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정규직 공채라는 것이 자격시험처럼 되어 버렸다. 기업에서 공채를 하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회사에 필요한 인재를 가려내기 위해서다. 그래서 굳이 이력서를 받고 시험을 치르고 면접까지 보고 하는 것이다. 얼마나 회사에서 필요한 자질과 능력과 품성을 갖추고 있는가. 그런데 만일 해당자가 이미 회사에서 실제 업무를 통해 자신의 자격을 증명했다면?
모르겠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비판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를 비판하는 여론을 오히려 비판하려는 것이 목적인지. 누가 보더라도 강단이는 누구보다 열심이고 회사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는데다 짧은 기간 상당한 실적까지 냈을 정도로 능력 또한 인정할 만하다. 그런데 정규직이 아니다. 계약직으로 들어왔다. 다른 이유도 아닌 정규직으로 들어온 다른 직원들과의 형평성이 문제라 한다. 형평성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뽑는가. 회사에 필요한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 입사시험을 치르는 것인가.
정규직으로 입사한 오지율과 계약직인 강단이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비교되고 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 묘사된 바로 명문대학교 출신이다. 출판사에서 요구한 조건을 갖추고 정당한 과정과 절차를 거쳐 정규직으로 채용되었을 터임에도 어떠한가. 여전히 정규직으로서 회사일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오지율과 벌써 한 사람의 몫을 거의 하고 있는 강단이 가운데 누구에게더 정규직의 자격이 있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이야기할 때 항상 거론하는 것이 형평성이며, 그 기준은 또한 항상 정규직 시험이었다. 그러니까 이미 현장에서 실무를 통해 경험을 쌓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한 사람들조차 다시 시험을 치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도대체 정규직을 따로 뽑는 이유가 무엇이지?
경단녀라고 어디에서도 써주지 않으니 스펙을 낮춰 계약직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그마저도 회사 입장에서는 기망행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마저 경단녀들이 겪는 현실의 어려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원래 스펙대로는 써주겠다는 곳이 없고, 그렇다고 스펙을 낮추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되고. 결국 한 번 일을 그만두었던 여성들은 파트타임 정도나 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래서 자존감도 낮아져 새로운 일이 두렵기까지 했던 강단이가 겨우 자신감을 되찾게 되었는데 회사에서 내쫓길 위기에 내몰리고 말았다. 그래도 그대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분위기에 대한 기대일 것이다. 송해린도 역시나 악역이 되기보다 개그캐릭터가 되었고, 송해린의 부모 역시 딸을 외면한 차은호를 원망하면서도 여전히 사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또한 차은호와 너무 잘 나가고 있으니 균형을 맞출 필요도 있을 것이다.
뭐든 열심히 하고,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성과를 내고, 회사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고, 그러나 경단녀였고, 그래서 스펙을 속여야 했고, 무엇보다 계약직으로 들어온 터였다. 현실은 한 번 자신의 일을 저버린 그녀를 용서하지 않는다. 결혼은 몰라도 최소한 아이를 낳아서는 안됐다. 어째서 출산률이 이처럼 처참하게 바닥을 기고 있는가. 출산휴가와 육아휴가로 인한 빈자리를 그저 민폐라 여기며 그를 이유로 여성을 채용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다.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서 출산과 육아로 자리를 비우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이를 낳아서는 안된다. 고유선은 현명했다. 그녀가 지금의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결혼도 출산도 육아도 모두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잘 풀리는 것 같은데. 그래서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차은호도 그런 강단이에게 사실을 있는대로 털어놓기 곤란하다. 실망할 것이다. 다시 다치게 될 것이다. 시답잖은 일상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급한 일들도 지나고 회사에서도 한가한 잡담들이 오가고 있는 중인데. 오랜만에 무거워졌다. 현실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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