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유령을 잡아라 - 지하철이라는 일상의 공간과 비일상의 범죄들

까칠부 2019. 10. 22. 17:19

원래 영웅이란 정상에서 벗어난 존재다. 사실 대부분 슈퍼히어로들이란 범죄자들이다. 엄연히 법이 있고 법을 집행하는 경찰이 있는데 아무리 범죄자라고 사적으로 제재를 가한다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에서 용인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이미 그런 사회적 시스템 자체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지 못하니까. 그러니까 고작 시장 상인들 등이나 쳐먹던 김두한 같은 깡패마저 영웅로 추켜올리는 이들마저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지하철이란 나레이션에서도 나오듯 대부분 서울시민이 - 아니 서울시민이 아니더라도 서울에 잠시라도 발을 딛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이용해 봤을 가장 친숙한 일상의 공간이다. 그 일상의 공간에서 비일상의 범죄들이 일어난다. 그저 일상의 고단함과 분주함들이 수도 없이 지나치고 있을 그곳에서 일상의 평범함을 파괴하는 범죄들이 일어난다. 하지만 경찰력은 한계가 있고, 더구나 현실의 수많은 제약들은 그 한계마저 족쇄로 옭죄어 버린다. 그러면 기댈 곳마저 없는 수많은 억울함들은 어떻게 어디로 가야만 하는 것일까.


사실 주인공 입장에서야 답답하고 억울하겠지만 경찰로서 하마리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경찰은 증거를 가지고 수사를 해야 한다. 아무리 당사자가 간절하게 호소한다고 인정에 이끌려 수사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 해에만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실종신고가 경찰에 접수되고, 졸지에 가족을 잃은 남은 가족들의 간절함은 아직 찾아내지 못한 경찰에 대한 원망으로 손쉽게 돌변하고는 한다. 경찰 자신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경우도 물론 적지 않을 테지만 충분히 노력했음에도 찾지 못한 경우에마저 모든 것을 경찰 책임으로 돌리려 한다. 혹시라도 자신의 동생을 찾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상당한 수의 경찰이 수사에 나선 것을 보고 자신의 동생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는 것도 아주 잘못된 것은 아니란 것이다. 하지만 그건 경찰의 입장이고 정작 피해자이거나 가족인 당사자들의 입장은 아닌 것이다.


유령이 지하철경찰대에 들어가기 전 자신 역시 피해자로서 반장 고지석과 함께 해결한 지하철 몰카 및 집단성폭행모의 역시 그런 맥락이었던 것이다. 아직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아직 구체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직접 지하철경찰대에서 수사에 나서려 해도 넘어야 할 절차와 과정들이 한둘이 아니다. 당장 피해자는 내일 당장 범인들에 의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될 지 모른다. 다 무시해 버린다. 모두 다 부수고 깨뜨려 버린다. 차라리 자신이 범죄자가 된다. 경찰의 신분이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의 스쿠터를 훔치고, 무단으로 지하도를 질주하고, 몰래 지하철 감시실에까지 잠입한다. 그래서 결국 아슬아슬하게 피해자를 구해낼 수 있었다. 누구도 알지 못했을 피해자의 공포를 해결해 주었다. 과연 누가 옳은 것인가.


솔직히 이미 기성세대라서인지는 몰라도 유령의 방식은 너무 불안하고, 차라리 얄밉기까지 하지만 하마리의 방식이 더 옳게 여겨지기도 한다. 다만 하마리 역시 수사관으로서 최대한 다양한 가능성들을 모두 검토했어야 했건만 예단으로 단정짓고 아예 대상에서 배제한 것은 엘리트라는 오만함에서 비롯된 미숙함이었을 것이다. 혹시라도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있었다면 반드시 고려하고 검토했어야 하는데 마지막까지 그것을 거절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이다. 경직된 경찰의 관료주의가 만들어낸 틈이 유령이라는 이레귤러를 만든다. 유령이 보이는 불안함과 과격함을 통쾌함으로 바꾸고 만다. 내가 만일 피해자와 같은 입장이었으면 어땠을까? 차라리 문제가 있더라도 유령처럼 적극적으로 해결해주기를 바라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혹시나 드라마의 끝에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있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지하철이란 일상의 공간이지만, 그러나 유령이 몰래 숨어든 선로는 일상과 동떨어진 비일상의 공간이다. 관계자를 제외한 누구도 가 본 적 없고 따라서 그곳에 무엇이 있는가 알지도 못한다. 따라서 그 어둠 속에 무엇이 있든 전혀 이상하지 않다. 드라마의 주제일지 모르겠다. 과연 일상의 친숙한 공간이라고 지하철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사람이 전체 가운데 얼마나 될 것인가. 그런 지하철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유령이라는 주인공이 그 가운데서도 어둠에 묻힌 비밀의 공간으로 걸어들어간다. 비일상은 사람들 사이에 있다. 어둠과 비밀은 지하철을 지나치는 수많은 일상의 사람들 속에 존재한다.


고지석은 상식인이다. 유령은 그런 상식을 불편하게 여기는 비상식인이다. 비상식인이라기보다는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그 상식을 부수고 깨뜨리고 비웃을 수 있는 인물이다. 동생을 찾고자 하는 절박함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파트너다. 일상과 비일상이 공존하는 지하철이란 공간처럼. 그곳에서 그들은 어떤 인간들을, 사연들을, 진실들을 마주하게 될까. 첫회부터 인상적이다. 오랜만에 즐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