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자의 자격을 보겠다 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두 편을 추천한다. "남자, 그리고 눈물"편과 "남자, 그리고 자전거여행" 편이다. 그야말로 남자의 자격의 정수가 녹아있다 할 수 있으니.
"눈물"편은 정말 충격이었다. 예능에서 눈물을 흘리다니. 전혀 웃기는 것 없이 오로지 울리는 것만을 생각하다니. 물론 웃기기는 했다. 이경규의 예능본능이 어디 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날 "눈물"편을 보면서 웃음을 떠올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눈물이란 어쩌면 가장 순수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들 믿는다. 눈물에는 그 사람의 가장 순수한 진심이 담겨 있다고. 그래서 눈물에는 그 자체로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다. 화를 내다가도 어느새 눈물을 그렁이는 것을 보고 있으면 측은지심이 이는 것처럼. 당장 소를 잡으려다가도 눈가에 맺힌 눈물에 손에 힘이 풀리는 것처럼.
더구나 사나이의 눈물이란. 사나이의 눈물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남자는 평생 세 번을 운다고 한다. 태어나서,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한 번 씩... 남자는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고 배워왔다. 눈물은 여자들이나 흘리는 것이라 남자가 눈물을 보여서는 안된다고 배워왔다. 그래서 남자들은 눈물을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눈물을 흘리는 자신을 보이는 것을 꺼려한다. 그런 남자의 눈물이다.
그날의 백미는 그래서 끝까지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김국진이었다. 모두들 궁금해 했었다. 김국진은 무엇때문에 저리 무리해가며 눈물을 흘리지 않고 버티는가. 그 이유가 밝혀졌을 많은 사람들이 그 어떤 눈물보다 진한 눈물을 대신해 흘려주었었다. 남자는 우는 게 아니다. 그래서 더 깊은 울음을, 더 진한 눈물을 속으로 삼키고 흘리는 것이다.
이경규가 "일요일일요일밤에"의 출연을 고집한 이유도 깊은 감동을 주었었다. 집안을 일으키고 동생들을 모두 성가시킨 이윤석의 의외의 의젓함이라던가, 어머니를 "엄마"라 부르며 죄책감에 눈시울을 적시던 김태원의 순수라던가, 눈을 꿈벅거리며 눈가가 촉촉히 젖어 있던 김성민...
그 모습에서 사람들은 그들의 진심을 느꼈다. 무장해제된 그들의 깊은 속내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서 스스로 무장해제되었다. 사나이의 눈물을 나눈 동지라. 친구라. TV화면을 넘어 동질감이 생기던 순간이었다.
"눈물"편이 남자의 자격 팀과 시청자와의 거리를 좁혔다면 "자전거 여행"편은 아직까지 어색하던 남자의 자격 멤버들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명대사,
"강한 사람도 약한 사람도 모두가 똑같이 자전거 한 바퀴씩 나갑니다."
이야말로 남자의 자격의 정체성이 아닐까. 김태원이 지쳐 나가떨어지자 리어카에 태워 뒤에 싣고 다른 여섯 명이 패달을 저어 나아간다. 다시 이경규의 자전거가 고장나자 이번에는 다섯사람이. 이튿날 날이 밝고 일곱 사람이 함께 자전거 패달을 밟아 목적지로 향했을 때,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여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을 때, 어느새 나도 그들과 하나가 된 듯한 뿌듯함마저 느꼈다.
그때부터였다. 남자의 자격 멤버들이 가족처럼 느껴진 것은. 그로부터 남자의 자격 멤버들이 서로를 형이라 부르고 이름을 부르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서로 어울려 라면을 끓이고, 고기를 굽고, 밥을 하고, 게임도 하고, 허풍도 떨고,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남자들의 모습이라는 것이.
그래서 바로 이어지는 것이 웨이크보드편이다. "웨이크보드"편도 눈여겨 볼 만 하다. 지금의 남자의 자격의 캐릭터와 관계가 여기서 완성되고 있었다. 아버지 이경규와 어머니 김태원, 큰 형 김국진, 이정진이 비주얼덩어리로 자기 캐릭터를 가진 것도 이로부터였고, 남자의 자격 멤버들이 한결 끈끈한 관계로 맺어진 것도 여기서부터였다. 의외로 모든 것을 잘하는 만능의 김국진과 나름대로 김성민만큼이나 잘하는 것이 많음에도 통편집당하는 막내 윤형빈, 그리고 국민약골 캐릭터는 김태원에게 넘겨주었지만 가장 볼품없이 긴 캐릭터로서 몸개그에 있어 이윤석을 따라갈 자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마 다음 편에선가 이정진에게 비주얼덩어리 - 비덩이라는 별명이붙여졌을 것이다.
