리치 블랙모어가 탈퇴하기 전인 3기까지의 이야기다. 다만 리치 블랙모어가 탈퇴한 이유부터 항상 리치 블랙모어의 편을 들어주던 존 로드가 새로운 멤버인 글랜 휴즈와 데이비드 커버데일의 주장에 더 귀를 기울이면서부터였으니 누가 이 밴드의 중심이었는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딥 퍼플을 지탱한 것은 존 로드, 딥 퍼플을 이끌어간 것은 리치 블랙모어, 그래서 리치 블랙모어 탈퇴 이후 방향성을 잃은 딥 퍼플에 실망해서 해산을 결정한 것도 바로 존 로드였었다. 그리고 바로 이 존 로드가 딥 퍼플의 성격까지 정의하고 있었다.


존 로드는 원래 클래식을 전공했었다. 상당히 파워풀한 록에 어울리는 연주를 들려주던 키보디스트였지만 그 뿌리는 유럽의 기악적 전통에 있다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딥 퍼플은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레드 제플린에 비해 각 연주자들의 합을 중요시했었다. 확실히 흑인의 그것처럼 평소 연습을 통한 합보다 무대 위에서 잼에 가까운 즉흥연주를 즐겼던 레드 제플린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한 번도 같은 연주가 없었다 할 정도로 매번 무대가 달랐고 그래서 기복도 컸던 레드 제플린에 비해 덕분에 딥 퍼플은 한상 일관되고 안정적인 최고의 연주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지금도 연주력에 있어서 오히려 레드 제플린보다 특히 이안 길런과 로저 글로버, 이안 페이스, 존 로드, 리치 블랙모어로 이루어진 2기의 딥 퍼플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다. 다만 보컬 이안 길런은 가사를 자주 까먹어서 무대에서 샤우팅으로 대충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말하자면 서킷레이스와 오프로드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여러 대의 차가 함께 코스를 달려야 한다면 정해진 코스를 반복하는 서킷레이스와 앞에 어떤 장애물이 나타날지 모르는 오프로드와는 운전방식이 전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어떤 연주를 할 것인가 정해져 있고 거기에 숙련도까지 더해지면 남은 것은 더 빨리 달리는 것 뿐이다. 가끔 헤매기도 하는 레드 제플린에 비해 그래서 딥 퍼플의 연주는 더 직선적이고 더 강렬하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레드 제플린보다 너무나 전형적으로 들릴 정도로 딥 퍼플의 연주는 이후의 밴드들에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하긴 매번 무대에서 즉흥적으로 잼을 하듯 합을 맞추며 공연하는 것도 어지간한 실력과 자신감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기는 하다. 다만 딥 퍼플이 하드록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부터 레드 제플린이 나타난 이후라는 점이 그들의 위상을 깎아먹는 이유가 된다. 당장 이안 길런부터 로버트 플랜트의 노래를 듣고 우리도 저런 고음보컬이 있어야겠다 찾아내 영입한 것이었으니.


멤버들 사이가 안좋은 것으로도 유명했다. 물론 이전에도 더 후의 두 창립멤버인 로저 달트리와 피트 타운젠드가 서로 주먹다짐까지 하는 사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딥 퍼플의 리치 블랙모어와 이언 길런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그 전에 딥 퍼플이 그들이 거둔 음악적 대중적인 성공에 비해 크게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잦은 멤버교체로 인한 음악적 정체성의 혼란이었다. 특히 2기에서 3기로 넘어갈 때 이안 길런과 리치 블랙모어의 잦은 불화가 이안 길런의 탈퇴로 이어졌고, 3기가 끝날 때도 리치 블랙모어의 독단적인 성격이 새로운 멤버들과 화합하지 못하며 스스로 팀을 떠나고 있었다. 나중에 재결합하고 나서도 이안 길런과 리치 블랙모어의 불화는 어쩌면 사소할 수 있는 장난에도 리치 블랙모어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작별을 고했을 정도이니, 심지어 딥 퍼플의 전성기 시절 리치 블랙모어가 주차장에서 누군가를 주먹으로 두들겨 팼다는 이야기까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을 정도다. 근데 그게 진짜 리치 블랙모어였는지, 아니면 다른 밴드의 다른 멤버였는지. 성격 드샌 보컬과 성격 더러운 기타리스트가 만났으니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이들의 불화는 다른 밴드들의 비슷한 사례까지 더해지며 록밴드의 어떤 클리셰처럼 정의되게 된다. 단순히 음악적인 견해가 다른 정도가 아니라 진심으로 서로를 인간적으로 싫어하고 미워했었다.


아무튼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나, 특히 보컬 이언 길런은 이후 하드록, 나아가 헤비메탈에까지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전설들일 것이다. 헤비메탈의 기타는 리치 블랙모어에서 시작되었고, 헤비메탈 보컬들의 샤우팅 역시 이안 길런에게서 시작되었다. 이안 길런은 딥 퍼플 탈퇴 이후 심지어 블랙메탈의 시조라고까지 여겨지는 블랙 사바스에 디오를 대신해서 잠시 보컬로 몸담기도 한다. 리치 블랙모어는 이제는 아예 딥 퍼플에 대한 모든 미련이 사라진 듯 자기만의 음악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이안 길런은 다시 결성한 딥 퍼플의 멤버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밴드의 시작은 이제는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크리스 커티스가, 그리고 크리스 커티스를 위한 슈퍼밴드를 위해 모았던 멤버들인 존 로드와 리치 블랙모어가 이후 팀을 이끌었다. 크리스 커티스는 팀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지나친 마약사용과 기행으로 해고되어 음반도 내보지 못했다. 처음 밴드의 음악을 이끌었던 것은 존 로드, 그러나 이후로도 밴드의 중심은 존 로드였고, 하지만 하드록 밴드로서 딥퍼플의 음악을 이끌었던 것은 리치 블랙모어였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이후 수많은 헤비메탈 밴드들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태초에 더 후가 있었고, 레드 제플린과 핑크 플로이드와 딥 퍼플과 블랙 사바스가 있었다. 록이 끝없이 성장하며 확장해가던 태초의 70년대의 중심에 있던 그야말로 전설이라 하겠다.


과연 딥 퍼플이라면 어떤 음악이라야 할까? 어떤 음악이 이들을 가장 잘 정의할 수 있을까? 그냥 찍었다. 유튜브에서 딥 퍼플로 검색해서 가장 위에 올라온 음악을 대충 찍어 링크로 걸었다. 뭔들 무슨 상관인가? 개인적으로 딱 2기까지가 내 취향에 맞는다. 바로 이런 게 록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세뇌되어 온 감성일 것이다. 너무 늦었다. 사실은 레드 제플린에 대해 쓰며 바로 써보고 싶었었는데. 아주 오래된 음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