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끓으면 부글거리며 소리를 낸다. 물이 흐를 때도 졸졸거리며 소리를 낸다. 샘도 퐁퐁거리며 솟는다. 조용한 물은 죽은 것이다.
살아있는 것들은 항상 시끄럽게 소리를 낸다. 울고 보채고 뛰고 달리고 어딘가 부스럭거리며 그 존재를 알린다. 주용한 것은 이미 죽은 것이다.
마음 역시 마찬가지다. 마음이란 항상 움직인다. 얼마나 놀라운가. 얼마나 신기한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얼마나 안타까운가. 그런데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 사랑스럽다 여기고, 멋진 경치를 보고 아름답다 여기고, 잘 빠진 오토바이를 보고는 갖고 싶다 여기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마음이란 역시 죽은 것이다.
기쁨도 슬픔도 노여움도 즐거움도 없는 고요한 평정상태... 과연 그것이 올바른 것일까? 인간이라면 기뻐하고 슬퍼하고 노여워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기뻐하고 슬퍼하고 노여워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살아있기에.
오늘의 남자의 자격에서 이번 주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은 세 사람, 김태원, 이윤석, 김성민이었다.
김태원을 보면서 나는 게키단 히토리를 떠올렸다. 일본에서도 유명한 코미디언이자 연기자, 저술가로 카라의 일본진출에도 많은 기여를 했기에 관계자석에서 가까이서 카라를 지켜볼 수 있었음에도 다른 팬처럼 일반인석에서 카라를 보고자 했었던.
프로그램 중간에도 어느 카라의 삼촌팬도 그렇게 말한 바 있었다.
"손 안에 들어온 스타는 스타가 아니다."
스타란 하늘 위에 떠 있기에 스타다. 말 그대로 별이다. 우러르며 동경하는 존재다. 그 자체로 위안을 받는, 그를 사랑함으로써 구원받는 존재다. 그래서 아이돌이다. 우상이다.
언젠가 내가 무척 좋아하는 작가와 일 관계로 만날 수 있었다. 참 할 말이 많았다. 예전 읽었던 작품에서 궁금했던 것들, 미흡했던 것들, 내가 상상하고 구상했던 이야기들, 그러나 결국 나눈 이야기란 일 이야기였다. 확실히 일 관계로 만나니까 솔직해질 수 없더라. 만일 우연히 사적인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면?
그의 책을 읽으며 두근거리던 그대로를 간직한 채 만났다면 어땠었을까? 그의 책을 읽으며 느꼈던 설렘을 그대로 간직하고 그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정작 마주하고 앉은 자리는 돈을 이야기하는 자리. 현실의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 그는 나의 한 시절을 지배한 영웅이 아닌 그냥 거래상대에 불과했다.
그런 우스개가 있다. 한창 좋은 꿈을 꾸고 있다. 그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을 떠올린다.
"이건 혹시 꿈이 아닐까?"
그래서 뺨을 꼬집었더니 꿈에서 깨어나더라는.
물론 꿈이다. 연예인이란, 스타란 결국 꿈이다. 기믹이다. 대중은 연예인으로부터 꿈을 사고, 연예인은 대중에 꿈을 판다. 철저한 비즈니스의 관계다. 그러나 그것은 대중이 스스로 요구한 꿈이다. 스스로 욕망하여 받아들인 꿈이다. 따라서 그 꿈을 지키는 것도 자기 할 탓이다.
더 깊이, 더 가까이, 더 실체로서... 꿈이 현실이 되고서도 꿈이 될 수 있을까? 꿈을 손아귀에 넣고 느끼면서도 그것이 꿈일 수 있을까? 꿈이 꿈인 것은 닿을 수 없고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연예인이고, 음악계에서 상당한 추앙을 받는 한참 선배인 입장이지만 그래도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만날 때는 팬으로서라는 것이다. 같은 연예인으로서도, 혹은 선배로서도, 락의 전설로서도 아닌, 순수한 팬으로서라는 것이다. 스타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 순수한 설레임과 두근거림으로.
그것은 어쩌면 더 지독한 에고일지도 모르겠다. 수애의 입장에서 그래도 한참 선배인 김태원이 그러고 나오는데 과연 마음이 편했을까? 카라의 입장에서도 그래도 게키단 히토리가 일반인석에서 다른 일반팬들과 함께 하는 것이 그저 좋기만 했을까? 그러나 그것과는 상관없이 순수하게 팬으로서의 마음을 즐기고자 하는 것이다.
"아직 내게 이런 순수가 남아 있다는 거지."
마치 아이처럼. 어린아이의 순수처럼 순진무구한 이기로서. 욕망으로서.
아니 그것은 어쩌면 오히려 나이를 먹었기에 갖게 되는 지혜인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가르쳐주는 것이다. 꿈을 꾸는 법을. 꿈을 즐기는 법을. 꿈에서 깨어나지 않는 법을.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내동댕이쳐졌을 때의 아픔을. 슬픔을.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어린아이들에 비해 그래서 더욱 뒤로 물러나 거리를 지키는 것일지도. 이를테면 아저씨의 순수랄까?
