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녹두꽃 - 문명이란 이름의 야만, 그리고 우금치전투

까칠부 2019. 6. 30. 12:35

아직 문명이라는 이름의 야만을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탓이다. 그래서 처음 말하지 않았는가. 백이현은 도련님이라고. 온실의 화초처럼 주위의 보호 속에 자라서 정작 세상의 어려움이나 흉험함 같은 것은 머리로만 안다. 그래서 인간의 악의에 대해서 차라리 무지하다 싶을 정도다. 그러니까 그렇게 쉽게 실망하고 분노하고 좌절하며 자신을 놓아 버리는 것이다. 황석주도 그런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명인이든 야만인이든 인간이란 본질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문명이란 자체가 결국 야만 상태에서 더 쉽게 더 편하게 더 수월하게 더 효율적으로 자신들의 본질을 투사하기 위해 발전시켜온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과 나아가 집단의 욕망을 위해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도구를 발명하며 방법들을 찾아 나선다. 이웃한 집단보다 더 강해지기 위해서. 이웃한 다른 집단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그렇게 경쟁에서 승리한 집단이 그동안 이루어낸 성과들을 두고 달리 문명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문명의 다른 말이 정의다. 백이현이 빠진 함정이다. 경쟁에서 이겼기에 정의였고, 그것이 문명으로 인한 것이기에 더욱 정의롭다.


가장 무서운 것이 정의라고 하는 것이다. 정의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정의란 옳은 것이다. 다만 그것을 실천하는 인간의 문제인 것이다. 내가 옳다는 것은 내가 상대보다 우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정의를 상대에게 강제하고 강요하는 것도 정당하고, 따르지 않으면 응징하는 것도 정의로운 것이다. 정의로운 사람은 뒤가 없다. 그늘도 그림자도 없다. 한없이 순수하고 투명하게 오롯한 자신의 정의를 위해 부정한 것들을 정화시킨다. 마치 종교전쟁처럼. 그래서 이념과 신념에 의한 선의보다 더 잔혹하고 악랄한 것은 없다. 말 그대로 정화다. 야만이라는 악을 몰아내고 문명이라는 정의를 세운다. 그 과정에서 방해되는 것은 모조리 배제한다. 문명이 발전시켜 온 효율과 능률이라는 이름으로.


사실 그 효율과 능률이라는 말이야 말로 문명을 정의하는 단어들일 것이다. 그를 위해서 문명을 발전시켜 온 것이다. 더 강해지기 위해서. 남들보다 더 부유해지고 더 강해지고 그럼으로써 남들을 힘으로 꺾을 수 있기 위해서. 그럼으로써 한정된 자원을 독점하고 자신들의 의사를 마음대로 다른 집단에 투사할 수 있다. 그러니까 본질은 같은 것이다. 사냥감을 두고 이웃마을과 싸움을 벌이는 야만인이나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문명인이나. 단지 그를 위해 동원되는 수단들의 효율과 능률에서 문명과 야만은 차이가 난다. 심지어 인간마저 그 효율과 능률을 위해 개발되고 관리된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국민교육과 보건이다. 인간은 자원이다. 또한 수단이고 도구다. 그렇기 때문에 빛나게 갈고닦고 정교하게 관리된다. 그 화려함만을 본다. 하지만 결국 그 화려함이 쓰이는 곳은 파괴와 약탈인 것이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이상 쓸모가 없어진 도구는 버려야 한다. 고장났거나 혹은 성능이 떨어지는 도구는 고치거나 아니면 아예 부숴서 다시 쓸모있게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집단을 구성하는 인간들마저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기 시작한다. 정상은 옳고 비정상은 악하다. 차라리 고문에 가까운 교정이 가해진다. 그래도 안되면 차라리 효율을 위해 배제한다. 20세기 전반을 휩쓴 전체주의란 그같은 도구화된 인간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더 크고 더 부유하고 더 강한 더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자신들의 집단을 위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같은 집단에 속한 이들마저 그렇게 구분하고 차별하는데 다른 집단이라면 어떨까. 우생학은 그런 근대문명에 있어 필연이라고까지 할 수 있었다. 자신들이 우월한 이유. 다른 이들이 자신들보다 열등한 이유. 그러므로 자신들이 승리할 수 있었던 당위다. 그런 가치가 떨어지는 도구를 파괴하는 것이 죄악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더 숭고하고 정의로운 일일 수 있다. 


