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레퍼런스와 표절...

까칠부 2010. 3. 8. 23:49

꽤 전의 일이다. 어느 아마추어 만화가 커뮤니티에서 벌어진 일이었는데, 당시 한창 인기를 끌던 만화 하나가 대놓고 일본만화의 컷을 베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하여튼 그것 처음 발견하고서 시쳇말로 꼭지가 돌아 한참을 날을 세우고 있었는데 누군가 그러는 것이었다.

 

"만화를 배우는 과정에 베끼는 것은 필수다."

"남의 만화를 베끼면서 만화는 느는 거다."

 

한 마디로 그럴 수도 있는 거다라는 거였는데, 한 마디 해주었다.

 

"나는 그들의 만화를 돈을 주고 구입하는 소비자다. 그리고 그들은 프로다. 습작을 돈주고 사는 소비자도, 습작을 돈 받고 파는 프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레퍼런스라 하면 항상 나오는 말이 있다.

 

"음악이란 그렇게 상호모방을 통해 만들어진다."

 

물론 맞는 말이다. 남의 만화 베껴그리며 만화를 배우는 것처럼 작곡도 남의 음악을 베껴 쓰며 시작한다. 귀로 멜로디며 코드를 따서 악보에 옮겨적으면서 음악은 시작되는 것이고, 남의 게임 소스를 분석해서 역기획하면서 게임도 만들어가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돈을 주고 구입하는 사람들이다. 과연 구매자들에게,

 

"이것은 습작입니다."

"이것은 배우는 과정에서 한 번 해 본 것입니다."

 

그리 말할 수 있겠는가? 과연 그런 것을 돈을 주고 구입할 구매자가 - 아마추어적인 것을 좋아해서 구입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이 경우 프로로서 아닌가?

 

사람들이 돈을 주고 어떤 창작물을 구입할 때는 그 오리지날리티를 구입하는 것이다. 고작해야 음악에 불과하고 그림에 불과한 것 무엇한다고 그리 비싼 돈을 들여 음반을 사고 그림을 사고 하겠는가? 고작 그림 한 장에 불과한 것에 상상도 할 수 없는 거액을 지불하고... 왜?

 

그것 하나 뿐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것과 같은 것은 그 하나 뿐이기에 그에 그런 막대한 돈을 지불하고 구입하고 하는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 퀸이기에, 마이클 잭슨이기에, 조용필이기에, 조관우이기에, 그들에게서만 기대할 수 있는 무언가를 굳이 돈을 내고 구입하는 것이다. 오로지 그 하나 뿐이기에. 오리지널리티다. 고유성이다. 바로 그 고유성을 사는 것이다.

 

물론 흔히 이야기하는 패러디니 오마쥬니 리메이크니 해서 기존의 작품을 재해석하거나 재창조한 것들은 또 별개다. 그것들은 또 원작에 대해서 따로 이야기되어야 하며, 특히 완전히 원작을 재창조한 것들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고유성이 부여되는 경우도 있다. 김광석의 다시부르기가 오히려 원곡보다 더 유명하고 원곡처럼 대우받는 것도 그래서다. 이 경우에도 원곡의 가치가 훼손되지는 않지만 역시 따로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이다.

 

표절에 있어서도 기존의 것을 갖다 썼음에도 오히려 기존의 것을 뛰어넘아 한 단계 가치를 높였을 때 그래서 원작자도 따로 시비를 걸고 하지 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이미 창조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반면 단지 원작의 고유성에 기대어 리메이크를 하거나 패러디, 오마쥬하는 경우는 그 가치가 제한적이며, 때로 그것이 지나쳤을 때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컨텐츠로서 고유성이 결여된 데 대한 비판이다.

 

하물며 그것이 기존의 것을 재해석한 것도 재창조한 것도 아닌 단지 그 오리지날리티를 흉내낸 것이라면 어떨까? 만일 누군가 고흐의 그림을 샀는데 알고 보니 서울의 어느 귀퉁이에서 한 달 전에 그려진 것이더라. 과연 기분이 어떨까? 그것도 제 값 주고 샀는데.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다. 색채도 마음에 들고 구도도 훌륭해서 큰 맘 먹고 구입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외국의 어느 화가의 그림을 그대로 베낀 것이었다. 과연 구매자의 기분이란 어떨까? 알고 보니 그 훌륭한 색채와 구도가 화가의 것이 아닌 다른 이의 것이었다면? 알고도 제값을 주고 구입했을까?

 

물론 그럼에도 장르적 유사성이라는 것이 있다. 흔히 쓰이는 전형이라는 것도 있다. 클리셰라는 것이다. 트로트는 이런 것이다. 락이란 이렇다. 이런 게 블루스다. 포크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너무 뻔해서 뭐라 말할 수 없는 것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사실 오리지날리티라 할 만한 것이 없는 그냥 전형 아니던가. 그런 것 가지고 시비거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런 것들은 그같은 전형성에 기대는 것이기에 바로 그런 전형성으로서 소비되는 것들이다. 표절이고 뭐고 없이 그것이 하나의 카테고리다.

 

여기서 말하는 오리지날리티란 바로 그런 전형성을 벗어난 어떤 것이다. 만일 그것도 모두가 갖다 쓰며 유행이 된다면 어떤 전형이 되겠지. 그러나 그 전, 아직 그것이 오리지날리티, 즉 그 고유성으로서 소비되고 있을 때 그것을 갖다쓰는 경우다. 그 느낌 그대로. 단지 표절만 아니도록.

 

어느 유명 가수의 표절의혹곡에 대해 원작자는 이리 말했다고 한다.

 

"아주 절묘하게 표절을 비껴난 곡이다."