보는 나마저 두근거렸다. 수애를 전혀 알지도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는 나마저도 김태원이 수애를 만나는 동안에는 함께 두근거리고 있었다. 얼굴마저 빨개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내가 구하라를 직접 만나게 되면 저럴까? 구하라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저렇게 될까?
그는 순수이고 에고였다. 지독한 순수이고 지독한 에고였다. 그의 음악 그대로. 그의 음악은 그처럼 순수의 극치이고 에고의 절정이었다. 나마저도 끌려들어갈 정도로.
둘째는 이윤석.
지난주 이윤석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집사람이 그러면 좋아라 할 수 있겠어요? 난 도저히 이해 못하겠어."
그러나 조금씩 자기 속내를 드러내던 이윤석은 마침내 소녀시대 콘서트장에서 가장 열정적인 아저씨팬으로 돌변하고 만다. 야광봉을 휘두르고, 소리를 지르고, 마침내는,
"가지마!"
그야말로 이윤석 안에 숨어 있던 순수한 욕망의 외침이 아니었을까? 콘서트가 끝나고 유리와 만나게 된 자리에서 수줍어 하며 자신이 보았던 콘서트의 한 장면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나이를 먹어도 사춘기 어린 소년의 모습 그대로였다. 좋아하는 여자 앞에 감히 자신을 드러내 보이지 못하는.
남자란 아이인 것이다. 인간이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아이라는 것이다. 단지 주위의 시선과 환경으로 인해 자기를 억누르고 어른의 흉내를 낼 뿐. 결국에 그 본질은, 어느새 강요된 이타에 가려진 그 에고란 사춘기 이전의 어린아이 그대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순수하게 좋아하고, 순수하게 욕망하며, 그렇기에 대담해질 수 있고 수줍어 할 수 있는.
그렇게 완고하게 자기 세계를 지키며 오히려 그것을 비판하던 모습에서, 어느샌가 알을 깨고 그 순수로 돌아가는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의 본모습을 본다. 이번주 주제, 왜 인간은 열광해야 하는가도. 왜 인간은 열광할 수밖에 없는가도. 지금 이 순간에도 한참 어린 아이돌에 열광하는 무수한 에고들에 대해서도.
물론 그것은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 역시 구하라에 의해 나의 꺼풀을 벗기까지 마찬가지로 완고한 자신을 지키며 모든 것을 비웃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솔직한 나 자신조차도. 그는 그래서 나다.
마지막으로 김성민.
오늘 김성민은 그동안 내가 느껴왔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말았다. 솔직히 남자의 자격에서 가장 생각없이 프로그램에 임하고 있는 멤버를 꼽으라면 바로 김성민이다.
물론 좋다. 리얼버라이어티란 리얼리티이고, 리얼리티란 자연스러움이며, 자연스러움이란 그의 본모습일 테니까. 더구나 그런 김성민이지만 이경규나 김태원이나 김국진이나 이윤석이나 모두 리액션이 좋아 그런 김성민의 개성까지도 그대로 품어 안으며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과연 김성민이 남자의 자격이 아닌 다른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도 김성민이었을까.
지난 아마추어밴드편에서도 김성민은 그 간단한 가사를 외워오는 수고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문맹도 아니고, 난독증도 아니고, 그러면서 도대체 무슨 용기로 보컬로 밴드의 맨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일까. 무슨 면목으로 보컬에서 쫓겨났다고 안타까워할 수 있는 것이고.
그동안의 김성민의 패턴이 그랬다. 김성민은 리액션을 하는 타입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받아주거나 살리는 타입도 아니다. 혼자 내달리는 타입이다. 그저 생각없이 내달리면 주위에서 그것을 살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오죽하면 김태원이 언젠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이제 드디어 성민이도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네."
얼마나 주위와 상관없이 혼자서 떠들고 놀았으면.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솔직히 내가 남자의 자격에서 가장 부대껴했던 멤버라면 김성민이었다. 단지 그럼에도 김성민이 없는 남자의 자격이란 상상할 수조차 없기에 남자의 자격을 좋아하는 마음 그대로 김성민도 좋아했던 것이었다. 인간 김성민이 아닌 남자의 자격에서의 봉창 김성민을 좋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역할을. 그의 부분들을.
아니나다를까... 카라의 팬이 되어 카라의 공연을 보러 가기로 해놓고도 구하라가 카라의 멤버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구하라가 카라의 멤버인 줄 모르는 것은 물론 카라의 히트곡조차 모르고 있었다.
거기까지는 이해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박규리는 알았는데 니콜은 몰랐다. 한승연은 알았는데 구하라도 강지영도 몰랐다. 히트곡도 당연히 모르고 있었다. 내 동생도 바로 얼마전까지도 "맘에들면"과 "프리티걸"이 카라의 노래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내 동생도 구하라를 무척 좋아한다. 김성민도 그렇겠거니...
그런데 그 김성민이 이번에는 카라의 공연을 보고 나오는 자리에서 느닷없이 소녀시대의 팬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었다. 물론 그것도 그럴 수 있다. 카라를 좋아한다고 소녀시대를 좋아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나도 태연과 제시카, 유리를 무척 좋아한다. 티아라에서도 은정과 소연에 관심이 있다.
