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일 텐데, 아마 16차선 넓은 도로 위를 아무도 없이 자기 혼자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대부분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더구나 도로 옆 작은 샛길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면 혹시 내가 길을 잘못든 것은 아닐까? 저 앞에 다른 위험이나 함정이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차라리 보이지 않아서 무섭고 느낄 수 없어서 두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길을 홀로 끝까지 멈추지 않고 갈 수 있다면 비로소 사람들은 그의 뒤를 따르게 된다. 이른바 한 시대에 영웅이라 불리는 이들이 그들이다.
어째서 옛 현인들은 사람들더러 아이를 닮으라 가르치고는 했던 것일까? 아이는 순수하다지만 그런 만큼 오히려 아무 죄의식없이 거짓말도 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기도 한다. 그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줄도 모르고 마음 내키는대로 남의 물건을 훔치고 자신보다 약한 대상을 향대로 폭력을 휘두르는 그런 무심한 이기심과 잔혹함을 배우라는 것이었을까? 그보다는 그런 행동조차 전혀 아무 거리낌없이, 어떤 두려움도 없이 저지를 수 있는 그런 무모함을 닮으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오히려 정치에 익숙지 않기에 쉽게 다른 사람을 의심하지 않고, 그래서 쉽게 다른 사람을 이용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쉽게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려 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자신에게 혹시 돌아올 피해나 불이익은 아예 계산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물론 바보가 아니니 나름대로 충분히 계산하고 내린 결정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위험하다. 두 어 걸음 멀찍이 물러서 있으면 다칠 일도 없을 텐데 굳이 밀리미터 단위로 아슬아슬하게 상황을 돌파하려 한다. 만에 하나 자신이 믿었던 이관묵 함참의장이나 윤찬경 대표가 자신이 기대하는 인물들이 아니었다면 자칫 더 위험한 상황에서 더 큰 피해를 감수해야 했을지 모른다.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많은 것들을 -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을 잃어야 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참모들도 반대하는 것이다. 나 역시 반대다. 대통령은 개인이 아니다. 자칫 대통령의 판단과 선택이 잘못되었다면 그 피해는 대통령 자신만이 아닌 국민 전체에게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관묵이 쿠데타에 합류하고, 윤찬경이 VIP와 손잡는다면 대한민국은 더 큰 혼란에 빠져들고 대한민국 국민들 역시 더 큰 피해를 입게 될 지 모른다. 그런데도 모험을 해야만 하는가.
하지만 한 편으로 어쩌면 모두가 바라는 이상일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묵묵히 정도만을 걷는 대통령. 어떤 훼방에도 고난에도 오로지 우직하게 정도만을 걷는 리더라는 것은. 선거를 위한 아주 작은 양보와 후퇴조차도 그는 부끄러워 할 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실망하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항상 최선의 길만을 찾아 어려움과 두려움을 무릅쓴다.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기에, 아니 현실이라면 절대 그래서는 안되는 모습들이기에 그래서 더 바라고 기대하게 된다. 이런 대통령이라면 뭔가 다른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보면 오래전 국민을 돌보지 않는 대한민국에 항의해서 금메달마저 반납하고 해외로 이민간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있었다. 하긴 대부분 군대 나온 남성들은 현실에서 수도 없이 느끼게 되는 일상적인 감정일 것이다. 대한민국이란 국가는 과연 자신들과 국민에 대해 어떻게 여기고 대우하고 있는가. 어쩌면 국가를 위한 수단으로서. 국가의 편리를 위해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는 객체로서. 그러면서 한 편으로 자신들 역시 국가의 입장에서 같은 주장을 읊조리기도 한다. 국가를 위해 너희들이 조금만 더 희생하라. 이것이 나라인가. 이것이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조국 대한민국인가. 차라리 그런 대한민국을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어째서 가난한 이들은 자신들을 위한 법안과 정책들을 제안하고 실천하는 진보정당보다 반대편에 선 보수정당에 더 지지를 보내는가? 결국은 절망이지 않을까. 어떻게해도 더 나아질 리 없다는 회의이지 않았을까. 그렇기 때문에 아예 싹 뒤집지 못한다면 그냥 익숙한대로 이대로가 더 낫다. 한주승의 혼잣말이 의미심장하다. 김실장은 말한다. 박무진이야 말로 테러의 완성이라고. 그들이 테러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진짜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러므로 박무진 같은 대통령이면 괜찮지 않을까.
후반으로 갈수록 긴장감이 많이 떨어진다. 대부분 위기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박무진 자신 역시 정치인으로서 상당한 성장을 이룬 때문이었다. 박무진이 성장한 만큼 자신이 가진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더욱 수월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적은 하나씩 줄어들고 약해지는데 박무진은 더욱 강해지고 능숙해진다. 이제는 윤찬경이나 강삼구 같은 정치적 동반자이자 라이벌들도 존재감이 희미하다. 박무진 한 사람만 남았다. 그리고 김실장 뒤의 vip만이. 과연 vip의 정체는 얼마나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까? 거의 끝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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