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란 사람마다 서로 다른 의미를 갖는다. 누군가에게는 꿈이다. 누군가에게는 증명이다. 누군가에게는 욕망이다. 누군가에게는 단지 충동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역시 대부분 사람들에게 권력이란 권력과 전혀 상관없는 자신들까지 모두 아우르는 책임이지 않을까.
어떤 이들에게 권력이란 목적이 되고, 어떤 이들에게는 단지 수단이 된다. 권력을 너무 무겁게 여겨도 가볍게 여겨도 문제다. 권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강삼구는 그런 점에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는 오영석과 정확히 대척점에 있다. 그리고 윤찬경과 박무진은 서로 서 있는 곳은 다르지만 닮은 꼴들이다. 자기에게 대통령이 되어야 할 사명과 책임이 있으니까. 자신의 신념과 이상과 무엇보다 사회적 책임을 위해서라도 권력을 쥐고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고자 한다.
그 무게를 알기에 애써 주위의 기대와 요구를 외면하며 거부하고 있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가지는 무게와 대통령으로서 가지게 될 권력에 대한 책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과연 자신이 그런 것들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자기밖에 없으니까. 지금 당장 오영석을 앞세운 배후의 음모를 막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자기가 아니면 안되었으니까. 윤찬경은 자신의 노력과 실력으로 그 사명과 책임을 스스로 손에 넣었고 박무진은 우연히 앉게 된 자리가 그런 사명과 책임을 강제했다. 운명이다. 설사 자신이 진흙탕을 뒹굴며 온통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반드시 대통령이 되어 이 나라를 지켜야겠다. 다만 굳이 나누자면 윤찬경에게 권력이란 보다 목적에 가깝고 박무진에게는 수단에 더 가깝다.
결국은 결정적인 순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권력마저도 내던질 수 있는 단호함인 것이다. 누구보다 권력이 어울리며 권력을 잘 사용할 것 같지만 정작 권력에 대한 욕심은 없는 것 같은 사람.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바라는 정치인의 이상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매 순간 권력을 사용해서 시원하게 거침없이 모든 문제들을 단번에 해결해 주기를 바라면서도 한 편으로 필요한 때 쉽게 권력을 내놓을 수 있는 담백함을 요구한다. 물론 현실에 그런 정치인은 매우 드물다. 욕심이 없으면 권력 자체를 가지려 하지 않고, 권력을 가지려는 순간 욕심은 앞서게 된다. 그래서 테러가 필요했고 지정생존자라는 제도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굳이 권력에 대한 욕심 없이도 권력을 가져야만 하는 동기가 주어져야 했다.
테러로 대한민국의 대부분 요인들이 죽고, 겨우 혼란을 수습하는가 싶더니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저격하며 더 큰 음모를 꾸민다. 그런 것들을 알 수 있고 책임질 수 있는 위치에서 운명처럼 강요당한다. 그럼에도 이대로 모른 척 외면할 것인가?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과 책임을 받아들일 것인가. 그것을 바랐던 것이었다.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고, 그럴 수 있는 실력과 인품을 가졌으며, 나아가 그러고자 하는 의지와 용기를 가진 이를. 자신의 책임으로부터 외면하지도 도망치지도 않는다. 자신이 그러고자 해서가 아니라 그러기를 바라기에 이미 그는 그 길 위를 걷고 있는 것이다.
겨우 12회까지 따라왔다. 요즘 이런저런 일들이 너무 많아서 드라마를 집중해서 보기가 무척 어렵다. 시간도 부족하고 몸도 정신도 많이 피곤하다. 드디어 박무진이 출마선언을 한다. 그럴 수 있는 위치에서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졌음에도 그러지 않는 것은 방기고 유기다. 그런 것을 인품이라 인격이라 여기는 이들이 너무 많다.
하필 떠오르는 인물이나 사건들이 너무 많아서. 바른 말도 재수없게 한다는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인 비서실장 차영진은 특히 누군가를 떠오르게 만든다. 아마 2012년 대선 전까지 당시 보수여당의 대통령후보도 윤찬경과 같은 기대를 받았을 텐데. 하지만 드라마일 테니까. 마저 달려본다. 따라잡는데 2편 남았다. 바쁘다.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정생존자 - 정도를 지키는 용기와 의지, 어쩌면 박무진이 테러의 완성인 이유 (0) | 2019.08.20 |
---|---|
지정생존자 - 권력의지, 권력을 위해 치러야만 하는 댓가들 (0) | 2019.08.17 |
60일 지정생존자 - 실감나는 권력의 적나라한 진실, 그리고 인간들 (0) | 2019.08.08 |
검법남녀2 - 시즌3를 위한 숙제, 그리고 묘한 리얼리티 (0) | 2019.07.30 |
의사 요한 - 너무 일찍 나온 답, 일장연설의 피로감 (0) | 2019.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