그러나 도의라는 게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공중파에서 카라 팬덤과 함께 공연을 지켜보고는 바로 이어 소녀시대로 갈아타는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과연 조금이라도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고민이라는 것을 해봤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조금 전까지 함께 카라의 팬들과 목청껏 응원을 하고서는 이내 바로 갈아타기...
그러나 김성민의 그같은 무개념과는 별개로 바로 이것이 또한 삼촌팬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여성팬들과는 달리 남성팬들은 매우 즉흥적이고 즉물적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에 집중하는 성향을 보이는 여성팬들과는 달리 남성팬들은 눈앞에 보이는 모든 아이돌에 반응하곤 한다. 그래서 남성팬들 가운데는 라이트팬이 많다. 언제고 틈만 나면 떠날 수 있는.
여자아이돌들이 음반활동 사이에도 예능출연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심지어 소녀시대조차 음반활동을 쉬는 사이 쉴 새 없이 예능에 얼굴을 비쳐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카라가 잠시 활동을 쉬며 예능출연만 하던 사이에도 카라에서 티아라로 갈아탄 삼촌팬이 또 얼마이던가. 인기가 조금 있다고 활동을 쉬거나 했다가는 그대로 잊혀지기 십상인 것이다.
하긴 그래서 2NE1이 예능출연 없이도 확고한 지금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 게다. 카라가 1집의 실패에도 유지될 수 있었던 것 역시 마찬가지다. 2NE1은 남성팬보다 여성팬이 많다. 카라 1집 당시에도 여성팬층이 상당히 두터웠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 여성팬들은 아직도 1집 당시의 멤버와 음악을 그리워하며 추억하기도 한다. 일부 카라로부터 떠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한결같다는 거다.
그야말로 지금의 걸그룹들이 놓인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구하라는 알지만 카라는 모른다. 히트곡이 뭔지는 모르지만 어찌되었든간에 예쁘고 귀여우니 관심을 갖고 좋아하며 팬질도 한다. 그러나 언제고 다른 대상이 나타나면 그대로 떠나갈 수 있다. 그같은 불안감. 위기감.
그나마 나은 점이라면 김성민과 같은 타입은 갈아탄다고 기존의 자기 아이돌을 디스하거나 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다. 오히려 저런 타입들이 쿨하다. 좋으니 갈아타는 것이고, 더 좋아하는 대상이 나타났으니 갈아타는 것이다. 굳이 미련을 둘 것도 없고, 굳이 비난하거나 함으로써 감정의 찌꺼기를 남길 것도 없다. 같은 팬덤 안에서 같은 팀의 멤버를 대놓고 디스하는 충성도 높은 팬덤보다야 훨씬 건전한 팬인 것이다. 언제 떠날 지 알 수 없어서 그렇지.
나머지는 그냥 쩌리. 자리만 채우고 있었다. 이정진은 그래도 30대 초반이라고 삼촌 대신 오빠 소리를 들었고, 이경규는 나이를 못 이기고 콘서트를 지켜보는 사이 소녀시대보다 먼저 지쳐버렸고, 김국진은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나름 재미도 있었지만 별 의미도 없는. 그러나 그게 또 남자의 자격이라.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남자, 열광하라"편이라기보다는 "남자, 그리고 소녀시대" 편이라 할 정도로 소녀시대에 편향된 구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설마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였을 줄이야. 들러리도 아니고 그저 소녀시대를 보여주는 사이 잠깐 보여지는, 소녀시대 콘서트장에 있던 SS501의 포스터와 같달까?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차라리 카라를 섭외하지 말았어야 했다. 소녀시대는 남자의 자격 멤버들과 만나고, 반면 카라는 아예 멤버들 얼굴조차 보이지 못하고, 이게 무슨 열광하라인가? 이게 무슨 아이돌에 열광하는 남자들의 순수함인가. 차라리 소녀시대만 나왔다면 오히려 주제에 맞았을 것이다. 소녀시대에 열광하는 남자의 자격이었다면 오히려 주제에 더 걸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제작진의 다른 의도가 없었을 것이라 믿고 싶지만, 그러나 김성민이 마지막 소녀시대로 갈아타려는 장면을 편집하지 않은 것만도 상당히 불쾌한 것이라. 안티를 키우고 싶은 것일까?
그러나 그 밖에는 좋았다. 김태원의 여전히 간직한 순수와 이윤석의 완고한 어떤 틀에서 깨어나는 소년다운 수줍음과 천진스레 그저 욕망에 충실한 김성민이란.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그것이야 말로 이번 주제의 전부일 것이므로. 순수와 소년과 욕망. 아주 좋았다.
선물편은 본격적인 이야기가 다음편으로 넘겨졌으니 그때 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한다. 그만큼 열광하다 하나만으로도 이야기는 차고 넘쳤다.
그리도 다시 말하지만 아무리 소녀시대가 대세라고 카라를 소녀시대의 들러리로 세운 건 너무 심했다. 카라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모욕감을 느꼈을 정도였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제작진의 반성과 분발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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