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어둔 밤하늘에 가득 덮힌 먹구름이
밤새 당신머리를 짙누르고 간 아침
나는 여기 멀리 해가 뜨는 새벽강에
홀로나와 그찬물에 얼굴을 씻고
서울이라는 아주 낯선이름과
또 당신이름과 그 텅빈거리를 생각하오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가득 피어나오
짙은 안개속으로 새벽강은 흐르고
나는 그강물에 여윈 내손을 담그고
산과산들이 얘기하는 나무와 새들이 얘기하는
그 신비한 소리를 들으려 했소
강물속으론 또 강물이 흐르고
내맘속엔 또 내가 서로 부딫치며 흘러가고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또 가득 흘러가오
아주 우울한 나날들이 우리곁에 오래 머물때
우리 이젠 새벽강을 보러 떠나요
강으로 되돌아 가듯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 처음처럼 신선한 새벽이 있소
흘러가도 또 오는 시간과
언제나 새로운 그 강물에 발을 담그면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천천히 걷힐거요
흘러가도 또 오는 시간과
언제나 새로운 그 강물에발을 담그면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천천히 걷힐거요
가사 내용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여행의 고단함에 지쳐 잠든 다음날 어스름 새벽에 홀로 깨어 강가를 거닐며 느끼는 감상 그대로일 테니까. 그래서 처음 가사를 읽으며 피식 웃기도 했었다. 굳이 여행이 아니라도 좋다. 밤새 일하고 이른 새벽 인적 없는 거리를 거닐 때도 비슷한 감상이었을 테니까.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오로지 나만이 그곳만이 그 순간만이 특별한 무엇이 된다. 그런 특별한 상념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정태춘 특유의 서정미의 극치라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정태춘 노래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물론 다른 노래들도 다 좋다.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들도 나는 거의 좋아한다. 단지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서정미를 들려주는 노래로서 이 노래를 꼽고 싶은 것 뿐이다. 그야말로 도시의 생활에 지쳐, 혹은 사람의 관계에 지쳐 떠난 여행에서 맞는 고독하지만 오롯한 새벽의 느낌을 장황할 정도로 간결하게 담아내고 있을 것이니. 정태춘만의 담백한 목소리와 창법이 그런 정서를 철저히 개인화시켜 들려준다. 마치 나의 일상의 이야기들처럼.
어쩌면 그래서가 아닐까. 초기 그의 음악과 달리 어느 순간부터 정태춘의 노래는 그런 서정적인 아름다움보다 때로 불편하기까지 한 우리들 자신의 일상의 이야기들을 더 노골적으로 들려주고 있었다. 여전히 아름답기는 하지만 때로 후비고 때로 내리치며 듣는 이들을 헤집어대고 있었다. 아마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무심코 감탄하며 지나쳤을 일상의 풍광들마저 저토록 아름답게 특별한 순간으로 녹여낼 수 있었던 그의 순수함과 솔직함이 정작 자신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몸으로 느껴지는 현실의 문제들을 그냥 모른 척 지나치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운 것도 남들보다 더 아름답게 느끼고, 기쁘고 슬픈 감정들마저 남들보다 더 선명하게 예민하게 느끼고 받아들이며, 그래서 자기 것도 아닌 행복과 고통마저 자기 것인 양 더없이 솔직하게 진실하게 노래에 담아낼 수 있다. 그래서 고통스러운 직업이다. 너무 많이 보여서, 너무 크게 느껴져서, 그런데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감정이 넘치고 말이 넘쳐난다. 어떻게든 그것을 세상에 드러내 보여야 한다. 그래서 예술가다. 파트너인 박은옥씨의 평가는 그래서 정태춘이란 한 인간을 정확히 설명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말로써 표현해야 하는 사람이다. 자기가 보고 듣는 것을.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그래서 처음 그의 음악은 아름다웠던 것이었다. 음악이 아름다웠을 테니까. 그런 음악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자신의 감정이 아름다웠을 테니까. 그러나 살면서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들이 그의 눈과 귀를, 마음과 머리를 가득 채우게 되었을 것이다. 결코 외면할 수 없었던 현실의 이야기들의 그의 감정을 대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현실의 아픔들에 대한 분노와 연민과 희망이 대신 그의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정태춘이 달라지고 정태춘의 음악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그의 눈과 귀가, 마음과 머리가 향하는 곳이 달라졌다 해야 좋을 것이다. 실제 멜로디든 가사든 창법이든 정태춘의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일관되다. 그냥 무심코 흘려들어도 정태춘이구나 알 수 있을 만큼.
누군가를 사랑하는 기쁨과 삶에 대한 젊지만 나름의 깊은 사유와 그리고 일상에서 느끼는 어떤 깨달음들 대신 그래서 어느 순간 그는 사납고 거친 일상의 이야기들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래야 했으니까. 자꾸만 그런 것들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기 시작했으니까. 애써 외면한다는 것도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모른 척 부정하는 것도 순수하지 못한 것이다. 어쩌면 정약용이 시란 현실을 담아내야 한다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니었을까. 진정 시인의 감수성이라는 것이 진짜라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의 문제를 온전히 더 예민하게 선명하게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순수시네 참여시네 나누던 예전의 국어교육이 얼마나 헛된 것이었는가 새삼 깨닫게 된다.
더이상 시대와 소통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음악을 놓았다고 했었다. 더이상 세상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것 같다고. 아무도 듣지 않는 이야기를 혼자서 떠드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다. 그런 점에서는 내가 더 강한 것 같기도 하다. 나 역시 떠들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지만 누군가 들어주지 않음을 슬퍼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동안 사진도 찍고, 가죽공예도 하고, 붓글씨도 쓰고, 그러나 결국 그는 말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는 시인이라. 노래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는 가수라서.
40주년이라는 말에 다시 정태춘의 노래를, 아니 파트나인 박은옥과 함께 부른 그동안의 수많은 노래들을 반복해 듣고 있다. 노래와 함께 떠오르는 오랜 기억들을 반추한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기억이란 그 순간을 함께 한 노래들과 함께 새겨지는 모양이다. 오랜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래서 무심코 훌쩍 시간을 거스르고는 한다. 신새벽의 차가운 바람과 습한 안개내음과 그리고 선명한 고독감. 그리고 이 순간의 무료함까지. 추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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