물론 더 웃기는 에피소드도 얼마든지 있다. 어쩌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웃기는 것 없는 재미없는 에피소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과연 남자의 자격은 그저 웃음만 주자는 버라이어티인가.
물론 그 목적은 궁극적으로 웃음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의, 아이돌도 없이, 여자도 없이, 이경규와 이윤석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모두 리얼버라이어티라고는 처음인 초짜들로만 구성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퇴물락커에, 퇴물예능MC에 예능인에, 겨우 재기했다지만 여전히 불안한 과거의 스타에, 역시 잊혀져가는 배우와 그닥 대단할 것 없는 조연급 배우 하나, 여기에 그나마 가장 인지도 높은 멤버가 윤형빈이었다. 나이도 많아 아마 방송3사 통틀어 가장 평균연령이 높을 것이다. 전혀 누구도 기대같은 것은 갖지 않을 이같은 멤버를 굳이 구성한 이유. 바로 그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어서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두 편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눈물"편에서의 남자의 순수하면서도 진한 눈물과 "자전거여행"편에서 마지막 함께 패달을 밟으며 목적지로 향하던 모습에서. 크게 웃음은 없었지만, 아예 웃음이랄 것도 없었지만 어느샌가 나 또한 남자의 자격의 멤버 가운데 하나가 된 듯 뿌듯하던 그 느낌에서.
웃음을 기대한다면 사실 남자의 자격은 어쩌면 함량미달의 리얼버라이어티인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그래서 다큐라 그런다. 심지어 웃기지 않는 멤버를 빼고 바꾸라는 요구가 지금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예능의 전부인가. 웃기려 해서도 아니고 울리려 해서도 아닌, 그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공감대야 말로 남자의 자격의 의미가 아닐까. 그런.
나머지야 그 다음에 알아서 챙겨보면 좋을 것이다. 담배를 피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금연"편이 레전드라고들 하고, "말"편도 무척 재미있었다. 김태원이 국민시체라 불리우게 된 "꽃중년"편도 재미있었고, 남자의 자격이 크게 주목을 받았던 에피소드로 "전투기"편과 "마라톤"편이 있었다. 남자만의 은밀한 판타지를 담은 "아지트"편도 재미있었고, 젊은 세대와의 문화적인 세대차이를 극복해보자던 "젊은 그대"편이나 뻥토크의 진수를 보여준 "17대 1"편도 있었다. 최근에는 "아마추어밴드" 편이 있다. 아무거나 골라잡아도 된다. 먼저 남자의 자격과 소통할 준비만 되어 있다면. 바로 말한 두 편의 에피소드다.
벌써 1년... 처음에는 순전히 김태원이 나온다고 해서 봤다. 당시는 내가 텔레비전을 아예 보지 않던 때라 해피선데이를 언제 하는 지도 몰라서 매번 시간을 놓쳐 보지 못했었다. 처음으로 본방을 사수한 것이 꽃중년 편부터던가. 어느샌가 빠져들고 그리고는 헤어나지 뫃해 지금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불만도 많았다. 요구사항도 많았다. 이래라, 저래라, 그러나 어느 순간 납득해 버렸다. 이린 것이 남자의 자격이라. 납득해 버리고 나면 남은 것은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 그러나 거부하기에는 이미 너무 깊이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이경규를 새삼 더 좋아하게 되었고, 이윤석도 좋아졌고, 김국진도 다시 좋아하게 되었고, 김성민의 봉창도, 이정진의 사람좋은 웃음도, 윤형빈의 어수룩한 성실함도, 김태원이야 원래 그를 보자던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1년. 진짜 시간도 빨리 간다. 그닥 시간이 흐른 것 같지도 않은데 한 주 한 주 기다리며 챙겨보다 보니 어느새 벌써 1년이다. 시간은 이리도 빨리 가는 것이라. 과연 101가지 미션을 다 해결하기까지 나는 몇 년의 시간을 더 보내고 있을까.
축하하며... 그리고 고마워하며... 일요일 저녁 단 한 시간, 일주일의 가장 값진 선물을 전하는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에게. 가끔 웃음소리로 출연하는 작가와 VJ들에게도.
다시 1년을 꿈꿔본다. 그리고 또 1년을. 남자의 자격이 없는 일요일 저녁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빠져버린 모양이다. 지난 1년은 내게 있어 최고의 행복이었다. 최고였다. 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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