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 실감나는 권력의 적나라한 진실, 그리고 인간들

까칠부 2019. 8. 8. 17:10

스님들이 선장을 짚는 이유는 혹시라도 의도하지 않게 작은 벌레들이 자신의 발에 밟혀 죽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사람 입장에서는 그저 무심한 발걸음이지만 어쩌면 작은 생물들에게는 재앙일 수 있다. 반드시 죽이려 해서가 아니라 하필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의 걸음이 작은 생물들을 죽인다.


권력이란 그런 것이다. 그저 작은 손짓 하나에도 수많은 목숨이 오가고, 무심히 내뱉은 말 몇 마디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운명이 뒤바뀐다. 그래서 역사는 권력자 중심으로 쓰여지는 것이다. 그들 뿐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을 중심으로 역사가 바뀌어 왔기 때문이다. 선택의 순간에 결정을 내린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 이름이 역사에 기록되고 그로부터 역사는 새롭게 쓰여진다. 과연 한 개인이 그런 거대한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드라마에서도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는 것이 바로 권력의지란 것이다. 권력의지란 다른 말로 컴플렉스다. 자신의 결여된 부분이 그를 이룰 수 있는 수단으로써 권력이란 것을 강렬하게 바라게 만든다. 동기야 다양하다. 어떤 이들에게 권력이란 단지 돈벌이의 수단일 것이고, 어떤 이들에게 권력이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도구일 것이다.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기 위해서.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보다 권력 그 자체가 목표가 되기도 한다. 자신을 비천하다 여기기에 더욱 고귀한 위치에서 다른 이들을 굽어보려 한다. 그런 점에서 야당 대표 윤찬경이 말하는 '비주류'라는 단어가 어쩌면 이리도 적나라하게 들리는가.


죽은 전대통령 양진만도 자신이 비주류였기 때문에. 비주류로서 간절히 바라지만 이룰 수 없는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대통령이 되어 그것을 이루고자 모든 오욕을 감수하고 있었다. 자신을 향한 어떤 비난이나 공격도, 그로 인해 느끼는 모든 좌절과 모욕에 대해서도, 차라리 그보다 자신이 바라는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그것이 더 큰 절망이고 고통일 것이었다. 그래서 그를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대가도 치를 준비와 각오가 되어 있다. 그것이 아무 준비도 각오도 없이 느닷없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박무진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었다. 권력을 위해서 자신이 그동안 지켜온 신념과 양심 어느것도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깨닫게 된다.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그러나 감당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 권력이라는 무게에 대해서. 자신의 양심에 따른 선택 하나로 인해 주위가 동요한다. 자신의 신념에 따른 행동 하나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지려 한다. 그를 위해 대신해서 선택하고 희생하려는 이들이 있었다. 자신의 명령 하나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가족마저 뒤로 한 채 위험으로 뛰어들고 마침내 목숨까지 잃는다. 오늘까지 본 분량이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임무이기에,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기에 그는 명령을 내려야 했고 그 결과까지 모두 받아들여야 했었다. 그래서 가끔 - 아니 오히려 자주 권력에 미쳐 버리는 사람도 나타나는 것이다. 마약에 취하는 것과 같다. 사람이 숫자로 보이고 세상이 온통 장기판처럼 보인다.


과연 권력과는 전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어쩌면 순수한 학자에게 권력이라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미처 준비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그는 과연 어떻게 감당해낼 것인가. 어쩌면 그린 것 같다. 이렇게 사람은 권력에 익숙해지고 권력에 맞는 자신으로 성장해 간다. 물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현실에는 더 많을 것이다. 하다못해 손님이라는 위치마저 감당하지 못해 폭주하는 사람들이 현실에는 너무 많다. 굳건한 사람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자리가 주는 책임의 무게를 받아들이며 그를 자신의 권력의지로 만들어간다. 그 과정이 하필 현재 한반도 상황과도 맞물리며 상당히 복잡하게 정교하게 흥미진진하면서 설득력있게 그려진다. 진짜 현실에서도 그런 상황이 벌어졌으면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을까.


저마다 다른 권력의지와 다른 목적과 다른 의지와 그런 가운데서도 정점에 우뚝 선 청와대라는 공간이 권력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권력을 사용하기 위한 고민들과 갈등과 혼란과 충돌과 다툼 같은 것들도. 그 속에서 권력자로서 성장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흥미롭다. 가장 정치인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 모든 정치인이 바라는 정점에 서게 된다.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그러므로 박무진이란 인물은 어떻게 자신의 권력에 익숙해지며 대통령에 어울리는 인물로 성장해 갈 것인가.


마치 한국에서 만든 오리지널 드라마라고 해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로 현실의 요소들이 적재적소에 한 번에 알아볼 만큼 가공되어 실감을 높여주고 있다. 원작을 보지는 않았지만 이만하면 굳이 찾아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오랜만에 빠져들어 보는 정치드라마일 것이다. 그놈의 검법남녀 때문에. 늦었다. 한 번 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