 

이것을 표절이 아니란 근거로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하는데, 이건 사실 모욕이다. 분명 표절인데 그러나 너무나 기술적이었다. 즉 남의 집에서 보석을 훔쳐서는 아주 절묘하게 컷팅을 바꿔서 다른 보석처럼 팔아치운데 대한 찬사다. 베끼기 기술에 대한 인정이라고나 할까?

 

그럼에도 몇 마디가 같아야 표절, 코드가 얼마나 같아야 표절... 그러나 표절이 문제가 되는 것은 원작자의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즉 원작이 갖는 어떤 고유성을 약탈함으로써 그 고유성으로 인해 돌아올 이익 일부를 표절작이 가져가기 때문인 것이다. 앞서 재창조의 경우 그닥 표절을 문제삼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도 그래서다. 자신의 권리를 빼앗아갔다기에는 그 가치가 더 크기 때문에.

 

레퍼런스가 갖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기존의 인기곡이 있다. 대중적으로 히트하고 상업적으로 성공한 곡이다. 그 곡의 느낌이 있다. 그것을 단지 표절로만 안 걸릴 정도로 멜로디와 코드만 바꿔 복제하는 것이다. 그 곡이 팔리는 포인트 - 그 곡이 성공할 수 있었던 그 요소만을 정교하게 카피해내는 것이다. 과연 이것을 표절이 아닌가? 단지 멜로디와 코드가 다르다고.

 

만드는 당사자의 입장이 아닌 돈을 주고 구매하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뻔히 원작이 있는데 원작과 같은 것을 원작처럼 제값을 주고 사는 것 아닌가. 원작이 있고 단지 그 가치만을 베껴쓴 것을 원작처럼 제값을 주고 구입해 쓰는 것 아닌가? 만일 그림을 돈 주고 샀는데 그랬다면 그럴수도 있다며 넘어갈까? 사기인 거다.

 

나는 오히려 그래서 이런 식의 레퍼런스를 그저 부분만 갖다 쓰는 표절보다 더 악질적이라 생각한다. 부분적인 반주나 멜로디만 갖다 쓰는 경우는 곡 자체의 분위기가 다르면 기존의 원작의 가치를 침해할 여지가 그만큼 적다. 그러나 레퍼런스는 단지 부분적으로만 다를 뿐 원작이 소비되는 그 이유를 절취함으로써 그 이익을 대신해 가로채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스타일을 좋아해서 이 노래는 딱 내 취향이에요."

 

이 말의 무서움을 모르는 대중들로 하여금.

 

습작은 연습실에서 아는 사람들끼리나 하라는 거다. 아니면 습작입니다 대놓고 이야기하고 팔고. 습작을 습작으로 구입하는 건 문제가 아니다. 아니 차라리 레퍼런스면 레퍼런스라고 이야기하고 내놓으라. 원작은 이런 것이다. 그래서 듣고 더 낫거나 다른 점이 있으면 그것으로 구매포인트로나 삼게.

 

다시 말하지만 장르적 전형성은 여기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다. 그런 전형성까지 표절운운하는 건 확실히 오버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선 오리지날리티 - 즉 고유성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달리 해야 한다. 바로 그 고유성이야 말로 문화컨텐츠에 있어서 가치의 전부라 할 것이니.

 

말 그대로다. 고작해야 악기 두들겨 나오는 소리에 불과하다. 거기에 비싼 돈을 지불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캔버스에 물감을 칠해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거기에 상상도 못할 거액을 지불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굳이 비싼 돈 내 가며, 내 시간 들여가며 영화를 보러 가는 이유는? 거기에 그만한 어떤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고유성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 고유성을 베껴쓰고 있다면? 더구나 그것으로 돈을 벌고? 그것을 단지 그럴 수도 있다 넘어가야 할까?

 

참 재미있다는 것이다. 아주 부분적인 비트나 멜로디에는 그리 민감하다. 그러나 그같은 음악이 갖는 고유성에 대한 침범에는 또 관대하다. 멜로디가 어떻고, 코드가 어떻고, 그런 전문적이 이야기야 말로 전문가가 만든 함정이다. 그런 것들까지 다 고려하고 하니 전문가라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래서 그거다. 과연 듣고서 원곡을 얼마나 떠올리는가. 과연 듣고서 원곡의 이미지를 얼마나 연상시키는가. 그것이 과연 원곡의 가치를 침범할 정도인가. 정작 그런 것들이야 말로 원작자와 원작의 권리를 침해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일 것이니.

 

아무튼 표절논란 보고 있으면 재미있다. 그럴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작곡가의 입장이다. 만화가의 입장에서 기존의 만화에서 좋은 것 보고 갖다 쓰는 것이 발전을 위한 수단일 수 있듯, 그러나 그것이 돈을 주고 만화책을 사서 보는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듯 말이다.

 

참고로 내가 한국만화를 언제부터인가 안 보게 된 것도 그래서다. 딱 보니까 일본만화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일본만화들이다. 단지 작가 이름만 한국인이다. 과연 이런 만화를 내 돈 주고 사서 봐야겠는가. 나는 원래 만화책 사서 보는 주의였다. 돈 아까운 거다. 역시 레퍼런스다. 기존의 일본만화의 분위기를 갖다쓰는.

 

멜로디가 어떻고, 코드가 어떻고, 세상에 가장 거짓말 잘하는 놈들은 가장 똑똑한 놈들이다. 많이 아는 놈들이 거짓말도 잘 한다. 그것을 따라가려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넘어가기 일쑤다. 물론 쓸데없이 너무 오버하는 것도 안 좋고. 간만에 레퍼런스 이야기가 나오길래. 표절 아닌 레퍼런스라...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