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굳이 경단녀가 아니더라도 대부분 남성들 역시 현업에서 몇 년이나 떠나 있었으면 다시 원래의 일로 돌아가기란 불가능하다시피하다. 그만큼 몇 년의 공백이란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현대사회에서 너무 크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로지 한 우물만 파야 하는 한국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다양한 경험을 인정하지 않는다. 지금까지와 다른 분야에서 다른 경험을 쌓았다는 사실을 경력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경단녀가 더 크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대개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사직의 경우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만 내린 선택이 아닐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지금도 많은 직장인과 예비직장인들이, 심지어 같은 여성들마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업무의 공백에 대해 너무나 당연하게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아예 임신과 출산을 이유로 더이상 여성을 채용하지 않으려는 사용자의 입장을 이해하며 지지를 보내는 이들이 실제로도 적지 않다. 하물며 저출산 이슈로 많은 부분에서 나아졌다는 요즘과 달리 남편이나 주변의 가족들마저 아이는 엄마가 돌보는 것이라며 당연하게 일을 그만두기를 바라고 요구하던 것이 그리 오래지 않다. 대부분 경단녀라 불리게 된 여성들이 일을 그만두게 된 시절과 딱 맞물린다. 강단이가 일을 그만둔 것도 그 무렵이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주변의 상황이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만두어야 했던 것인데 이제 와서 그를 이유로 다시 돌아가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그러니까 결혼을 않는 것이다. 아이도 낳지 않으려는 것이다. 고유선 이사는 현명했다. 특히 여성들에게, 더구나 고유선 또래의 여성들에게 결혼이란 무덤과도 같다. 결혼도 결혼이거니와 아이라도 낳으면 그때는 정말 선택지가 좁아진다. 아이까지 낳고 기르면서 계속 일을 한다는 것은 차라리 전쟁이거나 아니면 기적이다. 그래서 그런 어려움을 이기고 남성들과 대등한 위치에까지 오른 여성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차라리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과 육아를 포기하고, 그렇게 필사적으로 자신의 일과 자신이 이룬 성과들을 지키려 한다. 그나마 지금은 세상이 나아졌으니 송해린이 결혼해도 강단이처럼은 안되어도 되지 않을까. 자신할 수 없다. 서영아 팀장 역시 자신의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 끊임없이 회사에 거짓말을 해야 한다.
일을 잘해도 안된다.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 회사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일을 잘하고 열심히 하고 이전에 경력을 속인 것이다. 사용자 입장에서 지원자가 낸 이력서의 학력과 경력을 보고 믿고 뽑았는데 그것이 모두 거짓이었다. 사용자와 고용인 사이에는 근로계약서만큼이나 상호간에 신뢰가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그 신뢰를 고용인 스스로 처음부터 거짓말을 함으로써 깨뜨린 상태인 것이다. 신뢰가 없는데 과연 더이상 고용관계를 지속할 이유가 있을까? 다른 직원들 때문에라도 회사와의 신뢰를 저버린 직원은 어떻게든 정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부정한 출발이었고 그로부터 비롯된 불안한 관계였었다. 그 사실을 강단이도 알고 있었다. 서영아 팀장으로부터 자신이 학력과 경력을 속인 사실을 회사가 알고 있음을 들었을 때 강단이가 지어 보인 표정이 그것을 말해준다. 과연 강단이가 중간에 일을 그만두지 않고 지금 서영아 팀장과 같은 입장이 되었을 때도 단지 경단녀라는 이유만으로 회사를 속인 직원을 그냥 없던 일로 봐 줄 수 있을 것인가.
안타깝지만 강단이의 억울함 만큼이나 회사의 입장도 이해가 되는 것은 세상 일이란 무 자르듯 옳고 그름만으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저마다 각자의 사정이 있고 이유가 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입장들을 모두 이해하고 지지하면서도 결국에 어느 한 쪽을 편들 수밖에 없는 경우란 것도 있다. 처음부터 결혼과 임신, 출산 등을 이유로 경력이 단절되어야 하는 현실이 잘못된 것이다. 회사나 가족들로부터 직접적인 압력이나 강요가 없었더라도 그래야만 한다는 무의식이 그리 떠밀었다면 그 또한 문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였고 그 피해를 온전히 경단녀라 불리는 이들이 감당하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그러니 누가 풀어가야겠는가.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또한 개인인 사용자와 새로운 직장의 동료들에게 떠넘기기에도 염치가 없다.
송해린은 여전히 열심히다. 지나칠 정도로 열심이라 지서준이 보기에도 부담스럽다. 잘 풀릴 것 같다. 일도 열심이고 술버릇도 나쁘고 그리고 사람 관계에 대해서도 지나칠 정도로 성실하다. 차은호와 강병준 작가와의 관계도 드러난다. 강단이도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과연 절필하고 세상으로부터 모습을 감춘 강병준과 지서준 사이에 어떤 감춰진 비밀이 있는 것인가. 지서준의 집착이 평범하지만은 않다. 오지율과 강훈의 어설픈 투닥거림은 그냥 이야기 위에 뿌려진 설탕가루에 지나지 않는다. 다양한 양념들이 드라마의 맛을 북돋는다.
결국 그만둔다. 그만둘 수밖에 없다. 모두에게 민폐다. 자신을 지키려는 차은호에게도, 그동안 자신을 믿고 함께 일해 왔던 동료에게도. 서로 친구라 부르고 있었다. 그 친구가 자신을 난처하게 보고 있었다. 자신의 죄인가. 하지만 때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죄인이 되어야 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는 법이다. 그래서 세상은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것이다. 마지막에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이코메트리 그녀석 - 정석과 무난한 출발, 부족한 매력 (0) | 2019.03.12 |
---|---|
로맨스는 별책부록 - 합리적인 결정, 영세한 중소기업의 현실 (0) | 2019.03.11 |
진심이 닿다 - 사랑하는 사람의 곁을 지켜야 할 때 (0) | 2019.03.08 |
진심이 닿다 - 다가오는 위기, 그리고 믿을 수 있는 단 한사람 (0) | 2019.03.07 |
로맨스는 별책부록 -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높은 벽 (0) | 2019.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