가만 돌아보기 바란다. 사실 쓰면서 정작 멀리 나치나 군국주의 일본보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를 더 떠올리고 있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인간이 과연 존엄하기는 한 것인가. 너무 쉽게 인간을 단정짓고 구분하고 자격을 따져 묻는다. 과연 모든 인간이 그같은 권리를 누려야 하는가. 그같은 권리들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분단된 현실을 말하고, 경제성장률을 말하고, 그것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얼마나 미치지 못하는가만을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누군가는 희생해야 한다. 누군가는 양보하고 헌신해야 한다. 심지어 자신마저. 그렇기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개인은, 혹은 다른 국가나 민족은 가치없고 의미없다. 구한말에도 많은 선교사들이 조선인에 대해 그리 폄하하고 있었다. 게으르고 거짓말을 잘한다. 대부분 문명을 자처하는 이들이 야만이라 여겨지는 이들에 대해 하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미 조선은 야만인 것이다. 그 야만을 문명으로 개화시키려 하는 것이다. 문명인이 야만인을 문명인으로 개화시켜주려 하는 것이다. 백이현 자신마저 도취되어 버린 그 절대적인 정의 앞에 인간의 목숨이란 하찮을 뿐이다. 그를 위해 이루게 될 더 큰 성과들에 비하면 한낱 야만인 몇의 목숨따위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의학의 발전이라는 전인류적인 성과에 비하면 마루타들이 겪을 고통따위 오히려 숭고할 수 있는 것처럼. 물론 당시 동학에 대한 토벌과 탄압을 주도한 것은 어디까지나 조선조정이었었다.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왕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본이 주도한 것처럼 그렸지만 고종이나 조선조정이나 심지어 기득권층인 양반들마저 일본보다 이들 동학과 의병들을 더 큰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일본이 주도하여 의병토벌과 학살을 벌이게 된 것은 이후의 일이고 아직까지 체제에 도전한 동학에 대한 처분은 조선조정의 의지 아래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이후 일본의 주도로 이루어진 의병토벌과 학살을 동학과 함께 다루고자 하는 의도에서일 것이다. 딱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이 이후 일어난 사건들을 배경으로 한다.


그러니까 고종을 너무 미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종이 가장 걱정한 것은 자신의 왕위였다. 조선의 안위 같은 것이 아니었다. 백성의 삶 역시 아니었다. 구한말 역사를 보면 고종과 그 마누라에 대한 분노에 차라리 잘 망했다는 생각마저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기껏 벼슬 팔아서 모은 돈으로 근대적인 군대를 길러서 하는 짓이란 못살겠다 일어난 백성들을 토벌하고 학살하는 것이었다. 나라가 망하는 와중에도 그러고 있던 인물이었다. 동학의 토벌에 대한 모든 책임은 고종이 아닌 일본에 있다. 조선이 아닌 오로지 일본에만 있다. 자발적으로 나서서 동학을 토벌하고자 했던 양반들이 오히려 황석주와 함께 동학의 편에 선 것이 그 한 증거다. 황석주가 추구한 양반다움은 일단 조선의 근간을 흔드는 동학을 토벌하고 일본의 침략에 맞서는 것이었다. 민족사여야 하기 때문이다. 동학혁명이란. 동학의 실패와 좌절이란. 그리고 일본의 침략이라는 역사 때문에라도.


아무튼 덕분에 이번에도 백이현이 주인공이 되었다. 항상 내 눈에는 백이현만 보인다. 아직 백이현에게는 남은 길이 있다. 구한말 많은 이들이 근대화된 일본의 문명에 매료되어 그들의 편에 서기는 했지만 그 가운데는 결국 문명의 야만적인 속성을 깨닫고 일본에 항거하고자 결심한 이들도 적지 않았었다. 안중근도 그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다. 한용운과 같은 이들도 그래서 일본의 문명을 배우고 일본과 싸우기로 결심했었다. 어차피 질 싸움이면 더 철저하게 패하는 것도 피해를 줄이는 방법일 지 모른다. 남북전쟁 당시 셔먼이 주장한 것이기도 하다. 더 악랄하게. 더 지독하게. 더 잔인하게. 하지만 그로 인해 싸움이 더 일찍 끝날 수 있으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 문제는 백이현과 같은 이유로 일본도 학살을 계획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피해를 줄이는 규모의 단위가 다르다. 아직 백이현은 고부에 살고 있고 일본은 조선 전체를 보고 있다.


글이 길어졌다. 원래 이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쓰다 보니 생각이 너무 많아진 탓이다. 반문명주의자는 아니다. 문명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위에 쓴 것처럼 문명이란 자체가 인간의 본질이기도 하다. 인간이 문명을 발전시켜 온 이유다. 발전된 문명을 동경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른 문명에 도취되어 자신의 정체성마저 뒤바꾸기도 한다. 문명과 야만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그리고 역사에 대해서. 


우금치 전투가 벌어지려 한다. 그 결과야 정규교육만 제대로 받았다면 거의 모를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우금치 전투는 몰라도 동학이 실패한 것은 대부분 안다. 동학이 성공했다면 아마 구한말의 역사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역시 보기 싫어진다. 항상 보기 싫었다. 저들 가운데 과연 몇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백이현마저 과연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것이 역사인 까닭이다. 비극은 싫다. 정말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